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9. 12. 28. 내 인생 되감기

아~ 네모네! 2020. 3. 3. 17:20

내 인생 되감기

이현숙

 

   비디오 테이프로 영상을 볼 때 되감기를 누르면 원하는 위치 어디든 갈 수가 있었다. 내 인생을 되감기 한다면 어디로 가면 좋을까?

   엄마 뱃속으로 가면 편할 것 같기는 한데 다시 태어날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 엄마의 자궁에서 이 세상으로 오는 통로는 너무 좁아서 내 머리뼈가 빠개지고 갈비뼈가 으스러질 지경이었다. 이런 고통을 다시 겪는 것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초등학교 시절은 어떨까? 공부하는 건 그럭저럭 따라갔는데 어리버리하여 도무지 혼자서 뭘 할 엄두를 못 냈다.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반장인 나에게 추운 겨울이면 미리 선생님 책상 아래 숯불을 피워 놓도록 했다. 아침 일찍 동대문시장에 가서 숯을 사다가 불 피우는 일이 퍽 힘들었다. 그래도 그 때는 그런 것이 당연한 일인 줄 생각하고 별 불만 없이 했다. 지금 같으면 뉴스에 나올 일이다. 초등학교도 안 되겠다.

   중고등학교 시절은 반장을 해본 적이 없으니 구석에서 조용히 지내기 좋았다. 하지만 똑똑하고 부자인 아이들이 하도 많아 항상 기죽어서 살았다. 지금도 고등학교 동창회에는 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여기도 안 되겠다.

   대학교 시절은 모처럼 산악회 선배들을 따라 다니며 신나게 놀았다. 하지만 학점에 신경 쓰느라 전전 긍긍하며 지냈다. 학창시절은 시험 걱정이 나를 짓누른 시절이다. 여기도 통과다.

   졸업하고 교사가 되어서는 어떤가? 수업 준비와 학생들 통제가 힘들어 그날그날 시간 때우기 바빴다. 지금도 꿈속에서 수업 종은 쳤는데 교실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꿈을 꾼다. 어떤 때는 수업은 들어가야 하는데 교과서가 없어서 쩔쩔매는 꿈도 꾼다. 교사 시절도 별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신혼 시절은 깨가 쏟아진다는 말이 있지만 깨는커녕 콩도 쏟아지지 않았다. 수업하랴 잡무 처리하랴 파김치가 되어 집에 오면 또 2라운드를 뛰어야하니 너무 피곤해서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았다. 신혼여행 다녀와서 소변을 보는데 아래가 아팠다. 소설 속에서 성병에 걸리면 소변보기가 힘들다는 것을 읽은 기억이 났다. 내가 성병 결린 사람하고 결혼했나 싶어 너무 놀랐다, 병원에 가기도 겁나서 참고 며칠 있었더니 통증이 사라졌다.

   몇 달 후 또 소변보기가 힘들어졌다. 소변 한 방울을 보려 해도 잘 나오지 않고 진땀이 바작바작 나게 아팠다. 할 수 없이 병원에 가니 방광염이라고 하였다. 임신이 된 상태라 치료를 제대로 못 해서 신우신염이 되었다. 치료 과정에서 엑스레이를 마구 찍어대더니 기형아가 될지도 모른다고 유산 시키라고 했다. 첫 임신에서 수술로 제거하면 불임이 될지도 모른다고 낳아보자고 하였다. 4개월 밖에 안 된 태아를 낳게 하려고 3일 동안 밤낮으로 자궁 수축제를 맞고 아래로 풍선 같은 것을 자궁 속에 넣어 부풀려 무거운 물체를 매달아 놨다. 자궁 문이 열리지 않으니 억지로 열려는 시도였다. 이때 어찌나 고생을 했는지 내가 아이를 한 타스를 낳을지언정 절대 유산은 시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3일 동안의 진통을 겪고 겨우 4개월 된 아이를 낳았다. 간호사가 나를 보고 딸인 것 같다고 하였다.

   촉진제를 너무 많이 맞아서 그런가 젖이 엄청나게 불어서 가슴이 터져나갈 것 같았다. 누울 수도 없어 가슴을 잡고 앉아서 날밤을 새웠다. 병원으로 가니 젖이 마르는 약을 주었다. 신혼 시절은 나에게 고통의 시절이었다. 아무래도 이곳으로 되돌려서는 절대 안 되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되돌아가고 싶은 곳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20년만 젊었으면 아니 10년만 젊었으면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싶다고 하는데 나는 늙은 지금이 좋다. 여기까지 얼마나 힘들여 걸어왔는데 되돌아가나? 절대 뒤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냥 죽음의 문을 바라보며 계속 전진하고 싶다. 사실 되돌아간다고 해도 다른 삶을 살 자신이 없다. 아마 똑같은 길을 걸어올 것이다. 이 세상 구경은 한 번이면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