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9. 4. 18. 구경 한 번 잘 했네 (독후감)

아~ 네모네! 2019. 4. 19. 17:33

구경 한 번 잘했네

태원준의 엄마, 결국은 해피엔딩이야를 읽고 -

이현숙

 

   태원준이란 사람이 글도 쓰고 사진도 찍은 엄마, 결국은 해피엔딩이야!’라는 책은 표지에 작은 글씨로 들어있는 부제가 멋지다.

키만 큰 30세 아들과

깡마른 60세 엄마,

. . . 500일간

세계를 누비다!’

이걸 보고 이 책을 고르지 않는다면 그는 참 여행가가 아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내 마음을 끌기에 충분한 책이다. 작가 태원준은 세계테마기행, 강연 100, TV 책을 말하다에 출연했다고 하는데 내가 기억력이 엉망이라 그런지 관심 없게 봐서 그런지 통 낯설다.

   엄마의 환갑잔치를 위해 모아둔 돈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차라리 이 돈으로 엄마와 세계여행을 하는 게 낫겠다 싶어 일을 저질렀다고 한다. 정말 이런 효자 아들 하나 두고 싶다. 500일 동안 총 70개국, 200여 개의 도시를 휘젓고 다녔다.

   짧은 기간 동안 남편과 친정 엄마를 잃은 엄마를 위로해주고 싶었다는 저자의 착한 마음에 마냥 큰 점수를 주고 싶다. 30년간 일 해온 엄마의 가게를 정리하고 누나와 함께 은퇴 파티까지 준비하며 이 자리에서 세계여행 항공권을 선물한 이런 아들이 세상 천지에 태원준 말고 어디 있을까 싶다.

   머리말에서 이 여행을, 이 소중한 시간을 선물해준 아버지께 드린다는 말도 내 마음을 울린다.

엄마와 함께 이런 여행을 꿈. . .’ 에 그의 여행에 대한 진솔한 생각이 담겨있다.

1. 더욱 자유로운 여행을 하고 싶다.

2. 여행 중 꼭 한 번은 감동의 눈물을 흘려보고 싶다.

3. 공정하고 착한 여행을 하고 싶다.

4. 주변 사람들에게 꿈을 주고 싶다. 고 했는데 이 책을 읽고 보니 이 네 가지 꿈을 다 이룬 것 같다.

   책의 목차도 특이하다. 각 나라의 이름을 큰 제목으로 삼고 그 안의 소제목은 페이지와 그 때 그때의 상황을 제목으로 잡았다. 예를 들자면

MOROCCO라는 제목에 022_도대체 우리 비행기는 어디 간 거야? 이런 식이다. 재미있는 목차다.

본문이 시작되는 곳에는 그 제목에 맞는 사진이 작은 원 안에 들어있다.

  가끔씩 엄마의 글도 소개했는데 엄마의 여행노트 1번은 이런 글이다.

시간으로만 따져본다면 이번 여행은 내 인생의 찰나와도 같을진대 어찌 이 짧은 순간에 이리 많은 선물을 받는 걸까? 하늘 가까이에서 받은 선물은 남편이 준 것일지도엄마가 준 것일지도텅 빈 비행기 안에서 차오르는 행복이 나를 감싼다.' 엄마의 감각도 보통이 아니다. 태원준은 엄마의 이런 감성을 타고 났나보다.

   이들은 주로 카우치 써핑으로 여행을 했는데 카우치(COUCH)는 소파, 써핑(SURFING)은 파도타기, 즉 남의 집 소파를 파도타기 하듯 갈아타며 여행하는 방법이다. 값도 저렴하고 현지인과 직접 대화하며 현지 음식을 먹고 여행을 하니 여행의 참 맛을 보기에는 최적의 방법인 듯싶다.

   기행문을 쓰는 방법도 특이하다. 나는 첫 날부터 시시콜콜 순서대로 쓰는데 태원준은 처음 나오는 글이 모로코 카사블랑카다. 여행을 시작한 지 153일째 되는 날이다. 여행한 순서에 관계없이 재미있고 특이한 경험을 앞에 둔 것이 참신한 발상이다.

   글을 읽다가 내가 그곳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생각을 한 것을 보면 동지를 만난 듯 반갑다. 현지어도 영어도 모르는 엄마가 현지인과 의사소통을 너무도 잘 하는 걸 보고 저자는 깜짝 깜짝 놀란다. 사실 사람들은 어떤 뉘앙스로 소통하는 지도 모른다. 내가 노르웨이 갔을 때 배를 타고 피요르 관광을 했다. 친구와 제일 앞에 앉았는데 그만 둘 다 꼬박꼬박 졸았다. 현지인들이 현지어로 얘기하며 웃어대는데 말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우리 얘기를 하는 게 분명했다. 저렇게 졸거면 왜 앞에 앉았느냐는 것이다. 우린 낯 뜨거워서 슬그머니 일어나 뒤로 갔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진을 찍었을 때는 더 반가운 느낌이 든다. 작년에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거리에서 맨홀 뚜껑 조각품에 엎드려 사진을 찍었는데 이 사람들도 그 조각품을 찍었다.

 책 뒤표지 안쪽에 여행루트를 별자리처럼 그려놓은 것도 재미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이 모자가 부러웠다. 이런 아들을 둔 것도 부럽고 이렇게 자유롭게 여행 하는 것도 부럽다. 책 제목과 같이 이들은 해피엔딩으로 삶을 마감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사실 한 번 왔다가는 세상인데 실컷 구경하고 가고 싶다. 내가 죽음을 맞이할 때는 이런 독백을 하고 싶다.

구경 한 번 잘 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