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9. 6. 23. 불 꺼진 창

아~ 네모네! 2019. 8. 22. 16:37

불 꺼진 창

이현숙

   매주 화요일마다 문화센터 등산교실에서 산에 간다. 보통 집에 오면 밤 10시가 넘는다. 그날도 캄캄한 밤에 아파트 앞에 오자마자 13층을 바라본다. 불이 꺼져있다. 순간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남편이 집에 아직 안 온 것이다.

   오랜만에 남편이 친구 모임에 나가 저녁을 먹는다고 했다. 1년이 넘도록 남편이 모든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 작년 3, 내가 해외여행 갔을 때 망우산 갔다가 넘어졌다고 했다. 넘어진 순간 공황상태에 빠진 듯 기분이 안 좋았단다. 어깨가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뼈에는 이상이 없는 것 같다고 하여 물리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근 한 달 만에 내가 집에 와보니 소파에 앉아있는 남편의 두 눈이 퀭하니 들어간 게 중병에 걸린 사람 같았다. 특별히 어디가 아픈 데는 없는데 그냥 기운이 없다고 한다. 한 달 동안 씻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 후로도 밥 먹다 말고 기운 없어 밥 못 먹겠다고 소파로 가서 들이 눕는다. 한약도 먹이고 양약도 먹이고, 보양식을 먹여도 차도가 없다. 내과 의사는 특별히 병이 있는 것 같지는 않으니 신경과 쪽으로 가보면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아무래도 정신과 쪽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정신건강학과로 갔다. 이것저것 상담을 하더니 약을 지어준다. 약이 안 맞았는지 처음에는 더 심해져서 119에 실려 가는 사태까지 생겼다. 약을 바꾸어 먹으면서 조금씩 나아졌다. 지금도 계속 약을 먹고 있지만 이제는 웃기도 하고 산책도 다닌다.

   남편도 젊어서는 허구한 날 친구들과, 또 직장 동료들과 술 먹고 다니느라 밤을 패고 돌아다녔다. 나는 저녁마다 빈 집에 돌아오는 것이 싫었다. 남편이 먼저 와서 불 켜 놓고 기다리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황이 역전 되었다. 나는 마냥 돌아다니고 싶은데 남편이 나가지를 않는다. 매일 집구석에 틀어박혀 있다. 친구들이 만나자고 해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나가지 않는다. 나는 어디에 외출했다가도 남편이 기다리고 있을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치 못해 부리나케 돌아온다.

   하지만 언젠가는 또 이 날을 그리워할 지도 모른다. 남편이 먼저 가고 혼자 남게 되면 집에서 불 켜고 기다리는 남편이 있던 그 날이 좋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람은 어찌하여 항상 과거가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지금이 가장 행복한 날인데 그걸 모르고 지나간 날만 그리워하고 있으니 참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부터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현재의 행복을 만끽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