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8. 8. 13. 억불산 며느리바위

아~ 네모네! 2018. 10. 21. 14:06

                                           억불산 며느리 바위


                                                                                                        아 네모네 이현숙
 
  중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전라도 장흥에서 서울로 유학 와서 언니, 오빠, 동생들과 함께 용두동에 살며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시험 때가 되면 자기 집에 와서 같이 공부하자고 하여 일주일씩 그 친구 집에서 먹고 자며 학교에 갔다.
  방학이 돌아오면 장흥에 있는 자기 집에 가자고 하여 고등학교 1학년과 2학년 여름방학을 그 집에서 지냈다. 그 집은 장흥의 유지였는지 아버지가 극장도 하고 대한 통운과 택시 회사도 했다. 그 친구와 극장에도 가고 두륜산 대흥사에도 갔다. 바다에 가서 수영도 하고 탐진강에서 보트도 탔다.
  장흥읍 근처에는 커다란 산이 하나있다. 이 산 이름이 억불산이란 것도 몇 십 년이 지난 후에 알았다. 정상에 서면 1억 명의 부처님이 보인다고 하여 억불산이다. 억불산에는 특이한 바위가 하나 있는데 읍내 어디서나 보인다. 며느리바위다. 한 여인이 아기를 업고 있는 모습이다.
  연산리 앞 탐진강에는 깊은 소(沼)가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소에는 원래 박 씨와 임 씨가 사는 큰 마을이 있었다. 어느 날 탁발승이 마을에 찾아와 탁발을 하며 집집마다 돌아 다녔다. 하지만 모든 집에서는 인색하게 거절했다. 마지막으로 초라하게 보이는 집에 들렀는데 마침 저녁밥을 지으려고 쌀을 내오던 며느리가 보였다. 그녀는 탁발을 거절한 시어머니 몰래 자기 먹을 만큼의 쌀을 주었다. 탁발승은 며느리의 불심에 감동하여 며느리에게 굶은 애기를 업고 자기를 따라오라고 하였다. 마을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고 하며 억불산을 돌아나갔다. 하지만 며느리는 억불산을 지나가며 마을을 뒤돌아 봤다. 그러자 마을은 깊은 소가 되어버리고, 며느리는 아기를 업은 채 바위가 되고 말았다. 이 소는 박 씨와 임 씨가 살았던 곳이라 해서 박림소라고 부른다.
  그 때는 그 바위의 이름도 몰랐지만 그 모양이 하도 특이하고 신비롭게 보여서 친구와 둘이서 이 산에 올랐다. 길이 제대로 나지 않아 가시덤불에 온통 긁히고 찢겨 피가 흘렀다.
  올여름 동유럽 여행 중에 보니 우리 반 카톡방에 이 친구가 내 연락처를 알고 싶어 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고 3 때는 같은 반이 아니어서 카톡 주소도 모르고 몇 년 전 동창회 주소록에 올라온 주소로 편지를 했지만 연락이 없었다. 주소가 잘못 됐는지 이사를 갔는지 알 수 없어 그냥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날 찾는다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동창회 홈피에 들어가 동문 찾기를 누르고 그 친구 이름을 치니 핸드폰 번호가 나온다. 조심스럽게 카톡에 친구 신청을 하고 문자를 보냈더니 그 친구다. 근 50년 만에 연락이 닿았으니 얼떨떨하기도 하고 꿈인가 생시인가 정신이 몽롱하다. 잠시 후 국제전화가 온다. 사기전화가 아닐까 망설이다가 혹시나 하고 받으니 그 친구다. 너무도 반가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친구는 미국 오렌지카운티에 산다고 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후 가끔씩 카톡을 하며 소식을 전하는데 자기가 한국에 오면 같이 장흥에도 가고 억불산에도 올라가자고 한다. 50여년 만에 그 친구와 함께 다시 억불산 며느리 바위를 보면 어떤 심정일까? 지금부터 그 순간이 기다려진다. 이 바위는 아마도 전생에 우리와 깊은 인연이 있었나보다. 어쩌면 우리는 그 며느리와 아기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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