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7. 9. 24. 엄마가 지어준 호

아~ 네모네! 2017. 9. 24. 15:53

엄마가 지어준 호

아 네모네 이현숙

   중화중학교에 근무할 때 선생님들끼리 외부 강사를 모셔다가 방과 후에 붓글씨를 배웠어요. 한자를 먼저 배웠는데 조금 쓸 만하게 되자 선생님이 액자를 만들자고 했어요. 액자를 만들려면 낙관도 만들어야하고 호도 지어야하는데 딱히 생각나는 게 없어 선생님께 부탁했더니 소운(素雲)이 어떠냐고 하더군요. 흰 구름이란 뜻이니 저도 구름처럼 흘러가는 인생이라 좋더라구요.

   나중에 친정 엄마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펄쩍 뛰며 호는 이름이나 마찬가지인데 함부로 지으면 안 된다고 엄마가 지어다 주겠대요. 결국 점집에 가서 지어왔는데 내 사주에는 물이 없으니 물 수()나 아니면 삼수변 ()이라도 넣어야한다고 소연(素演)이라고 하라네요. 엄마의 말대로 다시 낙관을 만들고 그 이후로 이 호를 썼어요.

   한글 쓰기를 배우고 한글을 쓰려니 이 호는 어째 안 어울리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직접 지었어요. 한샘이라고 했죠. 그냥 하나의 샘이 되고 싶었어요. 작은 물이 쉴 새 없이 졸졸 흘러나오는 샘물이 맘에 와 닿더군요. 그 후로 한글을 쓸 때는 한샘이란 호를 쓰죠. 물론 낙관도 다시 만들었고요. 요즘은 붓글씨도 안 쓰니 그냥 서랍에 처박혀 먼지만 쓰고 있답니다.

   엄마는 그저 자식 잘 되라고 이름에 엄청 신경을 썼어요. 우리 형제는 아들 하나에 딸이 여섯인데 특히 아들 이름에 신경을 많이 썼죠. 이 점쟁이가 이게 좋다하면 이걸로 바꾸고, 또 다른 점쟁이가 저게 좋다고 하면 또 바꿨어요. 아들은 하나인데 딸 여섯보다 이름이 더 많았죠. 정말 이름이 그 사람 운명을 바꾸는 것일까요?

   성경에 보면 하나님도 사람의 이름을 바꿔주었죠.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열국의 아비)으로, 사래의 이름을 사라(열국의 어미)라고 바꾼 후 아이를 낳지 못하던 사라는 아들을 낳았죠. 이름도 하나님이 지어준 대로 이삭이라고 붙였고요.

   그런 엄마는 이름을 바꾸지 않아서 그랬나 환갑도 못 살고 돌아가셨죠. 하긴 그렇게 이름이 운명을 좌우한다면 세상에 병들고, 가난한 사람은 하나도 없겠죠?

   하지만 일생동안 그 이름을 들으며 살다보면 어떤 소리의 에너지가 전달되어 그 사람에게 영향을 줄 것 같기도 해요.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며 살다가도 몸이 아프면 엄마가 점쟁이에게 내 이름을 얘기했을 때 몸이 약하다고 했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해요.

이제 내일 모레면 칠십인데 이만하면 살만큼 살았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저 욕심을 버리면 만사형통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