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9. 12. 23. 장수고양이의 비밀(독후감)

아~ 네모네! 2019. 12. 25. 09:42

무슨 비밀인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수 고양이의 비밀를 읽고 -

이현숙

 

   무라카미 하루키는 1949년생이다. 나와 출생년도가 같아서 왠지 모르게 친밀감을 느낀다. 나라는 다르지만 동시대를 살았다는 공감대가 있다. 내가 읽은 그의 저서는 ‘1Q84’ 한 권 뿐이다. 환상적인 이 소설의 줄거리에 끌려 정신 줄을 놓고 빨려 들어가듯이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는 장수 고양이의 비밀이란 이 책에서 사진 대신 그림을 삽화로 썼는데 안자이 미즈마루의 만화 그림이 꽤 정겹다. 만화는 뭔가 인간적이고 정감이 간다. 나도 다시 책을 낸다면 이렇게 만화 그림을 삽화로 쓰고 싶다.

   책 표지의 그림은 하루키가 고양이를 안고 있는 그림이다. 얼핏 보았을 때는 꽃을 들고 있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고양이다. 그런데 고양이 얼굴이 시커멓게 엉망으로 되어있다. 실제로 그의 고양이가 얼굴이 까맸는지 장난삼아 이렇게 했는지 모르겠다.





   차례를 보면 1장이나 2장 등으로 구분한 것이 없이 무조건 쭈욱 늘어놓고 페이지만 표시해 놓았다. 일종의 파격으로 느껴진다. 58편의 산문을 아무 생각 없이 늘어놓은 듯하다. 그 중에 고양이에 관한 글은 달랑 세편뿐이다. 뭔가 사기를 당한 기분이 든다. 58편의 글 중 장수 고양이의 비밀을 책 제목으로 삼은 것은 참 기발한 생각이다. 나처럼 무슨 엄청난 비밀이 있는 줄 알고 책을 사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하지만 책을 읽어 가는 과정에서 그의 솔직 담백한 마음이 느껴져 화장 안한 생 얼을 보는 것 같아 정이 간다. 예를 들면 세상은 어쩌자고 이렇게 빨리 변하는 걸까(구시렁 구시렁)’ 나 같으면 구시렁거릴지언정 이렇게 괄호 치고 쓸 생각은 못했을 텐데.


체벌에 대해라는 글에서 그렇게 평화로운 환경에서 왜 그렇게 빈번히 선생이 학생을 때려야했는지 불가사의 할 따름이라고 했다. 나도 선생 할 때 학생들을 많이 때렸던 기억이 떠올라 미안한 마음이 든다. 체벌도 일종의 교육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공중부유는 매우 즐겁다라는 글에서 그는 공중에 뜨는 꿈을 자주 꾼다고 한다. 나도 예전에는 공중으로 한 없이 날아오르는 꿈을 자주 꿨다. 그런데 지금은 거의 꾸지 않는다. 나이를 먹으니 개꿈만 꾼다.



벌거벗고 집안일 하는 주부는 옳은가에 보면 그게 과연 옳은가 많이 고민했나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꽤 많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아파트에도 전라의 몸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직접 보지 못했는데 자동차에서 떡볶이를 파는 여자가 나에게 알려줬다. 남자들이 길 가다 말고 아파트를 정신없이 올려다보기에 자기도 보니 정말 알몸으로 운동을 하고 있더란다. 하긴 자기 집에서 자기 맘대로 운동하는데 누가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어쩐지 민망한 느낌이다. 아기들도 옷을 벗기고 기저귀도 뺐을 때 신나서 돌아다니는 걸 보면 알몸이 좋기는 좋은가보다. 에덴동산에서 알몸으로 살았던 기억이 우리 세포 속에 남아있기 때문일까? 언젠가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에 가는데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남자가 앞에서 걸어오고 있다. 순간 당황했지만 태연한 척 눈을 내리깔고 그냥 걸어갔다. 사실 인간만 옷을 입고 살지 다른 동물은 다 알몸으로 산다. 이것도 습관을 들이면 아무렇지도 않을 듯하다.


장수 고양이의 비밀에 보면 그가 기른 고양이의 이름은 뮤즈라고 한다. 뮤즈는 순정만화 유리의 성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인데 아내가 여기 푹 빠져있었다고 한다. 자신은 그렇게 야단스런 이름은 싫다고 심히 저항했지만 아내를 이길 수 없었단다. 요새 아내 못 이기는 남편들 꽤 많다. 그는 9년 전 일본을 떠날 때 고단샤 출판부장이던 도쿠시마 씨 댁에 뮤즈를 맡겼다. 그 후 일본에 돌아와서도 뮤즈를 보러 가끔씩 도쿠시마씨 댁에 갔다. 마치 사연이 있어서 헤어졌던 옛 연인과 우연히 재회한 것처럼 기분이 이상해졌다고 한다. 고양이를 안고 고양이 간식까지 상에 놓고 있는 그림이 묘하다. 하지만 아무리 읽어봐도 뭐가 비밀인지 모르겠다.



장수 고양이의 비밀 출산편에 보면 그는 고양이가 새끼를 낳을 때마다 출산 도우미 역할을 한다. 고양이가 새끼를 다 낳을 때까지 앞발을 잡고 들고 있어야하는데 보통 두 세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항상 한 밤중에 새끼를 낳는 바람에 새벽 두 시부터 날 밝을 때까지 날밤을 샌다는 것이다. 자신의 아내가 자식을 낳아도 이렇게는 못 할 것 같다. 그의 아내는 걔들 혹시 당신 아이 아니야?” 하고 놀린단다. 새끼를 낳은 고양이의 얼굴 역시 새카맣다.



장수 고양이의 비밀 잠꼬대 편을 보면 뮤즈는 자다가 잠꼬대를 한다. 그것도 사람의 말을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또렷이 들었다고 하니 믿어야할 수밖에. 게다가 새에게 최면술을 걸어 사냥하는 기술도 있단다. 지붕 위에서 전선에 앉은 참새 두 마리를 기묘한 소리로 부르면 참새들이 뭔가에 홀린 것처럼 쫄랑쫄랑 빨려 들어오는 것을 아내가 발견했단다. 내 참 어디까지 믿어야할지?



저자는 이 고양이는 몇 백 마리에 하나 있을 귀중한 고양이고 그런 고양이를 만난 것은 자기 인생 최고의 행운 중 하나라고 한다. 생각할수록 이해할 수가 없다.


서랍 속의 번뇌라는 개에 보면 저자가 호텔방에서 일을 하기 위해 책상을 갖다 달라고 했다. 그런데 서랍을 열어보니 성인 잡지가 가득 들어있었다. 그는 열일 제쳐놓고 그걸 독파하느라 일을 하지 못했다. 이런 솔직함이 하루키의 장점인 듯하다.


  우리 아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 도시락을 가방에 넣어주려고 무심코 가방을 열었다가 깜짝 놀랐다. 교과서는 한 권도 없고 성인 만화가 가득 들어있었다. 놀라서 아들을 보며 이게 다 뭐냐고 하니 반 아이들이 돌려가며 읽는 거라고 태연히 말한다. 참 세상 엄마들은 다 청맹과니라서 내 아들만은 순진하고 모범생이라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모든 남자들의 성장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그 밖에도 많은 글이 있는데 이것은 199511월부터 13개월 동안 주간 아사히에 연재한 에세이를 모은 것이라고 한다. 그는 이 책을 1996년 여름 세상을 떠난 장수 고양이 뮤즈에게 바친다고 하였다. “뮤즈의 영혼이여 평안히 잠드소서.”라고 쓴 그의 마지막 글을 보면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안 된다.

   몇 년 전 쿠바에 있는 헤밍웨이의 저택에 갔었다. 마당에 고양이탑이 있는데 4층짜리 건물이었다. 그는 애완동물을 좋아해서 오십여 마리의 고양이를 기르고 그 시체를 이 탑 지하에 묻었다고 한다. 개도 무척 좋아해서 죽으면 땅에 묻고 비석도 일일이 세워주었다. 마당에는 무수한 개의 무덤과 그 이름이 적힌 묘비가 인상적이었다.

   애완동물이란 건 내 발에 족쇄를 채우는 존재 정도로 생각하는 나는 어찌 보면 참 비정한 인간이다. 뭐가 장수 고양이의 비밀인지는 모르지만 어찌 됐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진면목을 본 것 같아 나름 의미 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