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9. 3. 29. 진짜 같은 가짜

아~ 네모네! 2019. 4. 13. 17:35

진짜 같은 가짜

이현숙

   면목중학교에 근무할 때 일이다. 생물 선생님이 신규로 왔다. 나는 생물 전공은 아니지만 같은 과학교사인지라 과학부실에서 같이 근무하게 되었다. 나는 25년이 넘게 교직생활을 하다 보니 나태해질 대로 나태해진 상태였다. 지금까지 굴러가던 관성으로 별 생각도 없이 그냥 저냥 굴러가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새로 교직생활을 시작한 이 선생님을 보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선생님은 붕어해부를 할 때는 면목시장에 직접 가서 붕어를 사왔다. 나도 과학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느껴 함께 갔다.

   면목시장에는 가게도 없이 맨땅에서 붕어나 잉어를 파는 할아버지가 있다. 이포나루 근처에서 본인이 직접 잡아온다고 했다. 그야말로 어부다. 매일 매일 다음 날 실험할 붕어를 샀는데 크기가 마땅한 것이 없을 때는 그 할아버지 집에까지 가서 적당한 크기의 붕어를 골라서 샀다.

   고사리를 가르칠 때는 용마산에 직접 가서 고사리를 따왔다. 나도 같이 갔는데 일일이 잎을 뒤집어 보며 홀씨가 생긴 것만 따 왔다. 나도 고사리 홀씨가 잎 뒤에 그렇게 오돌도돌하게 맺혀있는 것을 그 때 처음 봤다. 몇 명의 학생들도 데리고 갔는데 아이들도 너무 재미있어하고 신기해했다.

   곁에서 이 선생님을 볼 때마다 존경심이 저절로 우러났다. 평생 교직생활하면서 내가 존경한 선생님은 이 선생님이 유일하다.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겨울방학 때다. 이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좀 만나고 싶다는 것이다. 방학인데 무슨 일인가 싶어 약속장소로 갔다. 아무래도 교직을 그만 두어야할 것 같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린가?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수녀원으로 가겠단다. 나는 이건 정말 교육계의 크나큰 손실이란 생각이 들어 왜 갑자기 수녀가 되려고 하느냐고 말렸다. 하지만 본인은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온 일이라고 했다. 더 이상 말릴 수도 없었다. 2월까지 근무하고 기어이 사표를 냈다. 대학원까지 나왔는데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겨우 교직 생활 1년 만에 교직을 떠나다니 보는 내 마음도 너무 아팠다.

   천진암에 있는 갈멜 수녀원으로 간다고 했다. 몇 달이 지나서 과학선생님들 몇 명이 면회를 갔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이 선생님은 우리와는 너무 먼 사람으로 보였다. 그곳에서는 신문지 한 장도 몇 번씩 재활용해서 쓴다고 했다. 어찌나 사방이 고요한지 파리 나는 소리가 굉음처럼 크게 들렸다. 거기서 농사도 짓고 묵상도 하고 기도하며 지낸다고 했다. 그 후에 들으니 스페인에 있는 갈멜 수녀원으로 갔다고 한다.

   지금도 그 선생님을 생각하면 내 모습이 부끄럽다. 나는 진짜 선생님이 아니고 가짜라는 생각이 든다. 겉으로 보면 KS딱지도 붙었고 경력도 탄탄하니 남들이 보면 꽤 괜찮은 선생님으로 속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진짜 같은 가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