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8. 8. 12. 바라기인생

아~ 네모네! 2018. 10. 21. 14:03

바라기 인생

아 네모네 이현숙

   동유럽 여행 중에 버스를 타고 예닐곱 시간씩 이동하는 날이 많았다. 마침 해바라기가 절정이라 끝없이 이어지는 노란 해바라기 밭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노란 바다를 보는 듯했다. 해바라기는 왜 해를 바라보며 그쪽으로 얼굴을 돌리는 것일까? 식물들이 해를 향하는 것은 광합성을 많이 하여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함일 것이다.

   식물성 호르몬 옥신이 빛에 반응하면서 빛의 반대쪽이 더 성장하여 빛이 있는 방향으로 기울어진다고 한다. 자세한 원리는 잘 모르겠고 하여튼 해바라기는 해를 바라본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그러니 북반구에 있는 해바라기는 주로 남쪽을 바라보고 있다. 남반구의 해바라기는 북쪽을 보고 있으려나?

   무심히 해바라기를 보고 있자니 나는 무슨 바라기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들만 바라보는 아들 바라기 엄마도 있고, 딸만 바라보는 딸 바라기 아빠도 있다.

   우리는 평생을 살아가며 무엇을 바라보고 있을까? 공부 잘 하는 데 목숨 거는 공부 바라기는 시험 잘 못 봤다고 자살하기도 한다. 부자가 소원인 돈바라기 인생은 열심히 일하거나 부지런히 부동산 투기를 하여 큰 부자가 되기도 한다. 명예가 소원인 명예바라기는 열심히 공부하여 박사가 되기도 하고 정치에 뛰어들어 높은 지위를 얻기도 한다.

   나는 무슨 바라기일까? 돈도 명예도 얻지 못한 나는 별로 바라는 것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굳이 하나를 고른다면 산바라기라고나 할까? 산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다. TV에서 멋진 산이 나오면 거기 가고 싶은 욕망이 스멀스멀 스며 나온다. 차를 타고 가다가 부드럽게 이어지는 능선이 보이면 저곳을 걸으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한다. 산세를 보며 이리로 올라가서 저리로 내려오면 원점회귀산행으로 딱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산에 길까지 낸다.

   매주 일요일 아침 영상앨범 산프로를 보려고 일찌감치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TV 앞에 앉아 기다린다. 그러다가 다른 프로 때문에 취소되면 너무도 실망이 커서 방송국 직원들을 원망한다. 산에 간다고 떡이 나오나 밥이 나오나 아무 것도 안 나오는데 왜 이리도 산에 매여 사는지 모르겠다.

   오늘은 문화센터 등산반에서 매주 한 번씩 등산하는 날이다. 그런데 참석자가 적다고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말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라 대장님을 원망한다. 아니 사람이 적으면 버스를 대절하지 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되지 왜 취소하나? 백화점에서 강사비 받으면서 그것도 못해주나 하면서 속을 부글부글 끓인다. 올 여름학기에 벌써 네 번째다.

   수필이 내 인생의 친구라면 산은 나의 애인이다. 아무도 없는 용마산 오솔길을 혼자서 오르면 애인을 홀로 독차지 한 것 같아 기분이 흡족하다. 임의 향기를 맡으며 임과 대화하며 오르다보면 잔잔한 행복감이 밀려온다. 그러다가 누가 내려오는 걸 보면 마치 애인을 빼앗긴 듯 갑자기 허전한 생각이 든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중증이다.

   수필은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살지만 산이 없이는 못 살 것 같다.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다. 몸은 점점 약해져 애인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산에 대한 욕심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오르니 이러다가 내 가랑이가 찢어지지 싶다. 몸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 욕심을 줄여야하는데 이게 맘대로 되지 않는다. 아마도 이 육체를 빠져 나가는 날 마음껏 하늘을 날며 산의 품에 영원히 안기게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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