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7. 7. 2. 사과언니

아~ 네모네! 2017. 7. 16. 15:24

사과 언니

아 네모네 이현숙

   매주 화요일마다 롯데 트레킹 모임에서 산에 오른다. 사람들은 저마다 간식을 한 가지씩 가져온다. 나는 14년 째 똑같은 메뉴다. 이것저것 생각하기 귀찮아서 사과만 싸간다. 사과는 1년 열 두 달 항상 나오기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다. 사과 네 개를 4등분하여 열여섯 쪽을 가져간다. 14년을 줄기차게 한 가지만 싸갔더니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별명은 사과 언니가 되었다.

   사과를 깎아 보온 주머니에 넣고 얼음물과 함께 넣어간다. 한참 올라가다 온몸이 땀범벅이 될 때쯤 시원한 사과를 꺼내면 다들 맛있다고 즐거워한다. 하긴 그 상황에서 맛없는 게 어디 있겠냐마는 다들 맛있다고 하니 나도 기분이 좋다.

   항상 선두를 따라가는 나는 선두팀에 오는 사람에게만 주게 된다. 그러니까 내 사과를 선두 사과라고 하고 그것도 16등 안에 들어가야만 먹을 수 있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내 사과 먹는 것을 더 기뻐한다. 하긴 사과언니라는 말이 싫지 않다. 사과는 맛도 좋고 모양도 예뻐 누구에게나 사랑 받는 과일이다. 내 주제에 사과라니 황송할 뿐이다.

   2년에 한 번씩 하는 건강검진을 하였다. 결과표가 왔기에 2년 전 것과 비교해 보았다. 혈당은 100에서 113으로, 200이 기준선인 총콜레스테롤은 226에서 266으로 치솟았다. 위험수준이라고 즉시 조치를 취하라는 소견이 나왔다. 뇌경색, 협심증, 치매 위험이 있다는 협박성 글귀도 있다.

   여기다 한 술 더 떠서 허리가 엄청 굵어졌다. 2년 전과 체중은 똑 같은데 허리는 6cm가 늘었다. 입던 바지가 꽉 끼어 들어가질 않는다. 점점 애플타입으로 변하고 있다. 팔 다리는 갈수록 가늘어지고 배는 나와 이런 추세로 가다가는 굴러다니게 생겼다. 젊었을 때도 S라인인 적은 없었지만 지금은 옆에서 거울을 보면 가슴보다 배가 더 나왔다. 이래저래 사과 할머니가 되어가고 있다.

   늙으면 체형이 변하고 얼굴도 변하고 오장육부가 다 변한다. 심지어 목소리까지 달라진다. 오는 세월을 어찌 막겠는가?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는 옛말도 있다. 아무리 천하장사라도 늙으면 허리 굽힐 수밖에 없는 게 세상이치다. 어차피 지는 게임인데 그냥 순순히 항복하는 게 나을 듯하다.

   세월을 이기려고 발악을 하다 추한 꼴 되지 말고 그냥 두 손 두 발 다 들고 깨끗이 승복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일 아닐까? 이렇게 마음을 비우고 자연처럼 아름답게 늙어가는 것이 남 보기도 좋고, 나 보기도 좋을 듯하다. 해가 넘어갈 때의 붉은 노을처럼, 낙엽 지기 전의 타는 듯한 단풍잎처럼 아름다운 노년을 맞고 싶다. 내 욕심이 너무 과했나?

   갱년기가 지나고 노년기가 되면서 여기 저기 망가질 때마다 그걸 만회하려고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이 안쓰럽다. 어쩌면 나의 영이 육신과 이별하기 위해 연결고리를 하나하나 끊어버리는 지도 모른다. 이걸 다시 이으려고 노심초사하는 나는 어쩌면 자연을 거스르는 우를 범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연결 고리가 끊어져야 나의 영혼은 이 육체를 벗어나 무한한 공간을 마음대로 날아다닐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