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9. 8. 3. 누군가의 강

아~ 네모네! 2019. 9. 14. 21:32

누군가의 강

이현숙

   얼마 전 신달자의 이라는 시를 읽었다. 시인은 마음속에 슬픔이나 분노가 차오르면 어느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말고 차라리 강가에 나가 강에게 풀어놓으라고 말한다.

   이 시를 읽으며 나는 누군가에게 강이 되어준 적이 있나 생각했다. 나에게 별로 인생 상담을 하는 사람이 없는 걸 보면 나는 누군가에게도 강이 되어주지 못한 듯하다.

   모든 사람에게는 강이 필요하다. 마음속의 분노나 맺힌 한을 사람에게 풀려하면 들어주는 사람도 한계가 있는지라 한 없이 참고 들어줄 수는 없다. 흘러가는 강에게 말한다면 강은 모든 더럽고 추한 배설물일지라도 다 받아들여 바다에 버려줄 것이다.

   내 동생은 시어머니의 강이 된 듯하다. 유부남의 첩이 되어 아들 둘을 낳은 동생의 시어머니는 평생 기를 못 펴고 살아온 한이 골수에 맺혔나보다. 내 동생에게 허구 헌 날 욕설을 퍼붓는다.

   한 번은 동생이 몰래 이걸 녹음하여 언니들 카톡방에 올렸다. 기가 막혔다. 이 년 저년 하는 욕을 마구 쏟아내다가 니 년이 우리 집에 와서 한 일이 뭐가 있냐? 새끼를 낳냐 뭐했냐?” 하고 끝없이 소리를 질러대는데 도저히 들을 수가 없다.

   동생은 마흔 다섯 살에 동갑인 제부와 결혼했다. 결혼 전에는 애를 안 낳아도 된다고 하더니 마음이 바뀌었나보다. 치매가 와서 더 포악해진 것 같기도 하다. 동생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밖으로 뛰쳐나와 새벽 두 시에 들어간 적도 있다고 한다. 어디에 가 있었느냐고 물으니 남의 건물 계단에 쭈그리고 앉았다가 들어갔다고 한다.

   지금은 견딜 수가 없어 친정에 와서 새어머니와 지내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시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는 집에 못 들어갈 것 같다.

   사람은 마음의 괴로움과 분노를 쏟아내야할 대상이 필요하다. 배우자에게 하는 사람도 있고, 친구에게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좋은 말도 세 번 하면 듣기 싫다는데 누가 자꾸 이런 말을 평생 들어줄 수 있을까? 아마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을 것이다.

   나에게 강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다른 사람에게 별로 말하지 않는 성격이라 혼자서 삭이게 되는데 정 견디기 힘들 때는 혼자 산에 오른다. 산에 올라 자연과 대화하며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붙은 집들을 보면 내가 왜 이렇게 사소한 일로 속을 썩일까 싶다. 잠시 잠깐이면 가는 인생인데 하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마음의 강을 찾아 옷을 마구 사들이는 사람도 있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있다. 어느 강이든지 찾아서 배설을 해야 살지 그냥 묻어두고는 아마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오늘 나는 누군가의 강이 되어 주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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