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16. 10. 28. 중국 구채구 황룡

아~ 네모네! 2016. 11. 10. 21:09

호떡집에 불났네~

 

아 네모네 이현숙

 

                                                                                    기간 : 20161028~ 112

                                                                                    장소 : 중국 사천성 구채구, 황룡


   올 해가 4번 동생 환갑이다. 환갑도 기념할 겸 엎어진 김에 제사 지낸다고 형제자매끼리 부부 동반으로 중국 구채구에 가기로 했다. 우리 집은 딸이 여섯이라 카톡방에서 번호로 부른다. 아들은 하나뿐이니 번호 붙일 필요가 없다. 나는 남편이 해외여행 귀찮다고 하여 혼자 가고, 3번 동생은 100살 먹은 시어머니가 계신 관계로 남편이 시어머니를 돌봐야해서 딸과 같이 갔다.

 

청두 ( 1028)

- 꽃미남 가이드 -

   저녁 8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라 수영, 요가, 구역예배까지 하루 일을 모두 마치고 인천공항으로 갔다. 9명이 함께 노랑풍선 여행사 직원에게 일정표를 받아 체크인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면세점을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다가 같이 못 가는 6번 동생의 화장품을 하나 샀다.

4시간의 비행 끝에 사천성의 수도 청두(성도)공항에 내리니 밤 11시가 넘었다. 중국은 한국보다 한 시간이 늦다. 입국 심사를 받고 밖으로 나가니 노랑풍선이라고 쓴 종이를 들고 중국 가이드가 기다린다. 척 보니 송중기를 닮은 꽃미남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잘 생긴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기 마련이다.

 

무후사 ( 1029)

- 삼국지의 역사가 살아있는 무후사 -

   아침 7시 반에 호텔을 출발하여 무후사로 향했다. 무후사는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와 장비, 관우, 전략가 제갈공명 등의 상이 모셔진 사당이다. 무후사라는 이름은 제갈공명이 죽은 후에 내려진 시호 충무후에서 유래되었다. 몇 천 년 전의 역사적 인물들을 잊지 않고 이렇게 기리는 중국 사람들의 나라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사당 뒤쪽 뜰에는 유비 묘가 있는데 크기도 자그마하고 봉분 위에는 나무가 무성하다. 그의 무덤을 작고 소박하게 만들라고 유언을 남긴 유비의 뜻에 따라 이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겸손하고 서민적인 그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 먹자골목 금리거리 -

   삼국시대의 거리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금리거리로 갔다. 길거리 음식과 각종 기념품점이 아기자기 하게 늘어서 있다. 구채구 가는 버스에서 먹으려고 호떡을 사러 호떡집으로 갔는데 어찌나 느려 터지고 말도 안 통하는지 그냥 포기했다. -사진 20161029 8399-

복 받기를 원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의 염원이다. 복주머니를 파는 가게에 울긋불긋한 주머니가 가득 걸려있다.

 

- 구채구 가는 길 -

   구채구 가는 길은 처음에는 고속도로로 세 시간 정도 달린다. 달리던 차가 갑자기 멈추기에 밖을 내다보니 차들이 한 없이 늘어서 있고 사람들은 모두 밖에 나와 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있고 차에 다리를 걸고 스트레칭을 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들 서두르는 기색도 없이 당연한 일인 듯 천하태평이다. 앞에서 사고가 났단다. 하염없이 기다리니 앞의 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중국 고속도로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란다.

   길가에는 여기 저기 과일을 파는 곳도 많다. 한 할머니는 몇 알 되지도 않는 사과를 앞에 놓고 앉아있는데 언제 다 팔려나 걱정된다.


   고속도로가 끝나고 구불구불 산길이 한 없이 이어진다. 지나는 길에 강족마을을 보았는데 지붕에 뿔 모양으로 삐죽한 장식이 있는 것이 이색적이다.


   더 가다가 지진으로 마을이 가라앉은 후 물이 고여 호수가 된 접계해자 옆 휴게소에 들렀다. 1933년 지진으로 마을이 100미터 아래로 내려앉으면서 물이 들어차 호수가 되었다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장 되었을까 생각하면 참 인생무상이다.

   휴게소 건너편에는 하얀 야크를 세워놓고 돈을 받고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눈같이 하얀 털이 눈부시다. 가까이 가보니 눈이 넘~ 예쁘게 생겼는데 애잔한 눈빛이 애처롭다. 하루 종일 철 기둥에 묶인 채 주인을 위해 사람들을 등에 태우고 모델 노릇을 해야 하는 신세가 불쌍하다. 산으로 들로 마음껏 돌아다니며 풀을 뜯고 싶을 텐데 인간의 욕심 때문에 죄수 아닌 죄수 노릇을 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가다가 화장실에 들렀는데 문도 없는 화장실이라 볼 일을 보고 있는 엉덩짝이 적나라하게 보여 민망하기 짝이 없다. 이렇게 해놓고 돈도 받으니 우리나라 휴게소 화장실은 여기 비하면 궁궐이나 다름없다. 거기다 돈도 안 받고 휴지도 맘대로 쓰니 세계 제일이다.


  캄캄한 밤이 되어 구채구에 도착했다. 구채구(九寨沟)는 아홉 개의 마을이 있는 구역이란 뜻이다. 마침 밤 9시가 되어 구채 천고정쇼를 보고 나오는 사람들이 홍수가 난 듯 밀려나오고 있다. 우리도 내일 이 쇼를 보기로 했다.

 

구채구 ( 1030)

- 눈길을 사로잡는 옥색 물과 무궁무진한 폭포 -

   아침 6시 반에 호텔을 출발하여 구채구 매표소 앞에 이르니 벌써 수십 대의 버스가 손님을 쏟아내어 입구 앞 광장에 인파가 가득하다. 굽이굽이 줄을 서서 큰 소리로 떠들어대는 모양이 호떡집에 불난 듯 정신이 하나 없다.


   인파가 어찌나 많은지 일행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한다. 우리 가이드는 긴 장대에 팬더곰 인형이 달린 것을 들고 다니니 찾기가 수월하다.

   안으로 들어가 셔틀버스를 타고 오화해(五花海)로 갔다. 다섯 가지 꽃이 핀 듯 아름다운 호수다. 호수에다 왜 바다 해()자를 붙였는지 모르겠다. 가이드 말로는 사천성에는 바다가 없어서 바다 같이 넓다는 의미로 붙였다고 한다.


   다음은 진주탄 폭포로 이동했다. 폭포에서 쏟아지는 물이 흩어져 진주알로 만든 발을 쳐놓은 듯하다

 

   경해(鏡海)는 물속에 드리운 산 그림자가 거울에 비친 듯 아름다운 곳이다.


   다시 버스를 타고 내려와 마을 촌장님 댁에 들렀다. 여기서는 고소증에도 좋고 몸에 좋다는 차를 팔았다. 공짜로 주는 차만 마시고 나오려니 좀 미안했다. 촌장님 댁 앞에는 경전이 적힌 헝겊을 긴 장대에 매단 룽다도 있고, 경전이 적힌 통인 마니차도 있다. 룽다는 바람이 불때마다 온천지에 경전이 두루 퍼지라는 뜻이고, 마니차는 돌릴 때마다 경전을 한 번 읽는 것과 같다고 한다



   다음은 장해(長海)로 갔다. 구채구에서 가장 길고 깊은 호수라고 한다. 해발 3000미터가 넘으니 어질어질하다


   장해 아래쪽에 있는 오채지(五彩池)로 갔다. 한 호수에서 다섯 가지의 영롱한 색이 나온다는 연못이다. 유명세에 걸맞게 호수 앞에는 인산인해를 이루어 비집고 들어가 사진 찍을 공간도 없다.


   낙일랑 폭포는 티베트어로 웅장한 폭포라는 뜻이다. 과연 규모가 엄청나게 큰 폭포였다. 안내 표지판에는 중국 한자로 크게 쓰여 있고 그 위에 티베트 문자로 작게 적혀 있다. 나라를 잃은 후 80년 넘게 독립을 못하고 고통 받는 티베트 민족의 설움이 가슴까지 스며든다.


   수정폭포는 물살이 어찌나 강한지 수정 같은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어 사진을 찍으려면 옷이 함빡 젖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여기서 계속 내려오며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를 무수한 호수와 폭포를 지나니 나무를 기와 모양으로 잘라 지붕을 만든 너와집이 나타난다. 너와집 앞에는 전통 복장을 입은 남녀가 손님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매표소 밖으로 나오니 사천성의 대표 마스코트 팬더곰 모형이 있다. 여기서 또 사진을 찍고 주차장까지 걸었다. 걸으며 가로등을 보니 꽃봉오리 모양으로 생겼는데 수를 세어보니 아홉 개다. 구채구라서 아홉 개씩 만들었나보다.


- 사람 잡는 전신 맛사지 -

   저녁 식사 전에 맛사지를 받으러 갔다. 한 방에 세 명씩 들어갔는데 우리 방은 3번 동생과 그 딸 지연이, , 이렇게 셋이 들어갔다. 두 명의 남자가 들어와서 발 담글 뜨거운 물을 동생과 조카 앞에 놓고 나간다. 세 번째 남자가 들어와 내 앞에 물통을 두고 나간다. 앞의 두 남자가 먼저 젊은 동생과 어여쁜 아가씨를 차지했으니 늦게 들어온 남자는 어쩔 수 없이 다 늙어빠진 나를 맡게 된 것 같다. 흰 머리에 쭈그렁바가지 할망구를 주무르게 생겼으니 어디 맛사지 할 맛이 나겠나 싶어 미안하기 그지없다.

   심통이 나서 그런가 마구 주무르고 두드리는데 온몸에서 진땀이 빠작빠작 난다. 손가락 발가락을 잡아 뽑고, 팔을 꺾고 다리를 꺾으니 악 소리가 절로 난다. 피로 풀려고 맛사지 받다가 아주 돌아가시게 생겼다.

   맛사지를 마치고 옷을 입으려니 골치가 지끈지끈 아프다. 맛사지 받느라고 용을 써서 그런지 고소에서 함부로 까불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아침에 고소약을 먹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 눈물 겨운 천고정 쇼 -

   저녁 식사 후에 천고정 쇼를 보러갔다. 매표소 안쪽으로 들어가니 옛 거리와 건물을 재연해 놓은 고성이 휘황찬란하다. 무지막지하게 큰 마니차도 보고 불상도 보며 어슬렁거리는데 갑자기 삼장법사와 손오공, 사오정, 저팔계로 변장한 사람들이 나타난다. 이 사람들을 따라가며 사진을 찍었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차림의 사람들이 거리 공연을 하듯 휘젓고 다닌다.


   2층으로 올라가 차마고도도 보고 동굴도 구경하다가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천고정 쇼는 사천성의 전통 무용과 대지진 당시의 상황을 재연한 것이다. 4D 영상이라 지진이 나는 시점에서는 갑자기 의자가 흔들려 깜짝 놀랐다. 지진이 날 때까지 모르고 천하태평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 어린 아이를 안고 있다가 그대로 묻혀 죽어가면서도 아이를 감싸 안고 죽어가는 여인 등을 볼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그 당시의 실제 상황까지 영상으로 보여주는데 한 명이라도 더 살려보려고 안간 힘을 쓰는 구조대의 활약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 환갑 축하 파티 -

   저녁 식사 후에 5번 동생 방에 모여 술과 다과를 나누었다. 케잌은 없었지만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4번 동생의 환갑을 축하했다. 동영상을 찍으며 나도 모르게 4번 동생을 5번 동생이라 하며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다 마치고 나니 아차 4번인데~ 하는 생각이 든다. 동생이 많다보니 툭하면 헷갈린다. 조카 지연이가 외삼촌까지 치면 5번이 맞는다고 해석을 해준다. 꿈보다 해몽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 듯싶다.

 

황룡 ( 1031)

- 누런 용이 꿈틀대는 계곡 -

   아침 6시 반에 호텔을 나서 황룡으로 가는 길은 헤드라이트를 환하게 밝힌 버스들의 행렬이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다. 우리만 부지런한 줄 알았더니 중국 사람들 겁나게 동작 빠르다. 동작만 빠른 게 아니라 어찌나 목청이 큰지 마치 전투에 나가는 군인들 같다.

가는 길에 편백나무 제품을 파는 가게에 들렀다. 편백나무 액이 좋다고 귀후비개용 솜에 오일을 묻혀 콧구멍에 넣고 향을 맡으란다. 모두들 콧구멍에 솜방망이를 꽂은 모습이 우습다. -IMG 1566-

집에 있는 남편이 생각나 방석을 하나 샀다. 돈을 안 가지고 나가서 5번 동생에게 꾸었는데 제부가 사주겠단다. 아니 베룩이 간을 내먹지 우리보다 형편이 어려운 제부에게 받으려니 눈물이 날 지경이다.

   4000미터가 넘는 고개를 넘어 황룡에 도착하니 한산한 모습이다. 도떼기시장 같던 구채구에서 여기 오니 갑자기 시골로 온 느낌이라 마음이 평화롭다. 한글 안내판이 있어 더 친근감을 느낀다.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카르스트 지형에 석회질 물질이 퇴적되어 누렇게 변한 계곡으로 물이 흐르는 것이 마치 누런 용이 꿈틀거리는 것 같아 황룡이라고 한다. 1992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에 등록되었다고 한다.

   케이블카를 타는데 내 앞에서 끊어져 혼자 다음 칸에 타게 되었다. 중국 사람들이 함께 탔는데 중국 할아버지가 나에게 뭐라고 하는데 도통 못 알아듣겠다. 어디서 왔느냐고 하는 줄 알고 코리아라고 해도 모르는 눈치고 한국해도 모르는 눈치다. 손가락 하나를 치켜들고 뭐라고 하기에 아하~ 혼자 왔느냐고 묻는 것 같아 앞의 케이블카를 가리켰더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 머리 허연 할망구가 혼자 온 것 같아 이상했나보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전망대 쪽으로 걸어가는데 지진이 난 것 같이 땅이 흔들리는 느낌이다. 갑자기 고소에 내리니 고소증이 나타나는 것 같다. 발로 허공을 딛는 듯 휘청휘청 어질어질하다. 그래도 전망대에서 멀리 설산을 배경으로 생쇼를 벌이며 이 폼 저 폼으로 사진을 찍었다.

 

- 두 아버지 덕? -

   전망대를 지나 나무 데크길을 마냥 걸었다. 계속 비몽사몽 꿈속 길을 걷는 느낌이다. 여기 저기 산소통을 파는 가게가 보인다.


   3번 동생이 느릿느릿 걸다가 이게 다 두 아버지 덕이란다. 순간 왜 아버지가 둘이지? 하다가 아하~ 하나님 아버지와 친정아버지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 아버지가 이렇게 화창한 날씨를 주었고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들어온 부의금으로 우리가 이렇게 해외여행을 왔으니 말이다. 친정 엄마도 보험을 들어놓고 얼마 안 돼 돌아가셔서 돈암동에 집 한 채가 생겼는데 아버지도 병원에 입원하고 한 달도 안 되어 돌아가시는 바람에 돈도 안 쓰고 돌아가셨다. 부의금을 많이 남겨 놓고 돌아가셔서 해외여행 몇 번 하게 생겼다. 우리 부모님은 다른 건 몰라도 죽는 복은 타고 나신 것 같다.

   오채지 아래 갈림길에서 가이드가 힘든 사람은 오채지로 올라가지 말고 옆의 지름길로 가라고 하는데 우리 형제 아홉 명은 모두 위로 올라갔다. 올라가다가 머리가 너무 아파 긴 의자에 앉아 다 같이 고소약을 먹었다. 아침에 고소약을 먹었지만 약효가 다 떨어졌나보다. 고소약을 먹고 조금 걸으니 머리가 덜 아팠다. 중국약이 무슨 약효가 있겠나 의심했는데 그래도 조금은 효력이 있는 것 같다.

   오채지 꼭대기에 이르니 커다란 전망대가 있고 너도 나도 기기묘묘한 색깔의 물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 바쁘다. 우리들도 데크에 주저앉아 뿌잉뿌잉 하며 얼굴에 손가락을 대고 사진을 찍어댔다.


   석회질이 침전된 바닥에 물이 고여 계단식 연못이 만들어졌다는데 녹아있는 물질에 따라 에메랄드빛이 있는가 하면 누런 황토 빛도 있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기묘한 색의 연못이 무궁무진 했는데 계곡 전체에 3400 여개가 있다고 한다.


   내려오면서도 곳곳에서 온갖 폼으로 사진을 찍어댔다. 마치 우리가 황룡이라도 된 듯 방방 뛰며 폼을 잡았다. 고소에서 뛰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에라~ 나중에 산수 갑산을 갈망정 뛰고 보자하며 나도 뛰었다.



   황룡중사라는 절을 지나니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왼쪽 길은 포장길이지만 거리가 짧다고 했다. 우리는 볼거리가 많은 오른 쪽 길로 접어들었다. 내려가는 내내 눈부신 빛의 연못이 끝없이 이어졌다.


   여기 저기 보느라 정신없이 걷다보니 어느 덧 황룡의 종착지 출구에 도착했다. 여기서 또 인증사진을 찍고 나니 가이드가 와서 식당으로 가자고 한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리 때문에 오래 기다린 B팀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려니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너도 나도 진통제를 주워 먹고 버스에 올랐다. 오늘 성도까지 가려면 날 새게 생겼다. 그래도 가는 길에 송판고성에 들러달라고 가이드에게 부탁하니 기사에게 2만 원 정도 줘야한단다. 우리 때문에 늦었으니 우리가 100위안 주기로 했다. B팀은 고맙다고 박수까지 쳐준다.

   중간에 내려올 때 고소증으로 의식을 잃은 사람이 들것에 실려 내려오는 것을 보았는데 가이드에게 우리나라 119처럼 공짜로 해주느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부담해야한단다. 생각할수록 우리나라 좋은 나라다.

   4천 미터가 넘는 고개를 다시 굽이굽이 올라가며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황량한 산길이다. 무게를 알 수 없는 중압감이 가슴 가득 밀려온다. 이곳은 인간도 모든 동식물도 살 수 없는 신의 세계다. 속세의 인간이 감히 신의 세계에 잠시 발을 디딘 탓인지 머리가 쪼개질 듯 아프다


- 송판고성 -

   고개를 내려와 한참을 달리니 송판고성이 보인다. 당나라의 문성공주와 티베트인 송찬감보가 만난 곳이다. 당나라와 티베트는 자주 전쟁을 했는데 당나라 황제가 화친의 의도로 자신의 딸 문성공주를 티베트로 시집보냈다고 한다. 성문 앞에는 두 사람이 한 곳을 바라보며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커다란 동상이 있다. 우리도 이 폼을 흉내 내며 여기서 사진을 찍었다.


 성문으로 들어가니 그 당시의 생활하는 모습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재현해 놓았다.


   번갯불에 콩 구어 먹듯 부지런히 보고 다시 버스에 올라 성도로 달렸다. 가다가 또 다시 흰 야크가 있는 휴게소에 들렀다. 여기 들어가면 공짜로 버스 세차를 해주니 기사들이 올 때 갈 때 항상 들리나보다. 기사는 세차해서 좋고, 상인은 물건 팔아 좋고, 야크 주인은 돈 벌어서 좋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온 동네가 다 좋다. 뉘엿뉘엿 해가 지고 날이 저물어가니 야크 타는 사람도 없어 야크 주인은 야크를 철봉에 묶어 놓고 집으로 돌아간다.


   성도에 도착하니 밤 11시가 다 됐다. 트리플 룸이 없다고 혼자 방을 쓰라고 하여 더블베드가 있는 큰 방에서 호사를 누렸다. 그 동안은 동생과 조카 지연이와 함께 셋이서 한 방을 썼었다.

 

성도 ( 111)

- 머리가 나쁘면 팔 다리가 고생 -

   아침 5시에 알람을 맞추고 자다 알람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부스럭부스럭 짐을 정리하고 볼 일을 보아도 사방이 조용하다. 다들 밥 먹으러 갔나하고 6시에 로비로 내려가 레스토랑이 어디냐고 물으니 못 알아듣는다. 손으로 밥 먹는 시늉을 하니 손가락으로 7시에 연단다. 아차! 7시에 식사한다고 했는데 6시인 줄 착각했다. 혼자 자니 이런 실수를 하게 된다. 자고로 머리가 나쁘면 팔 다리가 고생한다더니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 낙산대불 -

    오늘은 낙산대불을 보러갔다. 낙산대불은 TV에서 하도 많이 봐서 안 봐도 눈에 선하다. 유람선을 타러 내려가는 길 가에 예쁜 우산들이 눈에 띤다. 외손녀 송희가 보면 좋아할 것 같다. 근처에 주인도 안 보이고 배 타기 바쁘니 그냥 통과했다.


   그런데 배를 타고 구명조끼를 입은 후 갑판에 올라가 한참 사진을 찍어도 출발할 생각을 안 한다. 가이드에게 왜 출발을 안 하느냐고 물으니 사람이 36명 이상 타야 간단다. 아니 이럴 수가? 시간 되면 가야지 무슨 이런 경우가 있나? 하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으니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한참을 기다려 다른 사람들이 탄 후 배가 출발했다. 10분 정도 가니 거대한 바위산에 부처님 상이 보인다. 산을 통째로 깎아 불상을 만든 것이다. 불상 옆으로는 계단을 만들어 사람들이 부처님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가 뒤로 돌아 반대편 계단으로 내려오게 되어있다.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보인다.


   마음 같아선 우리도 여기를 걸어보고 싶었지만 일정상 유람선에서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했다. 유람선의 갑판 위에는 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받는 사진 기사가 있었는데 갑판의 일부를 막고 장사를 다 한 후 다른 사람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게 길을 열어주었다.

   다시 성도로 돌아오는데 항공사에서 문자가 왔다. 항공기 사정으로 밤 1220분 출발 예정이던 것이 3시간 늦어진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공항에서 날밤 새게 생겼다.

   저녁식사를 한 후 천부촉운쇼를 보러 갔다. 순식간에 얼굴을 바꾸는 변검쇼가 인상적이다. 어떻게 가면이 순간순간 바뀌는지 신기하다. 가이드 말로는 많은 가면을 얇게 얼굴에 붙인 후 한 겹씩 떼어내는 것인데 다른 집안으로 그 비밀이 새어나가는 걸 막기 위해 딸들에게는 그 비법을 전수하지 않고 아들에게만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지적소유권은 상당한 가치를 가진 게 분명하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공항에 오니 밤 11시도 안 됐다. 그래도 예정시간대로 체크인을 해주니 다행이다. 짐을 부치고 가이드와 이별한 후 공항청사 안으로 들어왔다. 청사 안 썰렁한 의자에 누워 잠을 청해보지만 춥기도 하고 자리가 불편해 잠이 오지 않는다

 

   비행기에 빈자리가 있으면 누워서 가려고 일부러 제일 뒤에 탔다. 과연 세 자리가 빈 곳이 있어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비행기 문이 닫힐 때까지 아무도 오지 않는다. 세 자리를 차지하고 누워서 한 잠 잔 후 3번 동생과 교대하려고 생각했는데 인천에 올 때까지 깜빡 잠들고 말았다.

 

집으로 ( 112)

- 다 죽게 생겼나? -

   인천공항에서 나와 지하철을 탔다. 김포에서 9호선으로 갈아탄 후 고속터미널역에서 내리려는데 웬 젊은 여자가 내 캐리어를 번쩍 들어 내려준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7호선으로 갈아탔다. 사가정역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타니 웬 아주머니가 어디 갔다오냐고 한다. 중국 갔다 온다고 하니 마중 나온 사람이 없느냐고 묻는다. 백발의 할망구가 혼자 오는 게 이상했나보다. 자기는 벌어먹고 살기 바쁘고 세금 내기 바빠 여태 해외여행 한 번도 못 갔단다.

이런 사람들이 내는 세금으로 연금 받아 여행 다니는 내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는데 또 들어주려고 한다. 얼른 내가 들고 나왔다. 내가 다 죽게 생겼나? 왜들 이러지?

 

   이번 여행은 불 난 호떡집에 갔다 온 듯 정신없이 다녀왔다. 중국은 정말 인간이 많아도 너무 많다. 어디 가나 사람에 떠밀려 다닌다. 이래서 6.25때도 인해전술을 썼나보다. 그래도 형제자매가 모처럼 함께 한 여행이어서 마냥 행복한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