나의 이야기

2019. 12. 30. 나무가 되고 싶어

아~ 네모네! 2020. 3. 3. 17:22

나무가 되고 싶어

이현숙

 

   차 밑에서 고양이가 납작 엎드려 기어 나온다. 무엇인가 노려보고 있다. 앞을 보니 여러 마리의 참새가 열심히 모이를 쪼아 먹고 있다. 보는 내가 더 긴장된다. 살금살금 기어 나와서 참새를 낚아채려는 순간 참새들이 잽싸게 날아간다. 고양이의 비애가 느껴진다. 남의 생명을 빼앗지 않으면 내 생명을 이어갈 수 없는 기구한 운명은 모든 동물의 공통점이다. 내가 태어나서 7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생물이 희생되었을까? 도저히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생선 가게 앞을 지난다. 동태 코다리가 뱃속 내장은 모두 제거된 상태로 이쑤시개로 뱃가죽을 벌린 채 매달려 있다. 내가 저렇게 매달려 있으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한다. 식인종들은 사람을 어떻게 요리해 먹었을까? 산채로 요리했을지도 모른다. 인간도 산 낙지를 그대로 토막 내어 먹는다. 조각조각 끊어진 상태에서도 꿈틀꿈틀 하는 걸 보면 보기만 해도 끔찍하여 젓가락이 가지 않는다. 산 낙지를 펄펄 끓는 물에 통째로 넣는 걸 볼 때도 내가 끓는 물에 들어가는 것처럼 심장이 쪼그라드는 듯하다.

횟집 앞을 지나며 수족관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를 본다. 내가 저 아이의 생살까지 뜯어먹으며 살아야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조물주는 어이하여 생명을 통해서만 생명을 이어갈 수 있게 만들었을까? 남의 생명을 먹지 않으면 내 생명을 이어갈 수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무엇인가 먹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식충식물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식물은 무생물을 먹고도 살 수 있다. 물과 이산화탄소와 햇빛만 있으면 스스로 광합성을 하여 양분을 만든다. 이 양분으로 생장하고 꽃을 피워 생명을 이어간다.

   내가 만약 다시 태어나야한다면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 나무가 되어 대지에 뿌리박고 빗물과 이슬을 먹으며 살아가고 싶다. 나무가 안 되어봐서 그 기분은 모르겠지만 남의 생명을 해치지 않아도 되니 맘 편히 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한 곳에서만 평생 살아야하니 지겨울지도 모른다. 산불이 나도 도망 갈 수 없으니 발을 동동 구르며 동물로 태어나지 못한 걸 한탄할 지도 모르겠다. 모든 생물은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항상 남을 부러워하며 살고 있다.

   비록 이런 괴로움이 있을지라도 난 나무로 태어나 하늘을 바라보며 살고 싶다. 밤에는 별을 보고 낮에는 해를 보면서 비바람 맞아가며 살고 싶다. 재수 없으면 산불이 나서 산채로 타죽을 지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