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8. 8. 3. 축 사망

아~ 네모네! 2018. 10. 21. 14:01

축 사망

아 네모네 이현숙

   요즘 연일 폭염경보다. 111년 기상 관측사상 최악의 더위라고 한다. 말 그대로 폭염도 폭력이다. 하루하루가 견디기 힘들다. 에어컨도 없으니 죽을 지경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죽기 싫어한다. 사실 자살하는 사람도 죽는 게 좋아서 죽는 건 아니다.

   사람이 잉태되는 순간부터 이 세상에 나와서 살다가 저 세상으로 가는 날까지 인생살이는 감옥살이라고 할 수 있다. 좁디좁은 자궁 속이 온 세상인 줄 알고 살다가 출생하는 순간에 이 넓은 우주로 나오면 이 세상은 무한한 곳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한 날 한 시도 이 육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삶은 여전한 감옥살이다. 이 감옥에 갇혀 자라고 공부하고 직장생활 하다가 죽음에 이른다. 생로병사의 쳇바퀴를 벗어날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오직 한 가지 탈출구는 죽음뿐이다.

   친정의 할머니는 몸이 약해서 환갑도 못 산다고 했다. 내가 어렸을 때 조화를 들고 할머니 환갑 축하를 하러 광나루 다리(광진교)를 건너가던 기억이 아련하다. 그 때는 버스도 없어서 종로 5가에서 복우물(복정동)까지 걸어가 외갓집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 날 큰댁이 있는 여수리까지 걸어갔다.

   이런 할머니가 93세까지 장수하다 돌아가셨다. 마지막 3년은 사랑방에서 나오지도 못했다. 큰아버지가 밤에 같이 주무시면서 이리 저리 돌려 뉘어가며 병수발을 했다. 그래도 욕창이 생겨 어느 결에 파리가 들어가 쉬를 슬어 놓았다. 그야말로 산 채로 썩어가는 중이었다. 고통스러워하는 할머니를 보고 빨리 가시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내가 결혼한 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신 얼굴을 보니 그렇게 평온할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무아지경이다. 90년간의 고통에서 해방된 모습이다.

   친정 엄마는 60세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갑자기 돌아가셨다. 저녁 설거지를 하는데 친정 동생이 엄마가 쓰러졌다고 전화를 했다. 현기증이 났나하고 병원에 가보니 벌써 혼수상태다. 저녁밥을 지어놓고 아버지 오시길 기다리다가 쓰러졌다고 한다. 엄마는 눈 한 번 못 떠보고 그날 밤 돌아가셨다. 우리 들은 엄마가 마지막으로 해놓은 그 밥을 눈물과 함께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는 정말 죽는 복을 타고 나신 분이다.

   친정아버지는 66세에 재혼하여 94세까지 사셨다. 암으로 병원에서 한 달 정도 계시다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신 아버지 모습은 자아가 사라진 무념무상의 무생물 같았다. 알맹이가 빠져나간 빈껍데기처럼 보였다.

   친정 동생의 외아들은 28살에 자살했다. 자기 집 지하실에서 목을 맸다. 입관하려고 냉동실에서 꺼냈을 때 얼굴이 하얗고 그렇게 편안해 보일 수 없었다. 편한 곳으로 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살았을 때의 얼굴보다 더 예쁘고 평온했다. 화장터에서 화장한 후 꺼낸 뼈도 눈처럼 하얗게 빛이 났다. 나도 죽으면 화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누구나 오래 살려고 안간 힘을 쓴다. 정기적으로 건강검진도 받고 건강보조식품도 부지런히 챙겨먹는다. 카톡방에는 온갖 정보가 난무한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지만 별 효과가 없다. 오는 세월 막을 장사 없다는 옛말이 생각할수록 진리다.

   어느 한 구석만 아파도 겁이 더럭 난다. 나는 간에 주먹만한 큰 혹이 있다. 옆구리가 쿡쿡 쑤시면 에고~ 혹이 암이 된 게 아닌가 하며 걱정을 한다. 말로는 살만큼 살았다고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아직 때가 아니라고 부인한다. 저승사자가 데리러오면 아직 때가 아니라고 90살이 넘도록 부인하는 내용의 노래도 있다.

   어쩌면 저 세상은 이 세상보다 더 넓고 아름다울지 모른다. 이 육체에 갇혀 추위와 더위를 견디며 병마와 싸우는 고통이 사라지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하다. 먹고 살려고 기를 쓸 필요도 없고 더 멋있는 집에서 살려고 악착 같이 돈 모을 필요도 없다. 더 높은 지위를 얻으려고 아등바등할 필요도 없으니 머리 싸매고 공부할 일도 없다. 생각할수록 기막히게 멋진 세상이다. 어찌 보면 죽음은 축복이 아닐까? 극심한 고통에서 해방되는 멋진 날이다. 이 좁은 육체에서 빠져 나가 하늘에서 이 세상을 보면 어떤 모습일까? 드론에서 내려다보듯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질 지도 모른다.

   아기가 이 넓은 세상에 나올 때 온 가족과 일가친척이 기쁨으로 환영한다. 자궁 속보다 기막히게 멋진 이 세상에 온 것을 다 같이 축하한다. 내가 이 좁은 육체를 빠져 나가는 날 먼저 간 부모님과 언니가 축 사망이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마중 나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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