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9. 11. 17. 57년만에 돌아온 조각보

아~ 네모네! 2019. 11. 24. 16:27

57년 만에 돌아온 조각보

이현숙

 

   5번 동생이 카톡방에 사진을 올렸다. 친정집에서 우연히 조각보 하나를 발견했는데 내 것이라 한다. 자세히 보니 ‘1542 이현숙이란 이름표가 붙어있다.


   예전에는 학년이 올라가면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을 키 순서대로 일렬로 세운 후 번호를 매겼다. 내 번호가 42번인 것은 중학교 1학년 때뿐이다. 그 후로는 키가 별로 크지를 않아서 번호가 점점 줄어들었다.


   내가 중1 때 만든 거라고 댓글을 달았더니 동생이 깜짝 놀라며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건 14살짜리 아이가 만들었다고는 믿어지지 않고 아무리 들여다봐도 전문가 수준이라는 것이다.

   나는 내가 중1때 그런 보자기를 만들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고 그 후에 집에서 사용한 적도 없다. 이게 있는 줄 알았으면 아마 시집 올 때 가져왔을 것이다. 친정 엄마도 이게 있는 줄 몰랐을 것이다. 그래도 이삿짐에서 빠지지 않고 몇 번 이사하는 동안 잘 따라 다녔나보다.

   어제 동생과 남한산성 산행을 하는데 동생이 그 조각보를 가져왔다. 내가 봐도 너무나 정교하게 수를 잘 놨다. 친정 엄마가 도와줬나? 했더니 동생이 엄마가 그렇게 수를 잘 놓았느냐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때 엄마들이 극성스러워 아이들 숙제를 도와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걸 알아차린 선생님은 수를 놓으면 모두 걷어서 캐비넷에 넣어두었다가 다음 시간에 다시 나눠주고 수를 놓게 했다. 하긴 동생이 다섯 명이나 되는데 엄마가 어떻게 내 숙제를 도와주었을까 싶기도 하다. 아마 숙제라면 꼭 해야 되고 최선을 다해서 잘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때부터 내 뇌리에 박혀 있었나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장미꽃 모양의 수를 놓던 기억이 떠오른다. 바늘을 천 뒤에서 앞으로 찔러 올린 후 거기에 실을 챙챙 감아서 다시 천 뒤로 꽂으면 장미꽃잎 하나가 생긴다. 그걸 여러 개 하면 한 송이 장미가 되는 것이다

 

   엄마들의 극성은 숙제를 해주는 정도를 넘어서 입학시험을 볼 때도 난리를 쳤다. 그 때는 중학교도 시험을 보고 들어갔는데 학교마다 시험문제가 달랐다. 경기중학교 시험 문제에 엿을 만들 수 없는 것을 고르는 문제가 나왔다. 객관식 문제였는데 정답은 무즙이었다. 이걸 본 학부모들이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 들고 신문사로 달려갔다. 여러 명의 어머니들이 무즙으로 만든 엿을 들고 찍은 사진이 올라온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무즙 사건이라고 한 동안 입에 오르내린 적이 있다. 자식을 위한 한국 엄마들의 어마무시한 열정은 세계 어느 나라 엄마도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어찌 됐든 57년 만에 다시 내 손에 돌아온 조각보를 보니 감개가 무량하다. 잘 다려서 식탁 유리 밑에 깔려고 다리미를 찾아보니 100볼트용이라 무용지물이다. 몇 십 년 동안 다림질을 안했더니 이런 상황인 줄 전혀 몰랐다. 다음 날 수필수업 가는 길에 세탁소에 들러 다림질을 부탁했다. 오후에 찾으러 오겠다고 했다.

   수필수업을 마치고 오후에 들렀더니 아저씨가 아직 안 다렸다고 금방 다려주겠다는 것이다. 잠시 서서 기다리는데 아저씨가 요새도 이런 걸 만드는 사람이 있느냐고 한다. 중학교 1학년 때 만든 거라고 하니 60년 가까이 되었겠네요? 이건 완전히 골동품이네.”한다. 그 때 이런 걸 만든 걸 보니 좋은 학교 다녔나보다고 슬슬 말을 걸어온다.

   나도 노인이 되어가니 점점 수다가 늘어난다. 가만히 두어도 입이 근질근질한데 이렇게 질문까지 받으면 봇물 터지듯 대책 없이 술술 쏟아져 나온다. 내 이름을 붙인 곳을 다리는 순간 또 떠들어댄다. 내가 중 1때는 42번이었는데 그 후로 키가 안 커서 점점 줄었다고 했더니 42번이면 키가 컸나보다고 자기는 7번이나 8번이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걸 보면 아저씨가 좋아하겠다고 한다. 오잉? 남편이 왜 좋아하지? 하는 생각이 든다.

   집에 와서 식탁 유리를 들고 잘 펴서 깔았다. 남편이 보더니 1 수준 맞네. 서툰 것이 더 정감이 가네.” 한다. 자세히 보니 내가 봐도 삐뚤빼뚤 한 것이 엉성한 티가 난다. 그래도 반세기를 훌쩍 넘어 짠~하고 등장하여 나를 기쁘게 해준 보자기가 고맙다. 식탁을 볼수록 신통방통하다. 이런 걸 소확행小確幸(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하나보다.

   내가 늙어죽도록 쓰다가 딸을 주고 그 후에는 외손녀 송희에게 물려주라고 해야겠다. 그런데 왜 인간은 별 것 아닌 것에 이렇게 애착을 갖게 되는 것일까? 사실 따지고 보면 별 볼일 없는 천 조각인데 말이다. 딸이나 외손녀는 귀찮아 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감정이입도 안 되는데 혼자 감격하여 떠들어대는 것은 대부분 할머니들의 공통점이다. 특히 손자 얘기만 나오면 동영상을 보여주며 입이 귀에 걸리도록 싱글벙글 신통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할머니들의 수다 병에는 어떤 약도 효험이 없다. 나도 가끔 손자 동영상을 동생들 카톡방에 올린다. 손자가 없는 동생들은 별 감흥이 없을 텐데 혼자서 좋아하는 나도 어쩔 수 없는 주책바가지 할머니다. 대책 없는 할망구의 횡설수설하는 헛소리는 언제까지 계속 될까? 아마도 하늘나라에서 초대장이 올 때까지 계속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