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7. 12. 24. 숫자의 문화사 (독후감)

아~ 네모네! 2017. 12. 24. 14:36

숫자 속에 담긴 문화

숫자의 문화사를 읽고 -

아 네모네 이현숙

 

   ‘숫자의 문화사라는 책제목을 본 순간 숫자는 숫자지 무슨 문화가 있나 했다. 하지만 책을 읽어갈수록 숫자 속에는 엄청난 문화가 깃들어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하랄트 하르만이 쓰고 전대호가 번역한 인문서이다. 저자 하르만은 1946년에 태어났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언어학자다. 함부르크, , 코임브라, 뱅거대학에서 강의했으며 10가지 언어로 200편에 가까운 논문을 썼다. 이 책도 꼭 논문을 읽는 기분으로 읽었다.

   번역을 한 전대호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퀼른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책을 딱 뽑아든 순간, 표지에 가득한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책 제목에 꼭 맞는 그림이다.


   들어가는 말에서 저자가 한 말대로 이 책은 수를 세는 방법과 계산법의 역사에 국한되지 않고 수가 가진 상징적이고 밀교적인 의미를 파헤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수에는 행운의 수, 불행의 수, 마법의 수, 신화적 의미를 가진 성스러운 수 등이 있다.

 

1장 구석기 시대에 시작된 추상적 사고

   190만 년 전부터 30만 년 전까지 생존한 호모에릭투스의 능력은 지금까지 과소 평가되어왔다. 그들이 상징 활동을 했다는 증거를 볼 수 있는데 동물 뼈에 새겨진 눈금이 그것이다.

   이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오록스로 추정되는 야생동물의 정강이뼈에 새겨진 것이다. 수직 눈금들이 몇 개의 동아리로 나뉘어져 있는데 눈금 두 개로 이루어진 것, 세 개로 이루어진 것, 네 개로 이루어진 것들이다.

   그 후에 발견된 뼈나 바위에서도 점, , 십자모양, 반원 등이 나타난다.

 

2장 수와 계산의 저편: 상징, 신화 마법

   까마득한 과거 이래로 인류는 수에 마법 상징적 의미를 부여해왔다. 이에 대한 증거는 구석기 시대 동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여러 동굴 그림에서 무리지어 있는 선과 점을 볼 수 있다.

아그나테바 동굴 천장에는 길이 1m가 넘는 커다란 그림이 있다.

   이 그림에서 눈에 띄는 것은 다리를 벌린 여자와 야생 황소다. 여자의 성기에서는 긴 점선이 나온다. 또 여자의 다리 안쪽에 평행한 점선이 두 개 보인다. 성기에서 나온 가장 긴 점선은 반대편에 있는 황소의 가슴에서 나온 점선을 가리키고 있다. 연구자들은 이 선을 이룬 점들이 우랄민족의 수 신비론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은 4, 남성은 5, 7은 북두칠성과 관련이 있다. 유난히 크게 그려진 여자는 자연의 수호자이며 뭇 생명의 창조자인 태초의 어머니로 해석된다.

  또한 수에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행운의 수가 있고 불행의 수가 있다는 생각은 모든 문화에 존재한다. 예를 들어

1은 절대적 존재를 의미하고,

2는 이원성 즉 음과 양, 남자와 여자, 선과 악을 의미한다.

3은 삼원성 즉 기독교에서는 삼위일체의 하나님, 만세 삼창, 성호를 세 번 긋기 등이 있다.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는 4를 금기시 하는데 이것은 한자의 죽을 와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13을 불운의 수로 여기는데 호텔에 13호실이 없거나, 비행기에 13번 좌석이 없는 항공사도 있다.

 

3장 수를 가리키는 단어

   한 언어에 추상적인 수사 체계가 발달되어 있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다른 용어로 수를 셀 수 있었다. 파푸아 뉴기니의 고지대에 살던 사람들은 신체 부위로 수를 표시했다. 예를 들어 새끼손가락은 1, 넷째 손가락은 2, 엄지손가락은 5, 손목은 6, 왼쪽 어깨는 10 이런 식으로 나타냈다.

   수를 세는 방법은 민족마다 독특한 방법이 무수히 많았는데 비 지배적 언어는 지배적 언어의 영향을 받아 변형되거나 퇴출되었다.

 

4장 중국 문화권

   동아시아 언어들은 중국 문화와 수 표기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중국의 가장 오래된 수 표기는 갑골문자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람들은 거북의 등껍데기나 사슴의 어깨뼈에 문자를 새겨서 성스러운 불에 던졌는데 열에 의해 생긴 균열을 조상의 가르침으로 생각했다.

   손가락으로 수를 셀 때 손의 모양을 본뜬 그림을 숫자로 채택한 것은 중국뿐이다. 예를 들어 1, 2, 4는 엄지손가락을 구부린 모양이다.

   한국이나 일본은 오랫동안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아 수 계열도 두 가지가 있다. 한국어 수사는 하나, , 셋으로 나가고 중국식 수사는 일, , 삼으로 나간다. 시간을 말할 때는 한국식으로 쓰고, 분이나 날짜를 말할 때는 중국식으로 쓴다. 예를 들어 15분에서 1은 한(한국식), 5는 오(중국식)라고 읽는다. 날짜에서 615일이면 유()과 십오는 중국식으로 읽는다.

   몇 년 전 베트남 공항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70대로 보이는 남자가 우리 곁으로 오더니 한국인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자 자기는 일본사람인데 한국에도 갔었다고 한국말로 한다. 우리가 언제 갔었냐고 물으니 두 년 전에 갔었다고 한다. 이게 뭔 소린가 하다가 폭소를 터뜨렸다. 2년 전을 두 년 전이라고 한 것이다. 하긴 일본인이 한국말의 2와 둘을 분간하기는 어려웠을 게다. 그래도 70이 넘은 나이에 열심히 한국말 배우고 한국인 옆에 와서 회화 연습을 하는 그 남자의 용기가 대단해 보이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했다.


5장 고대 아메리카의 뛰어난 문화들

   마야인들은 5보다 작은 수는 점으로 5이상 10미만의 수는 막대기호로 나타냈다. 그 이상은 점과 선을 결합하여 사용했다.

   마야에도 0이 있었는데 이것은 앉아있는 두 명의 인물로 나타냈다. 그 중 한 명은 남자를 상징하고 다른 사람은 실망한 표정으로 날을 나타내는 인물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날의 결여 즉 없음, 0을 나타낸다.


   안데스 지역의 원주민은 수를 나타낼 때 매듭 기법을 썼다. 그들은 매듭으로 소식도 전했는데 아래 그림은 여자 0명과 남자 826명이 모두 전사했다는 뜻이다.


 6장 고대 구세계 문화의 흔적들

   고대 바빌로니아의 전통은 유럽 문화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시간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60진법은 바빌로니아 숫자 체계에서 유래했다. 1시간은 60, 1분은 60, 각도에서 원은 360도 등이다.

 

7장 유대인의 수 표기와 수 신비주의

   히브리어 문자가 지닌 특징은 스물 두 개의 철자가 소릿값과 숫값을 갖는다는 것이다. 철자를 숫자로 읽어야할 때는 다른 철자보다 약간 위쪽에 표시한다.


   모든 수 신비화의 중심점은 신의 이름 야훼다. 야훼라는 철자를 숫자로 바꾸면 5, 6, 5, 10이 되는데 이걸 합치면 26이 된다. 26은 종교적 핵심을 나타내는 여러 단어에서도 나타난다.

 

8장 고대 유럽에 영향을 미친 다양한 전통

   고대 유럽에서는 수표기에 관한 두 가지 원리가 있었는데 철자로 수를 나타내는 법과 독립적인 기호로 나타내는 법이다. 그리스인은 철자로 수를 나타내고, 에르투리아인은 독립적 기호로 나타냈는데 이들 두 체계가 유럽 문화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9장 인도 아라비아 숫자의 유럽 진입

   중세에 이슬람 세계와 접촉한 유럽인들은 아랍인이 가르쳐준 숫자 체계와 수학 지식이 아랍인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중 다수는 인도에서 아랍으로 전해진 것이었다. 우리가 아라비아 숫자라고 하는 1, 2, 3, 4는 실은 인도 숫자인 셈이다.

 

10장 현대 숫자 체계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2진법

   역사적으로 단위를 뜻하는 1를 뜻하는 0의 대립은 컴퓨터 기술의 2진 코드에서 자극과 무자극의 대립으로 변환된다. 2진법에서는 01을 조합해서 모든 수를 나타낸다.

 01밖에 없으니까 11, 210, 311, 4100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2진법은 모든 수와 계산과정, 문자, 텍스트, 그림, 음악, 물질대사와 뇌파, 화학적 물리적 과정, 경제의 흐름, 통신 등 모든 영역으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들은 시간을 나타낼 때는 60진법을, 다른 수의 영역에서는 10진법을 사용한다. 실제로 10진법은 전 세계를 정복했다. 2진법에 의한 디지털화는 수의 상징적이고 신비적인 힘에 대한 우리의 느낌과 상상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수'라는 기호에 이토록 다양하고 신비한 뜻이 숨어 있는 데 감탄했다. 아마 인류가 생겨난 후로 인간은 수를 세기 시작했을 것이다. 나도 무의식중에 수를 셀 때가 많다. 호박을 썰 때도 서른하나, 서른 둘, 서른 셋, 나도 모르게 세고 있다. 계단을 오를 때도 마흔 하나, 마흔 둘 하며 또 세고 있다. 군대 가서 죽은 사촌오빠의 유품이 우편으로 배달되어 왔을 때 겉봉에 써진 군번 10956775라는 숫자는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뇌리에 박혀있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