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가락 장단
이현숙
친정엄마는 손님 접대를 좋아했다. 아버지 생신이나 엄마의 생일이 돌아오면 일가친척들을 모조리 불러들여 잔치를 벌인다. 며칠 전부터 김치를 담그고 술을 담가 그 날을 준비한다. 마장동 우시장에 가서 간, 허파, 내장 등 온갖 부속물들을 사다가 안주를 준비한다.
그 날이 되면 외갓집 식구들과 큰집 식구들이 아침부터 줄줄이 들어선다. 그러면 대낮부터 술판이 벌어진다. 큰집 식구들은 조용히 술과 식사를 드신 후 일찌감치 가시는데 외숙모와 외삼촌, 이모들은 밤늦도록 술과 노래로 집이 들썩들썩하게 놀고 간다.
딱히 장단 맞출 도구가 없으니 젓가락이 유일한 악기다. 젓가락을 두드리며 합창을 하면 온 동네가 시끄럽다. 흥에 겨우면 일어나서 비틀비틀 춤까지 추니 갈수록 가관이다. 나는 이런 모양이 왜 그리도 싫었는지 부모님 생신이 돌아오는 것이 기쁘지 않았다. 공연히 동네 사람들 얼굴 보기가 부끄러웠다.
지금은 도처에 노래방이 있으니 이런 모양은 보기 어렵다. 하지만 노래방도 문제가 있다. 노래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도우미를 불러 성매매까지 하니 이게 문제다.
노래방 도우미의 성매매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듯하다. 십여 년 전 중국 쓰촨 성에 있는 쓰꾸냥 산에 갔다. 한 겨울에 뭘 먹겠다고 3500미터 고소에서 꽁꽁 언 땅바닥에 텐트를 치고 등반을 했다. 등반을 마치고 성도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한 후 남자들은 노래방에 가고 여자들은 호텔로 돌아왔다.
막 잠이 들려는 순간 한 남자 대원이 침구를 들고 우리 방으로 오더니 우리 방에서 같이 자겠다는 것이다. 의아해서 바라보니 룸메이트가 노래방 도우미를 데리고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방을 비워주고 왔으니 우리 방에서 같이 자자고 한다. 본의 아니게 어쩔 수 없이 셋이서 혼숙을 했다. 다음 날 왜 도우미를 숙소까지 데리고 왔냐고 하니 가방 들고 따라 나오는데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하긴 그 심정도 이해가 가기는 한다. 우리나라처럼 노래방 많은 나라도 없을 것 같다. 우리 민족이 유난히 노래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인가 보다.
하긴 죽어서 저승 갈 때도 노래를 불러준다. 어려서 큰댁에 갔을 때 동네에 초상이 났다. 울긋불긋한 상여 앞에 한 남자가 올라서서 요령을 흔들며 노래를 부른다. 가사는 잘 모르지만 그 구슬픈 가락은 어린 내 마음에도 깊숙이 파고들었다.
오늘도 망우산 둘레길을 걷다보니 라디오를 들으며 크게 노래를 부르는 할아버지가 보인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뭐가 좋아서 그리도 구성지고 멋들어지게 불러대는지 모르겠다. 노래 곡목도 딱 한 가지다. 한 많은 대동강이란 노래다. 북한이 고향인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 많은 대동강아 변함없이 잘 있느냐? 모란봉아 을밀대야 네 모양이 그립구나. 철조망이 가로막혀 다시 만날 그때까지 아~ 아 아 소식을 물어본다. 한 많은 대동강아~’ 노래 가사에서 이 할아버지의 한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둘레길 한 구석에는 운동기구들이 여러 대 있다. 여기서 자주 만나는 할머니가 있다. 평소에는 인사만 간단히 하고 지나갔는데 하루는 이 할머니가 벤치에 앉아 크게 노래를 부른다. 곁을 보니 막걸리 병이 보인다. 술기운에 흥이 나서 노래가 절로 나왔나보다. 그 후 남편과 나는 이 할머니를 막걸리 할머니라고 명명하였다.
어쩌면 한 평생 노래 속에 살다가 땅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노래와 함께 하는 게 우리네 인생이 아닐까 싶다. 아니 우리의 인생 자체가 하나의 노래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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