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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2017. 7. 6. 명품백과 바나나

by 아~ 네모네! 2017. 7. 16.

명품백과 바나나

아 네모네 이현숙

   웬즈데이 마틴의 저서 파크애비뉴의 영장류라는 책에 보면 뉴욕 어퍼 이스트 사이드(upper east side)라는 곳에 사는 미국 0.1% 최상류층 사람들의 모습이 나온다. 그들은 초호화 저택에서 극상품 음식을 먹으며 명품으로 온 몸을 도배하고 산다. 보모의 연봉이 1억 원을 넘고, 기부도 많이 하며 억대의 핸드백을 들고 다닌다.

   이 아파트에 이사 가기 위해서는 주민들로 된 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동의를 얻어야 주택을 구입할 수 있다. 이들이 들고 다니는 백에 버킨백이란 것이 있다. 버킨백이란 단어는 듣도 보도 못한 터라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프랑스 제조사인 에르메스에서 만든 백이다. 사진을 보니 어딘지 눈에 익다. 십여 년 전 내가 가졌던 백이다. 백에 자물쇠가 달린 것도 똑 같다. 가격을 보니 내 수준에는 천문학적 숫자인 천만 원도 넘는다.

   남편이 교장으로 근무할 때 육성회장이 준 백이라고 집에 가져왔다. 나는 뭐가 뭔지도 모르니까 그냥 성경 가방으로 사용했다. 며칠 써보니 무겁기만 하고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지하철역 맨땅에서 산 헝겊 가방이 훨씬 편하고 맘에 든다.

   그냥 처박아 두었다가 혹시 딸이라도 쓰려나 하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헤르메스 (HERMES)라는 라벨이 붙은 백이 있는데 쓰겠느냐고 하니 딸이 그건 프랑스 제품인데 헤르메스가 아니고 에르메스라는 명품백이라고 가지고 와 보란다. 나중에 딸네 집에 갈 때 가져다 주었다.

   딸도 잘 안 쓰다가 사위가 캄보디아 근무할 때 온 가족이 같이 가면서 이 백을 가져 갔나보다. 외무부 직원들 모임에 들고 갔더니 여자들이 놀라면서 이거 무지 비싼 건데 진짜냐고 묻더란다. 딸도 좀 놀랐나보다.

   사실 난 갓 상경한 촌닭 같아서 명품을 걸쳐도 짝퉁으로 보이기 때문에 내가 들고 다닐 때는 아무도 나에게 진짜인가 묻지 않았다.

   이렇게 비싼 건 줄 알았으면 남편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나도 명품에는 일자무식이라 이런 상표가 있는 줄도 몰랐다. 남편이 부실하여 장관 후보에 오르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장관 후보에 올랐으면 청문회에 끌려 나가 남편도 나도 개망신 당했을 것이다. 지금 같으면 김영란 법에 걸려 즉시 모가지 날아갔을 지도 모른다.

   도대체 물건의 가치는 어떻게 정해지는 것일까? 왜 인간은 이런 것에 목숨 걸고 경쟁하는 것일까? 만일 원숭이에게 버킨백과 바나나 한 개를 주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나나를 가지고 도망갈 것이다. 바나나 한 개를 500원이라 치고 버킨백 값을 1500만원이라 치면 이 돈으로 바나나 3만개를 살 수 있다. 원숭이가 인간보다 더 똑똑한 게 아닐까?

   바나나는 맛도 좋고 영양도 풍부해서 먹으면 피가 되고 살이 되는데 명품백은 보기만 그럴듯하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게 아닐까? 원숭이가 사람을 보면 엄청 멍청하다고 할 것이다.

   오직 인간만이 남의 눈치를 보고 헛된 허영심의 노예가 되어 스스로 굴레를 씌우며 불행을 자초하는 지도 모른다. 체면과 명예욕 때문에 자살하는 동물은 인간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바나나 한 개와 명품백 중에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명품백을 집어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