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9. 4. 26. Too Young

아~ 네모네! 2019. 6. 1. 17:22

Too Young

이현숙

   밖에는 하얀 눈이 온천지에 쌓여있다. 하얀 눈 위에 새하얀 보름달이 빛난다. 달빛이 이토록 휘황찬란한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하얀 다리를 건너니 천국으로 들어가는 듯하다.

   오두막집 사랑방에 모여 평가회를 한다. 희미한 등잔불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아 농촌 봉사 나온 대원들이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다. 그동안의 성과와 개선할 점, 느낀 점 등을 발표하고 돌아가면서 노래도 불렀다. 내 순서가 되어 냇 킹 콜의 Too Young을 불렀다. 무슨 겉멋이 들었는지 영어로 외워서 불렀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얼마 후 학교로 편지가 한 통 날아들었다. 우리가 묵던 집 아들에게서 온 편지다. 그는 우리와 함께 생활하고 평가회도 같이 했다. 그 편지를 편 순간 그의 절절한 마음이 가슴으로 밀려들었다. 그 사랑방을 열 때마다 아쉬움과 그리움이 몰려온다는 것이다. 그 때까지 이토록 절절한 사랑의 고백을 받아본 일이 없는지라 나도 모르게 마음이 녹아들어갔다. 순간 내가 대학 생활 때려치우고 시골로 내려가 이 사람의 아내가 될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몇 몇 대원이 그 후 이 집에 인사를 간다고 하며 그 아들에게 사진 앨범을 하나 사주고 싶으니 날보고 앨범을 고르라고 한다. 어떤 것을 골랐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남학생들이 인사를 가서 선물을 전하며 내가 고른 것이라고 하자 그가 무척 기뻐하더란다.

   그 후 학교생활에 정신 팔려 지내느라 그 사람 생각은 까마득히 잊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때는 참 너무 어린 철부지였다. 그 사람의 아내가 되었다면 농사일을 하며 한 평생 지냈을까? 아마 감당 못하고 서울로 뛰쳐 올라왔을 것이다.

   결혼 후 남편이 괴산에 땅 몇 백 평을 산 적이 있다. 거기에 감자를 심어보자고 씨감자를 사가지고 내려갔다. 뙤약볕에서 한 시간 정도 일했더니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아파왔다. 결국 밭 가장자리로 나가 토하고 말았다. 이런 저질 체력으로 무슨 농사를 지었겠나 싶다.

   남편과 투닥투닥 싸우고 나면 가끔 그 사람 생각이 날 때가 있다. 지금 이름은 잊었지만 성은 심 씨였던 것 같다.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강림리. 몇 십 년이 지난 후 남편과 가보니 그 때 그 곳이 어디쯤인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하면 스무 살의 나는 그야말로 Too Young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