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9. 9. 6. 내가 만든 두부

아~ 네모네! 2019. 9. 14. 21:39

내가 만든 두부

이현숙


   평소에 요리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두부를 만든 적이 있다. 가족을 먹이려는 게 아니고 실험을 하기 위해서다. 학교에 근무할 때 특활시간에 과학반 아이들과 두부 만들기를 했다. 콩을 불려 믹서에 갈아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학생들은 비커에 콩물을 넣고 알코올램프로 끓이면서 유리막대로 젓다가 염화마그네슘을 넣었다. 잠시 후 콩물이 엉기면서 순두부가 만들어지고 깔때기에 가제 수건을 깔고 이 물을 부으니 두부가 생겼다.

   학생들은 신기해하며 맛을 본다. 나는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비커에 끓인 것도 그렇고 시약 장에 있던 염화마그네슘을 넣은 것도 께림찍하다. 사실 간수의 주성분은 염화마그네슘이다. 천연소금에 가장 많이 들어있는 것은 염화나트륨이고 그 다음으로 많은 것이 염화마그네슘이다. 염화마그네슘은 공기 중의 습기를 잘 빨아들여 스스로 녹는다. 그래서 소금을 자루에 넣어 공기 중에 두면 저절로 염화마그네슘이 녹아나오는데 간(소금)에서 나온 물이라서 간수다.

   나는 두부를 좋아한다. 밍밍한 맛이 자극적이지 않아서 좋다. 딸도 나를 닮았는지 두부를 좋아한다. 어렸을 때 일하는 할머니가 해주는 두부조림을 즐겨 먹었다. 이 할머니는 딸이 태어나기 한 달 전에 우리 집에 와서 옥양목을 떠다가 기저귀도 만들고 애기 배냇저고리도 만들며 출산 준비를 했다.

   딸이 태어나자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고 밤에도 데리고 잤다. 내가 낮에 학생들과 시달려서 힘들 테니 편하게 자라고 했다.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가방을 지고 나서면 얼른 마루 앞에 나가 신발을 바로 놓아주곤 했다. 학교가 끝날 때쯤이면 아들을 데리고 교문 앞에 가서 기다리다가 자기가 가방을 들고 왔다. 작은 애가 무거운 가방 들고 오려면 힘들다고 하면서 말이다. 이런 할머니가 점점 힘이 달리니 우리 딸 초등학교 4학년 때 친 딸네 집으로 갔다.

   그 후에 내가 두부조림을 만들어줬더니 할머니가 만들어준 두부가 먹고 싶다는 거다. 이런 된장! 두부조림은 다 같지 무슨 할머니 두부가 따로 있나 싶었다. 엄마의 자존심 다 구겼다.

   하긴 손맛이란 게 있다고 한다. 손가락에서 무슨 물질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무슨 손맛일까 싶지만 전혀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물도 음악을 들려주면 그 분자 배열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음식을 만들면서 사랑을 듬뿍 넣은 마음으로 만들면 알지 못할 기운이 음식에 배어들어 맛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요리라고는 관심도 없고 성의도 없어서 거의 사료 수준으로 만들어준 밥을 먹고 이제까지 살고 있는 남편이 좀 불쌍하기도 하다. 가전제품은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데 결혼은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그래서 요새 애들은 너무 고르다가 결혼을 못하나보다. 하지만 아무리 잘 골라도 그게 그거다. 그냥 저질러 놓고 볼 일이다. 일단 저질러 놓고 나서 두부조림이건 두부김치건 되는 대로 만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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