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9. 8. 23. 버리기 연습

아~ 네모네! 2019. 9. 14. 21:35

버리기 연습

이현숙

   차를 타고 가다보면 곳곳에 요양원 건물이 보인다. 요양원이라고 하면 시골의 산기슭에 있어야할 것 같은데 요즘은 시내 한 복판 고층 건물에도 많다. 요양원 건물을 볼 때면 고려장이 떠오른다. 고려시대에는 부모가 늙고 병들면 자식이 부모를 지게에 지고 산 속 깊이 가서 거기다 버리고 왔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역사적 근거가 전혀 없는 말이라고 한다. 고려장이란 말도 노인을 버려 장사한다는 뜻으로 기로장(棄老葬)이라 한 것이 변하여 고려장이 되었다고 한다.

   어찌 되었던 늙고 병들면 내다 버리고 싶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 같다. 내가 나를 봐도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린란드에 갔을 때 가이드에게 들은 얘기다. 에스키모 인들은 추운 겨울에 먹을 것이 떨어지면 할아버지는 카약을 타고 유빙이 떠도는 바다로 가서 죽고 할머니들은 높은 바위에서 바다로 뛰어내려 죽었다고 한다. 자손을 살리려는 눈물겨운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은 먹을 것이 풍부해도 부모 모시기가 힘들다고 나 몰라라 하거나 심지어 부모를 죽이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사회가 복잡하고 삭막해지니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런 일이 생기는 지도 모른다.

   요양원을 지나칠 때면 요양원 안 가고 집에서 갑자기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건강하게 저녁밥까지 잘 먹고 자다가 돌아가시는 분도 가끔 있다. 그런 사람이 부럽다.

   나부터도 요양원이라고 하면 다 죽게 되어야 들어가는 곳으로 착각하며 사는데 그렇지만도 않다. 같이 산에 다니던 어떤 분은 70살이 되자 집을 팔고 남편과 고급 실버타운으로 들어갔다. 부부의 방이 따로 있고 식사는 공동으로 해결하고 손님도 초대할 수 있어 너무 편하고 좋다는 것이다. 거기서 살면서 해외여행도 다니고 즐겁게 살고 있다. 하긴 집 관리하느라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그게 더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돈이 너무 많이 드는 곳이고 이런 곳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 열악한 환경에서 불편하게 지내는 사람이 많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버리기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집도 버리고 물건도 버리고 내가 간 후에 남들이 정리하기 좋게 해줘야 한다. 그런데 무엇보다 욕심을 먼저 버려야할 것 같다. 물질에 대한 욕심도 버려야하지만 마음의 욕심도 버려야겠다.

   이번 여름에 알프스 트레킹을 갔다. 3주 동안 300키로를 걸었다. 무얼 보겠다고 이렇게 죽자 사자 걸었나 모르겠다. 열흘은 몽블랑 둘레 길을 걷고 열흘은 돌로미테 길을 걸었는데 멋지기는 하다. 야생화가 지천으로 깔려 마치 20일 동안 천국일주를 하고 온 기분이다.

   몸은 갈수록 망가지는데 보고 싶은 욕심은 하늘을 찌를 듯 높아진다. 이 욕심이 마침내 나를 집어삼켜 파멸로 이끌 것 같다. 요즘은 왜 그리도 TV에 여행 프로그램이 많은지 그걸 보면 여기도 가고 싶고 저기도 가고 싶고 가고 싶은 곳이 점점 늘어난다. 남은 수명은 점 점 줄어드는데 가고 싶은 곳은 점 점 많아지니 환장할 지경이다.

   아마도 내 영혼이 내 육신을 빠져 나가야만 이 욕망이 없어질 것만 같다. 아니 내 영혼이 육신을 빠져 나가면 비행기 탈 필요도 없이 더 가볍게 더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버리는 날 가장 자유로운 몸이 되어 하늘을 날아다닐 것이다. 이 날이 솜털처럼 가볍게 다가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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