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7. 11. 29. 수백 년간 준비한 잔칫상

아~ 네모네! 2017. 12. 1. 15:12

수백 년간 준비한 잔칫상

아 네모네 이현숙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하나하나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악장이 들어와 바이올린 현을 울리자 단원들도 자신의 악기를 조율한다. 이런 광경을 볼 때마다. 음악에 대해서 일자무식인 나는 조율은 밖에서 하면 될 텐데 왜 무대에 들어와서 할까 의아해 한다. 들고 들어오는 동안에 현의 줄이 미세하게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다시 현의 나사를 조이고 늦추면서 조절하는 모양이다. 내가 듣기에는 그 소리가 그 소리 같은 데 절대 음감을 가진 전문가의 귀에는 다른가보다.

   지휘자 김대진교수가 들어오자 박수가 터지고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시작된다. 베토벤의 삼중협주곡 C장조다. 음악은 잘 모르지만 이런 연주를 들을 때면 작곡가를 생각한다. 그는 어떤 인간이기에 이런 악상이 머릿속에 떠올랐을까 신기하기만하다.

   베토벤은 1770년 독일 본에서 태어났다. 궁정의 테너 가수였던 아버지는 베토벤을 최고의 음악가로 만들기 위해 엄격한 교육을 했다. 천부적 자질을 타고난 베토벤은 57년의 생애동안 무수한 음악을 작곡했다. 하지만 그는 26세부터 청력을 잃기 시작했고 32세 때는 완전히 듣지 못하게 되었다. 음악가로서 듣지 못하는 것은 얼마나 기막힌 일이었을까? 보통 사람이라면 좌절하여 음악가로서의 삶을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후로도 25년 동안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다.

   사람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닌가보다. 진정한 소리는 마음으로 듣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외부에서 들어오는 소리가 차단된 상태에서 오히려 내면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말레이제도에는 극락조라는 새가 있다. 극락조는 다리가 없는 새라고 알려졌다. 영화 아비정전중에 나오는 대사에 이런 게 있다.

다리 없는 새가 있어. 다리 없는 새는 한없이 날기만 해.

날다가 지치면 그대로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잠을 자지.

그 새가 평생 한 번 땅에 내려오는데, 그날이 죽는 날이야.’

   극락조는 실제로 다리가 있지만 원주민들은 이 새의 깃털이 너무 아름다워 이 새를 잡으면 다리를 잘라 걷지 못하게 하고 그 깃털로 몸을 장식했다. 유럽인들이 이 섬에 갔을 때 원주민들은 이 새를 선물했고, 다리가 없는 이 새를 본 유럽인들은 이 새가 원래 다리가 없는 줄 알았다. 그래서 그 이름을 천국의 새 ‘Birds Of Paradise’라고 불렀다.

   다리가 없는 극락조는 걷지 못하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춤을 추고 한 없이 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베토벤도 듣지 못하니 더 들으려했고 아마 보통 사람은 듣지 못하는 멋진 천국의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지금 들리는 이 음악은 이미 200년도 더 전에 베토벤이 만든 것이니 200년도 넘게 준비된 음악이다. 무수한 사람들의 연주를 거쳐 여기까지 왔으니 수백 년 간 준비된 잔칫상이다.

   이 소리가 나오기 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십 년간 노력하며 실력을 연마했을까? 오케스트라 단원들 하나하나의 보석 같은 결정체가 모여 이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나는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수백 년 전부터 준비되고 수백 명이 노력해서 만든 이 잔칫상을 날로 받아먹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작품은 말러의 교향곡 1거인이다. 지휘자 김대진은 내 남편이 예원학교 부임했을 때 중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그 작은 학생이 이제 음악계의 거인이 되었다.

   글로리아 합창을 마치고 뒤에 있는 재학생들을 보니 무수한 씨앗을 보는 것 같다. 예원학교 교복이라는 껍질 속에 들어있는 이 아이들의 무궁한 가능성을 생각한다. 얌전히 앉아있는 백여 개의 씨앗이 앞으로 어떤 거목으로 자랄지 궁금하다. 아마 세계적인 성악가가 저 중에 분명히 들어있을 것이다.

예원학교 개교 50주년을 맞아 준비한 이 음악회를 보며 이렇게 외치고 싶다. “예원이여 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