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7. 11. 16. 고문이 된 웃음소리

아~ 네모네! 2017. 12. 1. 15:05

고문이 된 웃음소리

아네모네 이현숙


   오랜만에 만난 문우들이 깔깔대며 웃어댄다. 나는 고문이라도 받는 듯 진저리를 친다. 수업 도중 웃기는 얘기가 나와서 한꺼번에 웃어대면 곁에서 천둥이라도 치는 듯 정신이 혼미해진다.

   네 달 전쯤 고무로 된 수영 모자를 쓰다가 손이 빠지면서 고무가 왼쪽 귀를 때렸다. 그 순간 갑자기 웽~ 하며 소리가 들린다. 수영을 마치고 나와도 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이비인후과에 가니 귀 속을 들여다보고 고막은 이상이 없다고 하며 삼일 치 약을 지어준다. 밤에도 이명은 계속된다. 자면서 밖에 비가 오나보다 생각한다. 아침에 일어나니 땅이 멀쩡하다.

   삼일이 지나도록 이명이 멈추지 않아 다시 병원에 갔다. 해외여행을 가야한다고 하니 일주일치 약을 준다. 이명이 들리는 채로 중앙아시아 여행을 갔다. 일주일 정도 지나면 낫겠지 생각했다.

   4천 미터가 넘는 파미르 고원에서 18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다시 왔다. 이명은 여전하다. 이번에는 한의원에 갔다. 한의원에서는 한 달 치 약을 주고 침을 놓는다. 보름간 매일 침을 맞으러 다녔다. 차도가 없다. 귀에서 소리가 날 뿐 아니라 마취주사를 맞은 듯 먹먹하고 소리가 크게 울린다.

   다시 이대역에 있는 다른 이비인후과에 갔다. 청력검사를 하니 노인성 난청이라고 한다. 이명을 치료하는 약을 2주일 치 지어준다. 삼일 정도 지났는데 머리가 아프고 메슥거린다. 다시 병원에 갔다.

  의사는 2주일이 안 됐는데 왜 왔느냐고 한다. 머리가 아프고 토할 것 같다고 하니 신경과로 가보란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가니 3주 후에나 예약이 가능하단다.

   할 수 없이 동네 신경과로 갔다. 뇌파검사도 하고 목에 엑스레이도 찍더니 별 이상은 안 보인다고 3일치 약을 준다. 3일 후 또 갔더니 일주일치 약을 준다. 약을 먹으니 두통이 서서히 가라앉는다.

   이비인후과에 가서 얘기하니 두통이 없으면 신촌 세브란스에 갈 필요는 없겠다고 2주치 약을 준다. 곁에서 누가 큰 소리로 얘기하면 조용히 하라고 할 수도 없고 죽을 맛이다. 재미있어서 깔깔 대고 웃는데 웃지 말라고 할 수도 없다. 버스에서 마이크 잡고 노래하면 귓구멍을 틀어막아도 소리가 울린다. 버스 안이 고문실이다.

   귀에 마개를 하면 내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이명 소리도 커지고 음식 씹은 소리도 와작와작 크게 울려 씹기가 힘들다. 왼쪽으로 씹으면 소리가 더 크게 들리니 오른쪽으로 대충 씹어서 넘긴다.

   산행할 때도 소리가 큰 사람 옆에는 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부지런히 앞서 가거나 천천히 뒤쳐져서 혼자 간다. 아주 사소한 것 같은데 대인 관계에 지장을 준다. 모임에 갔을 때 식당이나 커피숍에서 주위 사람들이 크게 이야기 하면 괴로워서 일찍 집으로 돌아온다.

   교회에 가면 여기도 고문장이다. 찬송 부르는 소리가 커서 귀마개를 가지고 다닌다. 마이크 대고 크게 노래하는 목사님도 미워 보이고 악을 쓰고 찬양하는 옆의 성도도 괜히 밉다. 소리가 이렇게 남을 괴롭힐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내가 무심코 했던 말과 즐겁게 불렀던 노래가 누군가에게는 고문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걸음에 무수한 벌레가 깔려서 죽었을 것이다. 등산하다 보면 가끔 민달팽이가 등산화에 깔려 터져 죽은 것을 볼 수 있다.

   내 발소리가 땅속에 사는 벌레들에게는 고막을 찢는 듯 크게 울렸을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쿵 쿵 뛰어갈 때 작고 연약한 벌레들은 기절했을 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동물과 식물에게 심각한 고문을 가했을까 생각한다. 모든 동물은 남의 생명을 죽이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곡식도 생명이고 고기도 생명이다. 생명을 섭취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남의 생명을 빼앗아야만 살 수 있는 이 필연이 안타깝다. 지금까지 7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남에게 무수한 고문을 가한 것을 생각한다. 소리로 고문하고 눈짓으로 고문하고 생각으로 고문했을 것이다. 먹어서 죽이고 소리로 죽이고 밟아서 죽였을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빚을 갚아야 이 고통이 사라질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