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9. 9. 27. 뜨거운 감자

아~ 네모네! 2019. 10. 19. 22:19

뜨거운 감자

이현숙

   친정의 막내 동생이 그 딸과 함께 친정집에 온다고 5번 동생이 카톡방에 올렸다. 추석 때 왔었는데 그새 왜 또 온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추석 때 친정에 와서 그 딸과 함께 하루저녁 자고 가려고 했는데 시어머니가 빨리 오라고 해서 그냥 갔다더니 서운해서 또 오나보다.

   우리 집은 딸이 여섯이라 카톡방에서 번호로 부른다. 그러니까 막내는 6번이고 나는 2번이다. 막내가 알콜 중독으로 이혼한 게 벌써 10여년이 되었다. 제부가 아침에 전화를 하여 자기 집에 좀 와 달라고 했다. 제부는 출근해야하는데 막내 동생이 술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린다는 것이다. 놀라서 달려가 보니 방에 술병은 나뒹굴고 두 아이는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다. 초점을 잃은 눈이다. 동생은 술에 취해 널브러져 정신 줄을 놓고 있다. 이 때 아들은 서너 살 되었고 딸은 그보다 더 어렸다.

   이런 일이 잦다보니 제부가 나에게 전화하여 도저히 살 수가 없으니 이혼해야겠다고 한다. 나도 더 말릴 수가 없었다. 결국 막내는 친정으로 오고 아이들은 제부가 키웠다. 두 아이가 다 대학생이 되었으니 벌써 오래전 일이다.

   알콜 중독은 본인도 힘들지만 옆의 사람이 더 힘들다. 우리 이모도 알콜 중독이었는데 술 먹고 길바닥에 쓰러져 자고 하는 꼴을 보다 못해 이모부는 목을 매어 자살했다. 알콜 중독 환자의 배우자는 살인, 아니면 자살 밖에 탈출구가 없다. 도저히 함께 살 수가 없다. 그나마 나은 해결책은 이혼이나 가출이다. 그러니 어찌 참고 살라고 하겠는가?

   막내는 병원을 들락거리며 혼자 이리 저리 돌아다니다가 재혼을 했다. 같은 알콜 중독자다. 어찌 생각하면 오히려 잘 된 일이다. 같은 환자이니 서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둘이서 번갈아 가며 입원도 하고 아주 둘이 세트로 입원하기도 하지면 그래도 몇 년 째 같이 살고 있으니 다행이다.

   이렇게 몸을 마구 굴리다보니 뇌교혈관종까지 생겨서 눈꺼풀은 내려앉고 얼굴은 떨리고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 그런 꼴을 언니들에게 보이기 싫었는지 추석 당일에 친정에 와서 새어머니를 보고 갔단다. 오빠와 언니들이 추석 다음 날 친정에 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 동생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랬다고 잘 해주는 것도 아니다. 그냥 속으로 걱정만 된다. 전화가 오면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이거 또 무슨 사고치지 않았나 싶다.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유독 이 동생은 좋지 않은 유전자를 물려 받았나보다.

   전화를 받으면 찔찔 짜면서 죽는 시늉을 하고 돈 달라고 하니 그걸 듣는 나도 괴롭다. 불쌍하기는 한데 이건 연민도 아니고 동정도 아니고 뭐가 뭔지 모르겠다. 아마도 교묘히 숨겨진 이기심일 지도 모른다. 여러 사람 귀찮게 하지 말고 조용히 사라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3번 동생과 나는 마음이 약해 도와줄까 하면 4번 동생은 적극적으로 반대다. 나라에서 몇 십 만원씩 생활비도 주고 병원비도 공짜인데 돈 쓸 일이 없다는 것이다. 돈 주면 분명히 그걸로 술 마실 테니 절대 주면 안 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그 돈으로 술 먹고 술 먹으면 몸이 더 나빠지니 백해무익이라는 것이다. 그건 결코 도와주는 게 아니라고 한다. 듣고 보면 그럴 듯도 하다.

   옛날 같으면 이런 사람 다 굶어 죽었을 텐데 지금은 나라 형편이 좋아져서 돈도 주고 병원에 입원도 시켜주니 우리나라 좋은 나라다.

   막내가 잠잠하니 소식이 없어도 이거 어디 가서 죽은 거 아닌가 걱정이고, 소식이 와도 두려우니 한 마디로 막내는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뜨거운 감자다. 강제로 입원시켜 술 생각이 없어질 때까지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뜨거운 감자들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지 모르지만 아마도 이런 아픔을 안고 있는 가정이 엄청 많을 것 같다. 이 뜨거운 감자가 빨리 식어 먹기 좋은 따뜻하고 포슬포슬한 감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9. 10. 12.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0) 2019.10.19
2019. 10. 6. 끝없는 열정  (0) 2019.10.19
2019. 9. 20. 돈으로 때우기  (0) 2019.10.19
2019. 9. 6. 내가 만든 두부  (0) 2019.09.14
2019. 8. 23. 버리기 연습  (0) 2019.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