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9. 2. 22. 쓸모없는 것의 쓸모

아~ 네모네! 2019. 2. 24. 14:02




쓸모없는 것의 쓸모

아 네모네 이현숙

   안방 머리맡의 상 위에 성경책 두 권이 나란히 놓여있다. 한 권은 대학교 졸업할 때 고대 다니던 남학생이 선물한 것이고, 한 권은 아들이 준 것이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성경을 조금씩 보는데 항상 아들이 준 것으로 읽는다. 고대생이 준 성경은 너무 오래되어 다 낡고 그동안 성경이 여러 번 다시 번역되어 지금 보는 성경과 많이 다르다. 자연히 내 손에서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내가 대학교 다닐 때 UBF라는 기독교 동아리가 있었다. 대학생 성경읽기라는 모임인데 안암동에 있는 고대와 용두동에 있는 서울사대가 합쳐서 하나의 모임을 이루고 있었다. 거기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모여서 성경공부를 하고 일요일에는 예배를 보았다. 숙제도 많아서 어떤 때는 새벽까지 해야 했다. 시험공부는 밤 12시가 넘도록 한 적이 없는데 성경숙제는 밤을 패고 했다. 무슨 열정이 뻗쳐서 그랬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목자님이 나보다 후배인 이 고대생과 짝을 지어 성경공부를 하라고 하여 일주일에 한 번 정도씩 몇 달간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내가 졸업할 때가 되자 이 남학생이 성경책을 선물로 주었다. 졸업한 후 만난 적도 없고 전화 통화도 한 적 없이 자연스럽게 잊혀져갔다. 지금은 이름도 성도 얼굴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성경책을 볼 때마다 그 시절이 떠오른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둘이 만나 성경공부를 했다. 하지만 후배라서 그런지 내가 못 생겨서 그런지 아무 감정도 일어나지 않았다.

   성경표지는 다 낡아 껍질이 벗어졌지만 안쪽에 쓰인 축 졸업 1972. 2. 26. 증정이란 글씨는 지금도 선명하다. 처음에는 이 책을 애용했는데 이제는 아무 쓸모가 없어 그냥 상에 놓여있다. 단지 한 가지 일로만 쓰인다. 앞표지 안쪽에는 천 원짜리를 모아두고 뒤표지 안쪽에는 5천 원짜리를 모아두었다가 잔돈이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쓴다. 성경책이 이런 용도로 전락한 것이 벌써 수십 년이다. 그 때 그 남학생이 이걸 알면 엄청 실망할 지도 모르겠다.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떤 물건이 어떤 존재에게는 귀한 가치가 있지만 다른 존재에게는 아무 쓸모가 없다. 다이아몬드가 인간에게는 너무도 귀한 가치를 가지지만 원숭이에게는 바나나만도 못하다. 인간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에 너무 귀한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 먹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하는 미술품이나 무지막지하게 비싼 악기들은 다른 동물에게는 아무 쓸모없는 것들이다. 반대로 공기나 물 같은 것은 너무도 귀한 것이지만 그 존재가치를 잊고 살 때가 많다.

쓸모없는 것을 버리지 못하고 엉뚱하게 쓰는 나 같은 멍청한 사람도 종종 있는 듯하다. 생각할수록 인간은 참 어리석은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