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7. 10. 3. 죽어서도 밤일하나?

아~ 네모네! 2017. 12. 1. 14:51

죽어서도 밤일하나?

아 네모네 이현숙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다 눈을 들면 북한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면목동 쪽에서 보면 백운대와 인수봉, 망경대가 합쳐 케네디 얼굴이 된다. 비쭉 나온 인수봉은 앞으로 내민 머리카락 모양이고 백운대는 코가 된다. 인수봉과 백운대 사이로 움푹 들어간 곳은 영락없는 눈이다. 턱을 닮은 망경대를 지나 왼쪽으로 내려가면 목에 툭 튀어나온 목울대가 보인다. 목울대가 좀 크기는 하다.

   여기서 왼쪽으로 쭈욱 따라 내려가면 거시기가 보인다. 봉긋하니 서 있다. 아마도 족두리봉인 듯하다. 케네디는 죽어서도 밤일하나? 하는 생각에 웃음이 피식 나온다. 다 늙어서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더 웃긴다. 하긴 케네디는 너무 젊은 나이에 죽어서 아직도 정욕이 넘치는지 모른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해가 질 때의 모양이다. 하지가 가까워지면 꼭 거시기 위치에서 해가 떨어진다. 마치 거시기에 불이 붙은 것 같다. 하지가 지나고 동지가 돼 가면 해는 점점 더 왼쪽으로 이동하여 발치까지 내려가고, 동지가 지나면 다시 다리를 타고 올라와 거시기까지 올라온다.

   나다니엘 호손이 쓴 큰 바위 얼굴이란 책이 있다. 주인공 어니스트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와 함께 큰바위 얼굴을 바라보며 언젠가 이 얼굴을 닮은 위대한 인물이 나타날 것이라는 예언을 듣는다.

   그 후 큰 바위 얼굴을 닮았다는 사람이 여러 명 나타났지만 어니스트가 볼 때는 전혀 닮지 않았다. 그는 실망에 잠겨 일평생을 살았다. 그의 머리는 희게 변했지만 그는 여전히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그 지방 출신의 한 시인이 나타났고 어니스트는 이 사람에게서도 큰 바위 얼굴을 찾지 못했다.

   어니스트가 흰 머리를 휘날리며 석양에 서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시인이 팔을 높이 들며 소리쳤다.

보시오. 보시오. 어니스트씨야 말로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이요.”

청중들은 큰 바위 얼굴과 어니스트를 보며 예언이 실현되었음을 알았다. 하지만 어니스트는 시인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며 자기보다 더 현명하고 착한 사람이 나타날 것을 마음속으로 빈다.

   사람이 평생을 두고 어떤 사물을 바라보며 어떤 염원을 갖다보면 그 사물을 닮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국민성이 만들어지고 어떤 지역의 특성을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밤낮으로 자연을 바라보고 사는데 그 영향을 안 받는 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서양에서는 탄생 별자리를 따라 점을 치고 동양에서도 생년 월 일로 길흉화복을 점친다. 년 월 일 시에 따라 태양과 달의 위치와 인력도 달라지는데 사람이 어찌 그 영향을 안 받을 수 있을까?

   결혼할 때 신랑의 사주(생년 월 일 시를 적은 종이)단자를 신부 측에 보내는 것도, 결혼하기 전에 궁합을 보는 것도 어쩌면 이런 연유인지도 모르겠다.

   대학교 졸업식날 학교에 온 친정 엄마에게 지금의 남편을 소개했다. 집에 온 엄마는 불만이 가득하여 원 세상에 평생 비지죽도 못 먹은 것처럼 배짝 마른 게 꼭 깜생이 같이 생겼네.’하며 도무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하였다. 나도 별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봐도 그랬으니까. 사실 남편은 집이 가난하여 하숙할 돈도 없이 교수실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겨우겨우 졸업했다. 키는 170이 넘는데 체중은 56키로 밖에 안 되어 몰골이 흉악했다. 우리 엄마는 얼굴이 허옇고 퉁퉁한 사람을 좋아하는데 엄마가 볼 때 완전 빵점이다.

   그런데 그 후 반대의 목소리가 점점 약해졌다. 엄마는 나에게 그 사람의 생년월일과 시를 알아오라고 했다. 쥐띠에다가 음력 916일이고 저녁 먹고 태어났다고 했더니 어디 가서 점을 보았나보다. 그 점쟁이 왈 이렇게 잘 만나기는 정말 힘들다고 기막히게 잘 만났다고 했다. 그 후 불평도 사라지고 순조로이 결혼이 이루어졌다. 지금까지 40년 이상 별 탈 없이 잘 살아온 것은 정말 잘 만난 것일까?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운명이 있는 것일까? 아마도 그가 태어난 자연 환경이, 또 그가 자라온 주변 환경이 그에게 영향을 주어 그런 인생을 살게 되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북한산의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며 비명횡사한 케네디를 생각한다. 그 사람의 사주는 그렇게 살다 갈 수 밖에 없는 것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