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9. 6. 16. 비수로 심장을 찌르다.(류시화 독후감)

아~ 네모네! 2019. 6. 17. 18:00


비수로 심장을 찌르다

류시화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를 읽고 -

이현숙

 

   시에 대해 일자무식인 내가 류시화의 시집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는 제목이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끈다.

   류시화는 1959년 충복 옥천에서 태어났다. 정지용 시인이 탄생한 곳이다. 옥천이란 곳이 사람의 감성을 키우는 묘한 마력이 있나보다. 경희대 국문과 재학 중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등단 10년 후 첫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를 발표했다. 이 책은 등단 후 35년간 발표한 시들 중에서 대표 시 98편을 모아 연도별로 묶어 놓았다.

   책 표지도 새 한 마리 달랑 그려져 있는 것이 특이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한 마리가 아니다. 한 마리의 몸속에 열 마리의 작은 새가 들었다. 그는 새와 별에 대해 특히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그의 시를 보면 예리한 촉이 느껴진다. 그는 도대체 어떤 감성을 가졌기에 이토록 기막힌 어휘가 샘솟듯 끊임없이 솟아나오는 것일까?

1.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생각은 어느 누구도 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대는 누구일까 궁금하다.

2. 소금인형이란 시에서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 속으로 뛰어든 나는 소금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네. 어떻게 이런 생각이 떠오를 수 있을까? 신기하다.

3.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 시는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안개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느낌이다. 수필은 유리알처럼 투명한데 말이다.

4. 많은 눈을 나는 보았다. 사랑할 것이 있는 눈과 사랑을 찾아 헤매는 눈, 어떤 눈은 인생을 이미 다 살았고 어떤 눈은 그렇지 않았다는 시구를 읽으며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생각한다. 우리 인간은 끝없는 욕망에 사로잡혀 평생 그 노예로 사는 지도 모른다. 눈은 보아도 보아도 만족함이 없고 입은 먹어도 먹어도 배를 채우지 못한다. 끝없는 욕망이 끝없는 고문이 된다. 죽어서 눈이 멀고 귀가 먹고 입이 다물어지면 참 자유를 얻을 지도 모른다.

5. ‘봄비 속을 걷다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허무한 존재로 인생을 마치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모든 인간은 아니 모든 생물은 이런 두려움 속에 사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모든 생물은 자신이 이 세상에 왔다간 흔적을 남기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나보다. 자신의 복제품을 만들기 위해 짝을 찾아 헤맨다.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려고 생명을 걸고 싸운다. 예술가는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고 불후의 명작을 만들기 위해 몸부림친다. 식물들은 자신의 유전자를 넣은 씨를 무수히 쏟아낸다. 작가도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고 밤을 새워 고심하며 글을 쓰는지도 모른다.

6. 나비라는 시에는 이런 말이 있다. 달이 지구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지구에 달맞이꽃이 피었기 때문이다.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이제 막 동그라미를 그려 낸 어린 해바라기 때문이다. 이런 구절을 볼 때 류시화 시인의 가슴 속엔 도대체 어떤 감각이 살아 있기에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지 경이롭기만 하다.

7. ‘별에 못을 박다라는 시에 어렸을 때 나는 별들이 누군가 못을 박았던 흔적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는 누구나 이런 기막힌 생각을 하는데 어른들이 그 싹을 다 자른 것이 아닐까? 우리 딸도 어렸을 때 밤하늘의 별을 보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엄마 별들은 왜 안 떨어져? 본드로 붙였어?”

8. ‘피로 써라는 시에서 나는 피로써 시를 쓰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는 피로 시를 쓰는 것 같다. 피를 말리면서 시를 쓰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시가 나올 수 있을까?

9. 어머니라는 시에서 시가 될 첫 음절, 첫 단어를 당신에게서 배웠다. 당신은 날개를 준 것만이 아니라 채색된 날개를 주었다. 더 아름답게 날 수 있도록. 정말 그는 그 어머니에게서 이런 감성을 물려받았는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의 내면에는 그 조상들의 무수한 유전자가 조합된 우주가 들어있는지도 모른다.

10. ‘얼음 연못이란 시에서 연못은 심장까지 얼지 않기 위해 밤마다 언 몸을 추슬렀을 것이라 했다. 나는 죽었다 깨나도 이런 생각은 못한다. 물은 4때 밀도가 가장 커서 4가 되면 밑으로 가라앉는다. 위에 있는 물은 0가 되어도 가벼워서 가라앉지 못하고 물은 위에서부터 얼게 된다고 생각한다.

자양중학교 근무할 때 아침마다 건대 속으로 걸어서 학교에 갔다. 겨울이면 호수가 꽁꽁 언다. 그 위에 흰 눈이 쌓이면 시베리아 벌판처럼 아득하다. 하루는 두 남녀가 그 위에서 입맞춤을 하고 있었다. 닥터 지바고와 라라 같았다. 이들이 이런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 수 있는 것도 물이 위에서부터 얼기 때문이다. 물고기들이 물밑에서 얼어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것도 물의 이런 특성 때문이다. 류시화의 생각과 내 생각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한 마디로 류시화의 글쓰기는 예리한 비수로 심장을 찌르는 느낌이다. 그에 비해 나의 글쓰기는 무딘 식칼로 두부를 써는 모양새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