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랭이 찢어지네~
아 네모네 이현숙
기간 : 2017년 3월 31일 ~ 4월 16일
장소 : 하와이
하와이는 10여 년 전에 한 번 다녀온 적이 있다. 그 때는 같이 근무했던 선생님과 주로 관광만 했는데 이번에는 동생들과 트레킹을 하기로 했다.
카우아이 1 ( 3월 31일 )
- 카우아이 커피 농장 -
호놀룰루 공항에서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카우아이섬 리후에 공항에 내리니 열대의 강렬한 햇볕이 따갑다. 공항 출입문 위에는 카우아이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글씨 밑에 가든 아일랜드라고 쓰여 있다. 정원처럼 아름다운 섬인가보다.
카우아이 커피 컴퍼니에 가서 이것저것 맛보기를 하였다. 나는 커피라면 우리나라 삼박자 커피가 제일 맛있다. 걸어 다니면서 투어를 하는데 하와이 원주민인 듯한 여자가 데리고 다니며 설명해준다. 가이드 투어는 10시, 12시, 오후 2시, 4시, 이렇게 하루 네 번씩 한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모자도 안 쓰고 잘도 다닌다.
아직 수확 철이 아니라 커피 따는 것은 볼 수 없지만 커피나무에 다닥다닥 붙은 열매가 이채롭다. 커피를 수확하는 기계도 보았는데 커다란 솔이 달린 차가 커피 밭 사이를 누비면서 털면 뒤에 있는 통으로 들어간단다. 자동차 자동세차기 같이 생겼다. 여기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중간 정도로 볶은 커피가 카페인이 가장 많다는 것이다.
커피하우스 앞 허수아비 앞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이 허수아비의 손 모양이 하와이 인사인 알로하를 뜻한다고 한다.
- Spouting Horn (내뿜는 뿔?)-
스파우팅 혼은 TV에서 몇 번 보았는데 바닷가의 동굴로 파도가 밀려들어 분수처럼 솟아오르는 곳이다.
물이 치솟아 오르는 모양이 뿔 같아서 이런 이름이 붙었나했더니 그게 아니고 물이 뿜어져 오를 때 나팔(horn) 소리가 나서 그런 이름이 붙었단다.
너무 기대가 커서 그랬나 파도가 약해서 그랬나 TV에서 보는 것처럼 멋있지는 않았다.
- 포이푸 비치-
포이푸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 이 해변에는 바다거북과 바다표범이 모래 위에서 널브러져 자고 있었다. 사람이 가까이 가도 눈 한 번 깜빡하지 않는다. 인간에 대한 신뢰감이 대단하다. 아무도 해치지 않는 걸 아나보다. 오뉴월 개 팔자가 아니라 춘삼월 거북이 팔자다.
19시간의 시차가 있는 관계로 43시간의 긴 하루를 끝내고 반얀하버 호텔에 여정을 풀었다.
카우아이 2 ( 4월 1일 )
- 칼랄라우 트레일 첫 날 -
칼랄라우 트레일이 시작되는 케에비치에는 주차공간이 부족하다고 해서 서둘러 호텔을 나섰다. 케에비치에 도착하니 9시도 안 되었는데 빈 공간이 없다. 우리 자매 세 명은 여기서 짐을 들고 내리고 제부는 다시 차를 끌고 돌아가서 적당한 곳에 주차하고 한 참 만에 돌아왔다.
나팔리해변에는 곳곳에 닭들이 쏘다닌다. 여기 닭들은 사육되는 것이 아니라 야생으로 돌아다니는 듯하다. 특히 수탉들은 몸매가 날렵하고 눈매가 매서운 것이 양계장 닭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트레일 시작점에는 칼랄라우 트레일 11마일이라고 쓰여 있다. 11마일이면 약 18km나 되는데 무거운 짐을 지고 이 길을 잘 걸을 수 있을지 겁이 더럭 난다.
천리 길도 한 걸음 부터라고 소처럼 느릿느릿 걷는다. 해안의 경치는 기막히게 아름답다. 나보다 일곱 살 어린 4번 동생과 열 살 어린 5번 동생, 그리고 제부는 걸음이 빨라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진다.
혼자서 거북이걸음으로 걷는데 웬 남자가 날 보고 ‘beautiful’ 한다. 다 쭈그러진 동양할머니에게 아름답다니 장난하나? 하다가 그냥 ‘땡큐’했다. 나중에 동생을 만나 이 얘기를 하니 ‘이런 삶이 아름답다는 거겠지~.’한다. 동생 말을 들으니 이해가 된다. 나도 아름다운 가보다 하고 잠시 착각한 내가 우습다.
무거운 짐이 어깨를 짓누르지만 한 구비 돌 때마다 입이 딱 벌어지는 절경이 나타나니 힘 든 줄도 모르고 무아지경으로 걷는다. 하나카피아이비치에 이르니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쉬고 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올 수 있지만 여기서부터 칼랄라우 비치까지는 허가를 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 하루에 80명씩만 허가를 내준다고 한다. 이 지점을 지나니 사람도 별로 없고 길도 좁아진다.
혼자 마냥 걷는데 한 여자가 무지막지한 내 짐을 보더니 캠핑을 할 거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awesome’한다. 놀랍다 대단하다는 뜻이다. 머리가 허연 할망구가 야영을 할 거라고 했더니 감동 먹었나보다.
하나코아 밸리에 도착하니 텐트를 친 사람도 있고 작은 쉼터도 있다. 여기서 물을 끓여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잠시 쉬었다. 칼랄라우비치까지 가는 길의 약 반 정도 왔다. 지저분하긴 하지만 화장실도 있어 그런대로 편리하다.
바위 위에 노란 페인트로 6마일 걸었다는 표시가 있다. 반 이상 걸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볍다. 해안절벽은 그야말로 기기묘묘하여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나무는 점점 사라지고 이끼와 바위만 보인다. 까마득하게 앞서 가는 동생들이 개미처럼 작게 보인다. 혼자 걷다보니 두 개의 구멍이 뚫린 바위가 보인다. 마치 코끼리 두 마리 같다. 한 마리가 한 마리를 타고 있는 모습이 짝짓기를 하는 듯하다. 나중에 동생에게 그 바위 봤느냐고 물으니 다 못 보았단다. 너무 빨리 가니 안 보였나보다.
바위 색도 온갖 색이 어우러져 검은 색, 붉은색, 노란색 총천연색이 다 모였다.
칼랄라우가 뭔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칼날 위를 걷듯 아슬아슬한 절벽이 무섭기도 하고 기가 막히게 아름답기도 하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칼날 같은 위험을 포함하고 있는 게 아닐까? 걷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헬기는 무수히 오간다. 걷기 힘든 사람들은 주로 헬기 투어로 이 절경을 감상한다고 한다.
온 정신을 집중하여 절벽을 지나니 드넓은 초원이 나타난다. 여기가 에덴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가슴 저린 장면이다.
여기서 기다리던 동생들과 날아가는 새처럼 온갖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었다.
땅거미가 스멀스멀 내려앉을 즈음 칼랄라우 해변에 도착했다. 지금까지는 그저 바위투성이더니 어디서 모여왔는지 모래사장이 나타난다. 어두워지기 전에 부지런히 텐트를 치고 저녁 준비를 했다. 밥 하고 찌개 끓이고 해서 식사를 마치니 주변은 온통 잠이 들었는지 고요하다.
설거지는 대충하고 폭포로 씻으러 갔다. 폭포 물에 하루 종일 땀범벅이 되어 소금이 버석버석한 얼굴을 씻고 아랫도리까지 씻으려는데 불빛이 다가온다. 5번 동생은 무조건 반사적으로 “Wait! Wait!” 하고 소리를 지른다. 순간 불빛이 제 자리에 멈췄다. 다 씻고 나니 하루의 피로가 싹 풀린다. 텐트로 돌아오는 길에 하늘을 보니 북두칠성은 땅에 붙고 오리온도 찬란하다. 위도가 낮아서 그런지 북두칠성이 지평선 가까이에 있다. 검은 카페트에 다이아몬드를 뿌린 듯 눈부시다.
카우아이 3 ( 4월 2일 )
- 칼랄라우 트레일 둘째 날 -
해 뜨기 전에 해변을 한 번 걸었다. 누가 벌써 걸었는지 발자국이 선명하다.
엊저녁에 해 놓은 밥으로 아침을 먹고 부지런히 텐트를 걷어 뜨거워지기 전에 출발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구름이 끼어 한결 걷기가 편하다. 이름 모를 야생화가 반갑게 인사한다.
아침 해가 비스듬히 비치니 칼날 능선이 도드라진다. 우리나라 산은 노년기 산이라 능선이 부드러운데 여기는 젊은 산이라 그런지 날이 섰다.
어제 갈 때 본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새로운 칼날을 보는 듯하다. 4번 동생은 절벽에서 사진 찍다가 모자가 날아갔다.
어쩌나 봤더니 일각의 망설임도 없이 남편 것을 뺏어서 자기가 쓴다. 제부는 아무 죄도 없는데 땡볕에 맨 얼굴을 내놓고 걷고 있다. 칼만 안 들었지 강도나 다름없다.
아슬아슬 절벽 길을 걸으려니 잡을 것도 없고 언제 바다로 쳐 박힐지 몰라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동생들은 꽁지도 안 보이게 달아나고 혼자서 허덕허덕 걸어가는데 웬 남자가 마라톤을 하면서 달려온다. 걸어가기도 힘 드는 이런 길을 달리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인간인가 쳐다보며 옆으로 비켜서니 인사를 하면서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한다. 사진을 찍어달라는가 했더니 그게 아니고 나를 찍겠다고 한다. 그러라고 했더니 자기 핸드폰을 꺼내 나를 찍고는 또 달려간다. 노약자가 큰 짐을 지고 가는 게 신기했나보다. 이거 그 사람 페이스북에 내 사진 올라가서 세계만방에 쪽 팔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내가 출발점에 도달하기도 전에 마라톤 아저씨는 벌써 종착점까지 갔다 돌아오고 있다. 산길 왕복 36킬로를 한 나절에 주파한 셈이다. 참 인간의 능력은 얼마나 되는지 상상이 안 된다.
18킬로를 다시 걸어 나와 출발점에 이르니 가슴이 뿌듯한 게 무슨 큰 과업이라도 달성한 듯 흐뭇하다. 돈 내고 하니까 하지 돈 주면서 하라고 했으면 사람 잡는다고 난리를 쳤을 것이다.
위기주부라는 사람이 먹었다는 세이브를 먹는다고 그 가게를 찾아들어가니 사람들이 줄을 섰다. 무지개 빙수를 사서 폭풍 흡입하듯 먹었다. 별 맛은 없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은지 모르겠다. 무지개 색이 예뻐서인가?
빙수를 먹고 킬라우에아 등대를 보러갔는데 화요일에서 금요일까지만 개방한다고 하여 먼발치에서만 바라보았다.
카우아이 4 ( 4월 3일 )
- 칼랄라우밸리 룩 아웃 -
해 뜨기가 무섭게 또 길을 나선다. 칼랄라우 밸리 룩 아웃이란 곳에 가니 어제 걸었던 칼랄라우 트레일이 발 아래쪽으로 나타난다. 칼날 능선이 볼수록 아름답다.
- 아와아와 푸히 트레일 -
이곳 지명은 모두 하와이 원주민 언어로 되어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도 없고 발음도 힘들다. 어거지로 읽으려니 입에서 쥐가 나려고 한다.
트레일 끝에 가니 3.25마일이란 작은 팻말이 있다. 5.2km를 왕복하려니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끝 지점에서 바라보는 절벽과 협곡은 감탄사가 절로 난다.
여기서 우리가 사진을 찍으려니 한 남자가 넷이 같이 찍어주겠다고 한다. 모처럼 넷이 서니 왜 선글라스를 안 벗느냐고 의아해한다. 우리가 그거 벗으면 10년 늙어 보인다고 하니 웃는다. 서양 사람들은 사진 찍을 때 선글라스 쓰는 걸 안 좋아하나보다. 제부만 안경을 안 썼더니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번쩍 든다.
- 캐년 트레일 -
숙소에 와서 잠시 쉬고 코케에 뮤지엄을 보러 갔더니 벌써 문을 닫았다. 9시부터 오후 4시까지만 개방한다고 쓰여 있다. 박물관 앞 넓은 잔디밭에는 닭들이 병아리를 데리고 활보하고 있다.
카우아이는 어디가나 완전 닭판이다. 카우아이가 아니라 치킨아이라고 해야겠다. 박물관은 포기하고 캐년 트레일을 걷기로 했다. 계곡으로 한참 내려가니 언덕이 나온다. 석양을 받아 붉게 물들었다.
언덕 아래 절벽에는 십자가가 있다. 누군가 여기서 떨어져 죽었나보다. 여기서 더 내려가니 작은 폭포가 보인다. 폭포를 보고 다시 올라와 클리프 뷰포인트로 갔다. 계곡 속의 절벽을 보는 곳이다. 떨어질 것을 염려하여 철봉으로 막아놓았다.
더 올라와서 니하우 뷰포인트로 갔다. 멀리 니하우섬이 보인다. 중국인들이 살았는지 중국 사람이 이 섬을 샀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중국 인사말이 들어간 걸 보면 중국과 연관이 있나보다.
이 날 저녁에 제부가 스마트폰을 보더니 오늘 4만 5000보 걸었단다. 스마트폰의 만보기를 켜두었나보다. 최고로 많이 걸었다고 축하 메시지가 왔단다. 만보기에는 그런 기능도 있나보다. 경로인 할망구가 어린 동생들 따라 다니려니 가랭이가 찢어질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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