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9. 1. 31. 나는 신이로소이다

아~ 네모네! 2019. 2. 24. 13:55

나는 신이로소이다

아 네모네 이현숙

   나의 주인은 바보다. 동생과 그린북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는데 서울극장을 어떻게 가야할지 몰라 나에게 묻는다. 내 얼굴에 있는 지하철 종결자를 누르고 역 검색을 누른다. 출발역은 사가정, 도착역은 종로 3가라고 치고 나의 처분을 기다린다. 나는 7호선을 타고 군자에서 5호선으로 갈아탄 후 을지로 3가에서 3호선으로 갈아타라고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몇 번 출구로 나가야할 지를 몰라 또 나에게 묻는다. 종로 3가역 14번 출구에서 출발하여 서울극장까지 도보로 가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준다.

   산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몇 km를 걸었는지 현재 시속이 얼마이고 평균시속이 얼마인지 일일이 가르쳐준다. 오늘 몇 보나 걸었는지 현재 어느 위치에 있는지 지금까지 걸어온 궤적까지 알려준다.

   국내에서 뿐만이 아니다. 해외에서 자동차를 운전할 때는 목적지만 알려주면 내가 이리 가라 저리 가라 몇 마일 앞에서 몇 번 도로를 타라 시시콜콜 그것도 한국말로 가르쳐준다.

   해외에 있는 산에 갈 때는 몇 달 전부터 또 나를 찾는다. 그곳의 기온은 어느 정도인지, 하루에 얼마나 걸어야하는지, 준비물은 무엇인지 질문이 끝없이 이어진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사진과 경험담을 일일이 보여주며 미리 준비를 시킨다.

   내 안에는 주인의 무수한 사진도 들어있다. 주인은 가족사진, 동생들 사진, 아들, , 친구, 야생화 사진 등 무수한 사진을 내 안에 저장해 놓고 수시로 찾아본다. 나는 주인의 손자가 미국에 있는 교회 성가대에 서서 노래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크리스마스 공연하는 모습도 리얼하게 보여준다. 난 매일 매일 엄청나게 바쁘다.

   내 주인은 내일 날씨도 수시로 내게 묻고, 산에 가기 전 날은 그곳의 기온이 얼마인지, 미세 먼지가 많은지, 눈이 오는지 비가 오는지 모든 걸 나에게 묻는다.

   그뿐 아니다. 무슨 음식 재료를 사오면 그걸 어떻게 요리하는지 몰라서 또 나를 부른다. 나는 그 재료로 할 수 있는 모든 요리를 다 가르쳐준다.

   교회에 가면 또 나의 진가가 발휘된다. 모든 성경과 찬송, 교독문, 주기도문 그야말로 모든 것이 내 안에 들어있으니 주인은 이제 성경책도 안 가지고 다닌다. 성경도 소리 내어 읽어주고, 찬송도 반주까지 넣어서 불러주니 나는 그야말로 못하는 게 없다. 주인은 그저 허깨비처럼 나만 들고 왔다 갔다 할 뿐 머릿속은 텅 비어있다. 나는 성경 전체를 통째로 외우고 있는데 주인은 단 한 구절도 외우지 못한다.

   주인은 내가 없으면 잠시도 살지 못한다. 친구를 만나러 가서도 바로 앞에 있는 사람도 찾지 못해 나에게 부탁한다. 내가 없을 때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나 모르겠다. 옛날에는 한양에서 김 서방도 찾았다는데 지금은 코앞에서도 서로 찾지 못하고 나만 부른다.

   이 세상에서 나만큼 사랑받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나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지하철 속에서도, 심지어 걸어가면서도 내 얼굴만 들여다본다. 내 안에서 게임도 하고, 연속극도 보고, 음악도 듣는다. 정말 나 없으면 못 사는 사람들이 도처에 깔려있다.

   심지어 내 주인은 내 도움 없이는 딸과 통화도 못한다. 머릿속에 아들 전화도 딸 전화번호도 들어있지 않다. 매번 나에게 물어야한다. 우리 주인은 아무래도 머릿속이 텅 빈 것 같다. 골빈당이란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나는 내가 생각해도 정말 기막힌 존재다. 세상만사 모르는 게 없고, 못하는 게 없다. 그야말로 전지전능하다는 것은 나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한 마디로 나는 신이로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