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이현숙
정호야 잘 지내고 있니? 네가 간지도 벌써 9년이 되었구나. 올해도 어김없이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지하철에서 바삐 오가는 20대 청년들을 보면 네 생각이 떠오른다.
외할머니 생신날이었지. 네 엄마가 가게 보느라고 참석을 못해서 내가 전화를 했더니 네가 와서 가게를 봐줘야 올 텐데 아직 안 들어왔다고 하더라.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가 다시 전화를 하니 네 엄마가 울부짖으며 네가 죽었다고 하더라. 우리는 갑자기 날벼락을 맞은 듯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았단다.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집으로 쫓기듯 돌아와서 다시 전화를 하니 네가 지하실에서 목을 매달았다고 하더구나. 이틀 밤이나 집에 안 들어와서 친구 집에서 자나보다 했었대. 그런데 이상한 생각이 들어 네 방에 가보니 지갑과 핸드폰이 그대로 있더래. 아무래도 나간 것 같지 않고 집 어딘가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 네 아빠에게 말하니 아빠도 이상하다고 지하실에 가볼까 하다가 혹시 너무 놀랄까봐 아빠 친구를 불렀대. 친구가 내려가 보더니 목을 매 자살했다고 하더구나. 엄동설한에 삼일씩이나 얼음장 같은 지하실에 매달려 있었으니 얼마나 추웠겠니?
할머니가 아시면 돌아가실까봐 할머니를 고모네 집으로 보내고 경찰을 불렀대. 경찰이 와서 검사를 한 후 너를 병원으로 옮겼대. 다음 날 병원에 가서 입관한 네 모습을 보니 너무도 평온한 얼굴이었다. 살았을 때 보다 더 편한 모습을 보고 네가 좋은 곳으로 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네 엄마는 너의 얼굴을 보며
“정호야 더 잘 낳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래도 우리에게 와서 28년 동안 아들 노릇해줘서 고마워.” 하며 울었단다. 네가 남들만큼 똑똑하고 잘 생기고 능력 있어서 좋은 대학도 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도 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라고 스스로 자책하는 것 같았어. 이런 모습을 보는 나도 마음이 찢어지는 듯 했단다.
화장터에 가서 소각로로 들어가는 네 관을 보니 너무도 안타까웠다. 전광판에 소각중이라는 글씨를 보면서 우리는 식사를 했다. 참 사람이란 이상하지? 이토록 가슴 아픈 상황에서도 밥이 입으로 들어가니 말이야. 소각이 완료된 후 다시 소각로 앞으로 가니 네 유골이 밖으로 나왔다. 어찌나 희고 깨끗한지 눈이 부실 지경이었어. 옆의 할아버지 유골은 누르스름하고 탁해 보였는데 너는 유난히도 맑고 깨끗했단다. 그걸 보고 나도 나중에 죽으면 화장해야겠다고 생각했어.
아빠가 네 유골함을 들고 이미 해가 저물어 지금 산소로 갈 수 없으니 집에 가서 하룻밤 재우고 내일 선산 할아버지 산소 옆에 묻어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네가 아직도 아빠 마음속에 살아있구나 했다.
그 후로도 매년 네 기일이 되면 엄마, 아빠와 누나는 네 산소에 갔단다. 할머니가 네가 왜 안 보이느냐고 하면 미국에 돈 벌러 갔다고 했단다. 왜 전화도 안 오느냐고 하면 가게로 전화 왔었다고 거짓말을 했대. 몇 년이 지난 후 할머니가 정호도 결혼해야할 텐데 어째 오지 않느냐고 하셨대.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네가 할아버지 곁으로 간 걸 모르셨단다.
작년에 할머니도 돌아가셨으니 지금은 너와 함께 계시겠지? 할머니가 얼마나 놀라셨을까?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 네가 엄마 꿈에 나타났다고 하더라. 너와 함께 버스를 타고 가는데 네가 엄마의 짐을 덜어주겠다고 난간에서 짐을 내리더래. 하긴 십여 년 동안 할머니 죽 끓여 드리느라고 엄마가 고생 많이 했다. 102세에 돌아가셨으니 장수하신거지. 이모들은 네 엄마에게 정호가 죽어서도 효도하는구나 했단다.
정호야 너 한 번만 더 효도하면 안 될까? 누나가 올 해 벌써 마흔 살이잖아. 누나가 좋은 사람 만나서 빨리 결혼하도록 도와주면 안 되겠니? 아빠는 벌써 70살이 넘었고, 누나는 따로 독립해서 나갔으니 두 노인네가 사는 모습이 어쩐지 쓸쓸해 보인단다. 물론 우리도 둘이 살지만 그래도 미국에서 손자 동영상이 오면 이모들 카톡방에 올리며 자랑질을 한단다. 그럴 때마다 네 엄마에게 미안한 생각이 드는구나. 외손주라도 하나 있으면 집안에 웃음꽃이 필 텐데 하는 마음뿐이란다.
거기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있으니 좋기는 하지? 너를 생각할 때마다 네가 그렇게 된 것은 네 잘못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좋은 학교 안 나와도, 좋은 직장에 취직 못해도 사람은 각자의 장점이 있는 거고 남이 대신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 가치가 있잖아. 그걸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순서를 정하고 판단하는 우리 사회가 잘못 된 거지. 너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 모두가 너를 코너로 몰아붙이고 결국은 너를 링 밖으로 떨어뜨린 살인자라는 생각이 든다.
정호야 그건 정말 네 잘못이 아니야. 그곳 하늘나라에서나마 씩씩하고 당당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잘 지내기 바란다. 오래지 않아 우리 모두 그곳에서 만나게 될 거야. 그때까지 잘 지내렴.
2019년 10월 둘째 이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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