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7. 11. 30. 내가 짓밟은 아이

아~ 네모네! 2017. 12. 1. 15:14

내가 짓밟은 아이

아 네모네 이현숙

   중화중학교 근무할 때 일이다. 거의 40년이 되어가니 까마득한 옛일인데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1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다. 그 때는 새 학기가 시작되면 교실의 커튼을 아이들에게 빨아오라고 시켰다. 지금 같으면 당장 학부모에게서 항의가 들어오고 신문에 날 일이다.

   아이들에게 이런 저런 일을 시키려면 누구를 찍어서 시키기가 참 어렵다. 그래서 나는 무조건 뒤 번호부터 시켰다. 앞 번호는 아무래도 작은 아이들이라 먼저 시키기가 안쓰러웠다. 순서대로 돌아가다가 채변 봉투 걷는 게 걸리는 아이는 질색을 하고 다른 아이들은 깔깔 대고 웃는다.

   커튼이 네 쪽이라 70번부터 67번까지 네 명에게 빨아오라고 했다. 다른 아이들은 이삼일 내로 곧 빨아왔는데 한 명이 일주일이 지나도록 가져오지 않는다. 세 쪽만 달아놓고 한쪽을 비워두니 보기도 흉하고 마음이 쓰였다. 언제 빨아오려나 오늘 내일 기다리는데 급기야 이 녀석이 일주일 넘도록 결석을 하고 나타나지 않는다. 다른 아이들에게 집을 아는 사람 있느냐고 하니 몇 아이가 안다고 한다. 아이들을 앞세우고 그 집을 찾아갔다.

   그 집에 들어선 순간 아뿔사하고 한숨이 절로 났다. 이건 집이 아니고 고물상인데 마당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 쌓여있고 방이라고 구석에 하나 있는데 이건 방도 아니다. 두 명이 겨우 누울 정도의 헛간이다. 마당에는 새카만 냄비가 하나 뒹굴고 있다. 엄마는 가출하고 아빠와 둘이 산다는데 아버지도 아들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아이에게 커튼을 빨아오라고 했으니 얼마나 난감했을까? 나는 세탁기에 넣으면 간단하다고 생각하고 아무 생각 없이 시켰는데 세탁기는커녕 제대로 된 욕실도 없고 마당의 수돗가는 양말짝 하나도 빨기 어렵게 생겼다. 3월이면 아직 추울 때라 온수도 안 나오는 이곳에서 아이는 세수도 제대로 못했을 것이다. 얼굴이 새카만 게 꾀죄죄하게 하고 다녔다.

   집으로 돌아오며 마음이 너무 아팠다. 세상에 이렇게 사는 아이도 있구나 싶고, 어린 나이에 뭐라고 말도 못하고 가슴앓이를 했을 생각을 하니 큰 죄를 지은 것 같았다. 나중에 커튼은 다른 아이에게 빨아오라고 시켰다. 그 후에 그 아이는 다시 학교에 나와 잘 다녔다. 순둥이 강아지처럼 생긴 얼굴에 까만 사마귀가 있었다. 시키는 일도 성실하게 잘 했다.

   내가 32년 동안 교사 생활을 하며 얼마나 많은 아이들을 짓밟고 마음 쓰리게 헸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어린 생명에 상처를 주었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한 구석이 짠하다.

   요즘 다섯 달째 이명이 계속되니 본의 아니게 사람을 미워할 때가 있다. 식당에 가면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를 크게 내며 서빙하는 사람도 밉고, 교회에 가면 찬송가를 크게 부르는 사람도 싫다. 곁에서 크게 웃는 사람도 밉고, 목사님이 크게 설교를 하면 다음에는 목소리 작은 목사님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괜히 내가 미워하는 것이다. 그 사람은 전혀 느끼지 못하지만 나는 고문을 받는 기분이다.

   사람은 한 평생 살면서 본인도 모르게 무수한 살인을 하고 고문을 한다. 누구나 자신의 삶 밖에 살지 않았기 때문에 남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고 싶어도 그와 똑같은 처지에 놓일 수 없으니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하다. 이것이 모든 생물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내가 짓밟은 그 아이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좋은 배우자 만나서 서로 사랑하며 아들 낳고 딸 낳고 알콩달콩 살았으면 좋겠다. 이 살인자 같은 선생님의 일은 까마득히 잊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