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8. 5. 24. 어떤 년이 물어갔으면

아~ 네모네! 2018. 8. 11. 14:08

어떤 년이 물어갔으면

아 네모네 이현숙

   옆에 앉은 남자가 큰소리로 떠벌인다. 콘돔을 가지고 있다가 부인에게 걸려 지금까지 바가지 긁힌다고. 남자가 자기 정도 되면 그럴 수도 있지 않냐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 부인은 나와 함께 산에 다니는 나와 동갑인 여자다. 듣고 있자니 은근히 그 부인이 부러워진다.

   내 남편은 이 남자와 동갑이다. 내가 네팔 갔다 왔더니 힘이 없다고 다 죽어간다. 내가 없는 사이 병원에 가서 링게르를 4번이나 맞았단다. 지금까지는 내가 해외여행하고 올 때 집 근처 지하철역까지 나와서 짐을 끌고 왔는데 이번에는 사위가 차를 가지고 왔다.

   내가 오면 좀 나아질 줄 알았더니 계속 죽는 시늉이다. 내가 산에 가려고 하면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모임에 나가려고 옷을 입는데 또 안 갔으면 좋겠다고 한다. 집에 혼자 있다 죽을까봐 겁이 나나보다. 내가 없을 때는 여차하면 119 부르려고 현관문도 안 잠그고 잤단다.

   남편이 나에게 족쇄를 채울 줄은 몰랐는데 이건 족쇄도 어마무시한 족쇄가 채워졌다. 매일 엉덩이 붙일 새 없이 돌아다니는 나는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다.

   내가 온 후에도 두 번 더 링게르를 맞고 병원에서 혈액검사와 소변 검사를 해도 특별한 병은 없는 것 같다고 신경과 치료를 받아보면 어떻겠냐고 한다. 할 수 없이 한의원 가서 보약도 지어 먹이고 이번에는 개소주도 해 주었다.

   속으로 바람이라도 피우면 좀 힘이 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어떤 년이 물어갔으면 좋겠다고 혼잣말을 한다. 하지만 금방 너무 심했나 싶기도 하다. 젊어서 건강하고 팔팔할 때는 잘 가지고 놀다가 늙고 병들고 기력 떨어지니까 다른 여자에게 가져가라고 하는 건 누가 봐도 도둑년 심보다. 앞으로 점점 더 나빠질 텐데. ‘에고~ 내 팔자야~’ 소리가 절로 난다. 하긴 이러다가 내가 더 심한 병이 들어 남편 신세를 지게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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