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9. 6. 22. 욕지거리를 퍼붓다보니

아~ 네모네! 2019. 8. 22. 16:31

욕지거리를 퍼붓다보니

이현숙

   문학에는 전혀 문외한인 내가 어쩌다 수필교실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학교 다닐 때 백일장에서 입선이라고는 해본적도 없고 국어과목을 좋아한 것도 아니었어요. 국어는 100점 맞기가 가장 어려운 과목이죠. 수학이나 과학처럼 풀어서 정답이 똑 떨어지게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같아서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국어였어요. 글이라고 써 본 것은 방학 숙제 하느라고 그림일기 쓴 것이 전부였던 것 같아요.

   결혼하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려니 이게 장난이 아니었어요. 엄마가 해주던 밥 먹고 엄마가 빨아준 옷 입고 다니다가 허구 헌 날 밥하고 반찬 하려니 이건 보통 고역이 아니었어요. 할 줄 아는 요리도 없고 김치 한 번 담가본 적도 없는 내가 밥상 위에 무엇이라도 만들어 올려야하니 앞이 캄캄했어요. 이 짓을 평생 해야 하나 생각하니 한 숨만 나왔어요.

   그래도 퇴근길에 시장에 들러 어깨뼈가 빠지도록 무언가 사들고 와서 밥 하고 반찬해서 남편을 기다렸죠. 그런데 밥을 다 해놓고 나면 전화가 와서 밥 먹고 들어간다는 거예요. 입에서 욕이 터져 나왔어요.

에이~ . x-새끼 먹고 올 거면 미리 말을 하던가. 어디서 술 처먹다 콱 뒈져버려라.” 얼굴 보고 말 할 수는 없으니 공책에다가 분이 풀릴 때까지 마구 써 댔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너무 불공평했어요. 똑 같이 공부하고 똑 같이 취직해서 똑 같이 근무하는데 어떤 사람은 끝나기 무섭게 집으로 와사 저녁 준비하고 어떤 인간은 제 멋대로 먹고 마시며 돌아다니는 게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어요.

   그럴 때마다 애꿎은 공책에다가 좋은 말로 표현하자면 강아지 송아지 해대며 욕을 퍼붓다 보니 얼마 안 가서 공책이 다 찼어요. 남편이 어쩌다 이 공책을 본 후로는 나갈 때면

공책에 다 써 놓으슈~” 하며 나갔어요.

   시간이 지난 후 그 공책을 보면 마치 오물을 토해 놓은 듯 역겨웠어요. 그래서 내다 버렸죠. 그렇게 몇 권의 공책을 버리다보니 이건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편에게서 정신적으로 독립하여 내가 좋아하는 일 하며 나도 사는 재미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3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했으니 이제 연금도 받을 수 있고 직장생활 그만해도 밥은 안 굶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년에 7년 반을 남기고 명퇴를 신청했죠.

   2월 달에 명퇴하자마자 3월부터 놀 궁리를 했어요. 월 수 금은 수영과 요가, 화요일은 등산, 이렇게 시간표를 짜다보니 모조리 팔 다리 운동만 하는 거라 머리 운동도 하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문화센터 안내서를 보니 목요일에 수필교실이 있었어요. 그래서 권남희란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냥 목요일만 비어있기에 신청했죠.

   와서 보니 사람도 별로 없고 별 부담 없이 심심풀이 땅콩 식으로 다닐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날이 갈수록 숙제를 해라,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와라 하며 은근히 부담을 주더라고요.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그만 다닐까? 하고 망설이게 되었어요.

   그렇게 몇 년을 질질 끌려가다보니 내가 부담감을 갖는 것은 분에 넘치게 잘 하려는 욕심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생긴 대로 살면 되는데 너무 욕심을 부린 것 같아요. 숙제 안했다고 매 맞는 것도 아니고 글쓰기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닌데 대충 하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을 비우니 훨씬 부담감도 줄어들고 마음이 편해졌어요. 와서 수업을 듣다보면 내 마음 깊숙이 숨어있던 상처도 깨닫게 되고 이걸 드러내어 글을 쓰다보면 마음 속 병이 치유되는 것 같았어요.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자리 잡고 앉은 숙변을 배설하는 느낌도 들고요.

   그냥 저냥 세월 죽이기 식으로 다니려던 수필교실에서 어언 15년 넘게 풍월을 읊다보니 어느 덧 등단도 하게 되고 책도 한 권 내게 되었어요. 매년 동인지를 내어 친구들과 동생들에게 나눠주면 보람도 느껴지고 뭔가 한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지금도 어디 가서 작가라는 말은 못하지만 노후 대책으로 이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매주 잠실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답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등산이지만 이건 애인과 같아서 언제 나를 버릴지 모른다는 걱정이 항상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어요. 하지만 글쓰기는 친구 같아서 내가 늙고 병들어도 나를 버리지 않을 것 같아요. 죽는 날까지 이렇게 횡설수설 지껄이다 갔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