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16. 8. 22. 요세미티 기행문

아~ 네모네! 2016. 9. 19. 18:13

곰의 집 요세미티

 

아 네모네 이현숙

 

기간 : 2016822~ 94

장소 : 미국 캘리포니아

   요세미티 공원은 18년 전에 한 번 가봤지만 관광만 했었다. 4번 동생이 요세미티 트레킹 가자는 말에 깊이 생각도 안 하고 선뜻 가겠다고 약속했다. 우리 자매는 여섯 명인데 카톡방에서 번호로 부른다. 나는 2번이다. 나중에 들으니 야영을 하며 존 뮤어 트레일을 걷는다는 것이다. 짐도 잘 못 지고 걷는 것도 시원찮은 내가 무슨 생각으로 가겠다고 했는지 걱정이 태산이다.

 

샌프란시스코 ( 822)

- A 학점인가? -

   오후에 인천공항을 출발했지만 같은 날 오전에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렸다. 날짜 변경선이란 무엇인지 시간도 거꾸로 돌린다. 입국 심사를 받는데 우리 자매 세 명은 함께 세관 신고서를 쓰고 4번 동생 남편은 혼자 따로 썼다. 우리는 아무 일 없이 잘 통과했는데 제부는 한참 시간이 걸린다. 나와서 왜 그러냐고 했더니 어디 가냐고 해서 요세미티 트레킹 간다고 했더니 세관신고서에 붉은 색연필로 A라고 쓰고 붉은 줄을 쭉 그어놨단다. 나오려고 하니 우리 셋은 그냥 나가라고 하는데 제부는 엑스레이 통과를 다시 받는 곳으로 보낸다.

   밖에 나와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으니 배낭과 캐리어를 모두 열어 검사를 했단다. 트레킹 간다고 하니 음식물을 가져왔을까봐 검사를 한 것 같다고 한다. 사실 음식물이 잔뜩 있었는데 모두 여자들 짐에 있어서 제부 짐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다 빼앗길 뻔 했는데 하늘이 도왔다. A면 무조건 좋은 건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다.

   렌터카 사무실에 들러 차를 빌려 모든 짐을 실었다.

서니베일에 있는 한국마켓에 들러 김치와 어묵, 쌀 등 필요한 물건을 잔뜩 산 후 메르세드에 있는 여관에 짐을 풀었다.


투울룸 메도우 ( 823)

- 불탄다고? -

   요세미티 벨리에 있는 공원 입구에서 1인당 80달러씩 주고 공원 입장권을 샀다. 1년 동안 어느 국립공원이나 다 들어갈 수 있는 연간 회원권이다. 비지터 센터에 들러 입산 신고를 한 후 주의사항을 듣고 곰 통도 빌렸다.

  벽에는 야영 시 주의할 사항이 그림까지 그려 자세히 설명해 놨다. 모든 음식물과 화장품, 약품, 치약까지 모두 곰 통에 보관하고 곰 통은 텐트에서 30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두라고 한다. 설거지도 물가에서 30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 하고, 큰일을 볼 때는 물가에서 30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땅을 깊이 파고 일을 본 후 흙으로 덮으라고 되어있다. 트레킹을 시작하기도 전에 잔뜩 겁이 난다.

   모든 절차를 마치고 오늘의 숙박지 투울룸 메도우를 향해 출발했다. 한참 달리는데 차 앞에 경고 메시지가 뜬다. coolantlevel을 체크하라는 것이다. 냉각수가 모자라는가보다. 더 달리다가 한 공원 관리인이 보이기에 이런 메시지가 떴는데 투울룸 메도우에 정비소가 있느냐고 물으니 없다고 하며 차의 본네트를 열려고 해도 열리지를 않는다. 제부가 차 안에 있는 매뉴얼 책자를 꺼내니 이 할아버지가 자기 차에서 돋보기를 꺼내다가 열심히 읽어본다. 가까스로 열기는 열었는데 냉각수는 많이 들어있다. 그냥 가려고 했지만 할아버지가 차에서 불이 날지도 모르니 빨리 도로 내려가서 제일 가까운 크레인 플랫 정비소로 가란다. 자기 일도 아닌데 열심히 읽어보고 가르쳐주는 태도가 존경스럽다

왔던 길을 도로 내려가 정비소에 갔지만 거기서도 알 수가 없다고 요세미티 밸리에 있는 가라지 정비소로 가보란다. 이거 고치다간 일정에 차질이 생길 것 같아 가라지 앞 주차장에 있는 고정된 곰 통에 음식물의 일부를 넣어두고 5시나 되어서 셔틀버스를 타고 투울롬 메도우로 향했다.

  2500미터 고지에 있는 투울룸 메도우에 도착하자 벌써 해가 지려하고 날씨가 쌀쌀하다. 이곳 캠프장은 1인당 1박에 6달러씩 내야한다. 텐트를 치고 허가 받은 종이에 돈을 넣어 텐트에 걸어두었다. 레인저가 밤에 걷어가는 줄 알았더니 야영장에 돈과 허가서를 넣는 통이 마련돼 있다.  

  오리털 잠바까지 껴입고 늦은 저녁을 해먹었다. 식사 후 하늘을 보니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는 듯 하늘에 별이 초롱초롱하다. 밤하늘이 이토록 휘황찬란한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선라이즈 캠프 ( 824)

- 개씨부랄 호수? -

   아침에 부지런히 식사를 마치고 23일 식량만 이동식 곰 통에 넣고 나머지는 캠프장에 고정된 곰 통에 넣어 두었다. 제부는 텐트와 곰 통, 4번 동생은 텐트, 5번 동생도 곰 통 하나를 졌는데 나는 노약자라고 내 침낭과 옷, 간식만 넣고 출발했다. 그래도 어찌나 무거운지 걸음이 천근만근이다. 오늘은 캐씨드랄 호수를 지나 캐씨드랄 패스를 넘어 썬라이즈 캠프장까지 가야한다. 구렁이 담 넘듯 느릿느릿 허우적허우적~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고개를 넘으니 캐씨드랄 피크가 보인다. 처음에는 캐씨드랄이 뭔지 몰라 개씨부랄이라고 외웠는데 성당의 첨탑처럼 뾰족한 봉우리를 보자 이해가 간다. 성당(cathedral) 봉우리란 뜻이다.

그곳을 지나자 캐씨드랄 호수가 나타난다. 여기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호숫가에 짐을 풀고 호숫물을 떠다가 라면을 끓였다. 다들 지쳐서 라면이 끓는 동안 바위 위에 널브러져 누워서 쉬었다. 다 끓었을 것 같아 가보니 5번 동생이 가스 냄새가 난다고 한다. 바람막이가 막혀 과열되는 바람에 버너가 녹아버렸다. 이것 참 큰일 났네 소리가 절로 난다.

   일단 걱정은 접어두고 그림 같은 호숫가에서 눈빛 찬란한 봉우리를 바라보며 먹는 라면은 그야말로 산해진미 부럽지 않다. 호숫물에 비친 캐씨드랄 봉은 환상 그 자체다.

  물가에서 코 덮개를 한 아저씨를 만났는데 여기가 어떠냐고 묻는다. 기막히다고 하니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햇볕에 코가 타면 껍질이 벗어지니 코만 까만 덮개로 덮은 모양이 좀 우습기는 하다.

다시 짐을 꾸려 걷고 또 걷는다. 머릿속이 텅 비는 듯하다. 무념무상으로 걷다보니 웬 말떼가 온다. 썬라이즈 캠프장까지 짐을 실어 나르는 모양이다.

  캐시드랄 패스 위에서 바라보는 시에라네바다 산맥은 이승이 아닌 듯 몽환적이다. 제부는 고개에서 다시 만난 코마개 아저씨에게 이것저것 물으며 우리가 가야할 곳의 정보를 얻는다. 그 사람이 어디 어디 갈 거냐고 물으니 제부가 하프돔과 클라우즈 레스트에 갈 거라고 한다. 그 사람은 우리 세 자매를 보며 모두 같이 갈 거냐고 묻는다. 머리는 허연데다 구부정한 내 꼴을 보니 걱정이 되나보다.

  해가 서편으로 기울 즈음 썬라이즈 캠프장에 도착했다. 백패커들이 텐트를 칠 수 있는 곳을 찾아 두 개의 텐트를 쳤다. 이곳은 캠프장에서 설치해 놓은 고정 텐트도 있고 카페도 있다. 그래서 말이 음식물을 실어 나르나보다. 여기는 백패커들에게는 돈을 받지 않는다. 무료로 물도 쓰고 화장실도 쓴다.

   물주머니에 물을 받으러 가보니 식수 기준에 맞지 않으니까 3분에서 5분 정도 끓여서 먹으라고 되어있다. 물을 길어다가 밥을 하는데 버너 하나가 망가져 작은 버너로 하려니 균형이 잘 맞지 않아 엎어버렸다. 쌀이 땅바닥에 쏟아져 엉망이 되었다. 남은 쌀로만 밥을 짓는데 불이 약해 하세월이다.

마침 옆에 텐트 친 남자가 우리 MSR 텐트를 보고는 자기가 그 회사에 근무했다고 반가워한다. 지금은 은퇴하고 오클랜드에 산다고 하였다. 제부가 우리의 녹아버린 버너를 보여주며 버너 좀 빌려줄 수 있냐고 했더니 흔쾌히 자기 버너를 갖다 준다. 그 덕에 밥과 된장찌개를 끓여 겨우 허기를 면했다. 원체 고도가 높아 물이 낮은 온도에서 끓는 바람에 코펠 위에 돌을 얹어 놓아도 밥이 설어서 먹기가 힘들다. 그래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곰 통을 깔고 앉아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오늘도 오리털 잠바까지 잔뜩 껴입고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하루 종일 16km를 걸었더니 온몸이 얼얼한 게 내 몸 같지 않다.

 

썬라이즈 크릭 ( 825)

- 초대받지 않은 손님 -

   이름이 썬라이즈 캠프이니 일출을 봐야할 것 같다. 썬라이즈 캠프 앞 쪽 바위에 올라 일출을 기다린다. 앞산에서 떠오르는 해는 뒷산을 먼저 비추고 서서히 떠오른다. 오리털 파카까지 잔뜩 껴입고 오매불망 사랑하는 임을 기다리듯 서 있다. 매일 보는 일출이지만 볼 때마다 장엄하고 경이롭다. 한 생명이 태어나는 듯하다.

   어제 밤부터 불려둔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해결하고 또 짐을 지고 길을 나선다.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 있나 하고 사무실 앞에서 어른거리는데 한 여자가 나오며 “TRASH?” 하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자기를 달란다. 자기가 갖다 버려주겠단다. 돈도 안 내고 텐트 쳤는데 쓰레기까지 버려주겠다니 황송하기 그지없다.

   얼마를 내려오다가 제부가 뒤로 빠지며 먼저 가라고 한다. 볼일을 보려나보다 하며 한참을 내려와도 제부가 오지 않는다. 산불이 나서 새카맣게 변한 나무들이 있는 넓은 초원에서 세 자매가 사진을 찍으며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어제 끓여 먹으라는 물을 그냥 먹어서 배탈이 난 것 같아 4번 동생에게 설사약을 주며 남편 오면 먹이라고 하고 5번 동생과 함께 먼저 길을 나섰다.

   산불이 얼마나 크게 났는지 한참을 내려와도 숯같이 새카만 나무들이 계속 이어진다. 공기 중에 산소가 많아지면 산불이 나서 산소가 줄어들고 이산화탄소가 늘어난다. 이산화탄소가 많아지면 나무들이 광합성을 많이 해서 산소를 만들어낸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구의 대기는 일정한 균형을 이룬다. 어쩌면 지구는 스스로 알아서 조절하는 살아있는 생물인지도 모른다.

  조금 더 내려오니 냇물이 보인다. 며칠 만에 발을 씻으니 날아갈 듯 상쾌하다. 냇가에 핀 분홍 바늘꽃이 유난히 아름답다. 물이 있으니 온갖 야생화가 피어나 천상의 정원 같다. 산불로 새카맣게 변한 숲에도 이렇게 푸른 풀과 꽃들이 소생하는 걸 보면 자연의 치유력은 생각할수록 경이롭다.

 뙤약볕에서는 살이 익을 듯 따가운데 나무 그늘에만 들어가면 순간적으로 시원한 공기가 감싼다. 나무가 살 수 없는 곳은 어떤 동물도, 인간도 살 수 없다.

   아무리 내려가도 4번 동생과 제부가 오지 않아 오늘 하프돔 가기는 틀렸다고 생각하며 걷는데 드디어 동생과 제부가 나타난다. 배가 아파서 이렇게 늦었냐고, 약은 먹었냐고 물으니 배탈이 난 게 아니고 고개에서 만난 아저씨와 얘기하다가 썬글라스를 바위 위에 두고 와서 다시 갔다 왔다는 것이다. 왕복 6km를 더 걸었으니 시간이 이렇게 많이 걸린 것이다. 그래도 썬글라스를 다시 찾아 다행이고 설사가 아니라 더 다행이라고 위안하며 썬라이즈 크릭(sunrise creek) 근처에 텐트를 쳤다.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곳이라 야영지로 적합하다. 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큰 짐을 모두 텐트에 넣은 후 하프돔을 향해 출발했다.

   냇가에서 물을 받고 출발하려는데 제부가 저기를 보란다. 가리키는 쪽을 올려다보니 커다란 갈색 곰이 이리저리 어슬렁거린다. 사람을 많이 봐서 그런지 우리에게는 아무 관심도 없는 듯하다. 혼자 왔다 갔다 하더니 두 발로 나무를 잡고 척 척 올라간다. 발톱이 날카로워 나무를 찍으며 올라가는 것 같다. 그래서 곰을 만나면 절대 나무로 올라가지 말라고 하나보다. 사실 여기는 곰의 집이다. 우리는 초대 받지 않은 손님이다.

   요세미티라는 말도 곰이라는 인디언 말이라고 한다. 한 백인이 이곳에 와서 인디언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다. 인디언은 그 사람 뒤에 곰이 있는 걸 보고 요세미티 요세미티~” 하며 소리쳤는데 그 사람은 그것도 모르고 아하~ 여기 이름이 요세미티로구나 생각하고 이렇게 이름 붙였다는 것이다.

 

- 하프돔 -

   써브 돔의 지그재그 길을 마냥 오른 후 거대한 하프돔 아래 서니 두 개의 어마어마한 쇠줄이 우리를 압도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쇠줄에는 오후 4시가 넘어서 그런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책에서 본 사진에는 두 줄 모두 사람들이 어찌나 많이 달라붙어 있는지 이사 가는 개미떼 같았는데 우리 밖에 없으니 안심이 된다. 제대로 못 올라가면 뒷사람에게 얼마나 미안하겠냐 말이다. 저녁에 올라가야 막히지 않고 올라간다는 제부의 생각이 딱 맞았다.

   바위 밑에는 쇠줄을 잡을 때 쓰라고 다른 사람들이 두고 간 장갑이 즐비하다. 스틱을 거기에 두고 장갑을 단단히 낀 후 쇠줄에 매달렸다.

  사람들이 어찌나 밟았는지 바위가 미끌미끌하여 오르기가 힘들다. 올라갈수록 수직에 가까운 암벽에 매달리려니 손에서 쥐가 날 것 같다. 한참씩 쉬었다가 오르기를 반복하는데 앞장 선 4번 동생은 다람쥐 모양 잘도 올라간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쇠줄도 어느 새 끝이 보이고 하프돔에 올라서니 넓은 축구장만한 바위가 나타난다. 그 위에 서니 그야말로 감개가 무량하다. 하프돔이란 감히 내가 오를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내가 무슨 복이 있어 여기에 섰는지, 꿈인지 생시인지 그저 가슴이 벅차오른다. 사람들이 농담으로 좋은 일이 있으면 전생에 나라를 구했냐고 하더니 아마 나도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보다(ㅋ ㅋ 착각은 자유?). 그렇지 않고서야 지공선사(지하철 공짜) 경로가 어찌 여기에 설 수 있단 말인가? 제부가 6개월 전부터 존 뮤어 트레일 허가 받고 하프돔 오를 수 있는 허가도 받아 여기까지 데려와 준 덕이다.

   하프돔은 하루에 300명만 오를 수 있는데 그중의 20% 60명은 존 뮤어 트레일 허가 받은 사람에게 준다고 한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르고 그저 가자고 하니 따라 나섰을 뿐이니 순전히 날로 먹은 거다. 모든 계획 세우고 비행기, 숙소, 차 렌트까지 예약하고, 운전기사에, 가이드에, 사진 찍사에, 포터까지 해주는 제부가 고마울 뿐이다. 하프돔 꼭대기에서 내일 오를 클라우즈 레스트를 배경으로 온갖 생 폼을 잡으며 사진을 찍었다.

  새의 부리처럼 생긴 뜀바위에서 묘기 대행진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고 나니 두 남자가 올라온다.

  우리가 그 사람들이 뜀바위에 올라 있는 사진을 찍어주니 우리 사진도 찍어주겠단다. 모처럼 네 명이 다 함께 사진을 찍었다.


  하프돔(half dome)은 말 그대로 돔구장을 반으로 뚝 잘라 놓은 것 같다. 어떻게 이런 지형이 생겼는지 생각할수록 자연의 어마어마한 위력에 압도당한다.

오늘은 18km를 걸었다. 연일 강행군이다.

 

구름도 쉬어 넘는 곳 ( 826)

- 클라우즈 레스트 -

   아침 식사 전에 클라우즈 레스트(clouds rest)에 오르기로 했다. 클라우즈 레스트는 구름도 쉬어가는 간다는 뜻이니 얼마나 높을까? 3000m가 넘는다고 하니 지레 겁을 먹고 힘들면 중간에 되돌아오겠다고 생각하며 길을 나섰다. 어제 하프돔에서 바라봤을 때 바위투성이인 클라우즈 레스트 봉을 보며 언감생심 정상에 오를 꿈도 못 꿨다.

   그런데 길이 지그재그로 완만하게 이어지는게 걸을 만했다. 조금 오르자 어제 오른 하프돔이 보인다. 이곳에서 보는 하프돔은 말 그대로 돔의 반쪽이다.

  정상에 가까울수록 산소가 부족해서 그런지 어질어질하다.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하며 아무 생각 없이 걸음을 옮기는데 정상~”하며 외치는 4번 동생의 목소리가 들린다.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하여 바윗길을 오르니 일시에 전망이 탁 트이며 그야말로 일망무제의 시에라네바다 산맥이 끝없이 이어진다. 인간의 언어로는 감히 표현할 수 없는 이 광경에 가슴이 터질 듯하다.

구름도 쉬어간다는 이곳에 구름은 다 어디 가고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만 펼쳐져 있다.

  사방을 돌아보며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하산 길로 접어들었다. 이번 산행에서는 두 번의 보너스를 받는 기분이다. 어제의 하프 돔도 오늘의 클라우즈 레스트도 감히 넘보지 못한 곳인데 이렇게 오르니 그야말로 감개무량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인 가보다. 낮에 올랐으면 뜨거운 햇볕에 지쳐 정상까지 오를 수 없었을 텐데 새벽부터 오르니 시원하여 한결 쉽게 오를 수 있었다. 하프 돔을 몇 번씩 바라보며 텐트로 돌아왔다.

  늦은 아침을 해먹고 요세미티 밸리를 향해 출발했다. 하산 길에 만난 네바다 폭포는 여름 가뭄에도 시원한 물줄기를 내뿜고 있었다. 더 내려오니 버널 폭포다. 물보라에 무지개까지 보이니 환상적이다.

  버널 폭포를 지나 계속 내려오니 다리가 마비되어 무감각하다. 무릎은 고사하고 고관절까지 통증을 호소한다. 무릎에는 파스를 붙이고 진통제와 근육 이완제까지 먹어가며 강행군을 하고 있으니 온몸의 뼈마디가 아우성을 치며 살려달라고 호소한다. 무자비한 주인을 만난 내 다리가 불쌍하다. 재수 더럽게 없어서 이런 주인을 만났다고 하는 것 같다.

   그래도 길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드디어 요세미티 밸리 종착점이 나타난다. 이정표를 보니 여기서 투울룸 메도우까지 44km라고 쓰여 있다. 여기에 하프 돔과 클라우즈 레스트 갔다 온 걸 포함하면 총 57km를 걸었다. 오늘 걸은 것만 23km이니 머리에 털 나고 최고로 많이 걸었다. 무사히 23일의 일정을 마치고 나니 나 자신에게 상을 주고 싶을 만큼 뿌듯함이 몰려온다.

  해피 아일즈 브릿지를 건너와 셔틀버스를 타고 비지터 센터 근처 가라지 앞 주차장에 내렸다. 3일 전에 넣어둔 음식물을 곰 통에서 꺼내 우리 차에 실었다. 오늘은 하우스키핑 텐트에서 자는 날이다. 공원 측에서 설치해 놓은 고정 텐트인데 전기도 들어오고 엉성하지만 침대도 있다. 그래도 여기는 공동 샤워장도 있고 런더리도 있어 빨래도 할 수 있으니 궁전에 온 듯하다.

마트에 들러 맥주도 사고 저장해 두었던 음식도 꺼내 저녁상을 차리니 진수성찬을 대한 듯 푸짐하다.

 

요세미티 폭포 ( 827)

- 무늬만 폭포 -

   아침 식사를 준비하려고 고정 곰 통에서 음식을 꺼내 울타리 안 쪽 탁자에 놓고 더 꺼내려고 곰 통으로 가니 오소리 한 마리가 곰 통 앞에 와 있다. 곰 통을 연지 1분도 안 되었는데 그새 냄새를 맡고 온 것이다. 음식물을 꺼내고 얼른 문을 닫아걸었다. 이래서 모든 음식물은 곰 통에 넣으라고 했나보다.

   식사 후 모든 음식을 다시 곰 통에 넣은 후 요세미티 폭포를 향해 출발했다. 로우 폭포(LOW FALL)도 물이 전혀 없는 마른 폭포다. 그래도 관광객들이 줄지어 몰려와 사진을 찍고 있다.

   조금 더 가니 현지인들이 암벽 등반 연습을 하고 있다. 플라스틱 바가지 모자 쓰고 안전벨트에 쇠로 된 비너를 줄줄이 달고 바위에 매달린 사람들을 보니 참 인간은 알 수 없는 동물이란 생각이 든다. 바위에 매달린다고 떡이 나오나 밥이 나오나 다른 동물이 보면 엄청 미련한 동물이라 생각할 거다.

   윗 폭포(UPPER FALL)로 오르는 길에서는 또 하프 돔이 보인다. 하프 돔을 위에서 보고 뒤에서 보고 옆에서 보고 매일 본다. 보면 볼수록 멋지다.

  구불구불 지그재그 길을 뙤약볕 아래서 걷자니 다리가 천근만근이다. 미국인 형제가 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걷다가 나를 보고 “Very nice pace.”란다. 용기를 주느라고 하는 소리지 내가 생각해도 이건 걸어가는 건지 제자리걸음인지 분간이 안 된다. 몇 번을 만나더니 날 보고 “Very good pace.” 라고 impressive하단다. 머리 허연 노인네가 포기하지 않고 꾸역꾸역 올라오는 게 인상적이었나 보다. 그래도 한 굽이 돌 때마다 신천지가 안전에 전개되니 그 경치에 이끌려 걸음을 계속한다.

  내 생전에 끝나지 않을 듯 이어지던 길이 드디어 끝나고 요세미티 폭포 정상이다. 물이 없어 올라올 때는 어떤 게 폭포인지 알 수 없더니 정상에는 선녀탕 같은 물웅덩이가 두 개나 있다. 이 물이 흘러 넘쳐야 폭포가 흐를 텐데 넘치질 않으니 폭포가 사라진 모양이다.

    전망대에서 요세미티 밸리를 바라보며 가져간 주먹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하산 길에 올랐다. 하산 길에 다시 한 번 하프 돔을 바라보며 그 매력에 빠져든다.


- 글레이서 포인트 -

   주차장에 내려와 차를 타고 글레이서 포인트로 향했다. 해 떨어지기 전에 도착하려고 서둘러 차를 몰고 가는데 다른 차들도 모두 그쪽을 향해 달린다. 포인트에 도착하지도 못했는데 주차장에 들어가려는 차들이 어찌나 많은지 차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이러다간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해가 지게 생겼다. 제부는 아무래도 안 되겠으니 우리 먼저 차에서 내려 걸어가란다. 자기는 천천히 주차하고 오겠단다. 우리는 달리듯 전망대로 향했다. 전망대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지는 해를 받아 붉게 타오르는 하프 돔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우리 세 자매도 마구 셔터를 눌러댔다. 해 떨어지기 전에 제부가 와야 하는데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마지막 햇살이 한 뼘 남아있을 때 제부가 나타난다. 겨우 한 컷 찍자 해가 진다. 이 지점이 하프 돔을 가장 가까이 힘들이지 않고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름이 왜 글레이서(glacier)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빙하 포인트란 뜻이니 옛날에는 이곳까지 빙하가 덮여 있었나보다.

   자세한 건 모르겠고 눈에 뵈는 게 없으니 일정을 끝내고 다시 하우스키핑 텐트로 돌아와 축배를 들었다. 작은 마트가 있어 소고기도 사고 맥주도 사서 마시며 축하 파티를 벌였다.

 

맘모스 마운틴 리조트 ( 828)

- 모노 레이크 -

   맘모스 마운틴 리조트를 향해 가는 길에 인요(INYO) 국립공원에 있는 모노 레이크(mono lake)에 들렀는데 mono는 인디언 말로 파리라는 뜻이다. 호수 물에는 과연 까만 파리가 바글바글 살고 있다. 모노 호수는 이스라엘의 사해처럼 백만 년 전부터 물이 나가지 않고 고여 있다. 고농도의 염분을 포함하고 있어 다른 생물은 살 수 없다고 한다. 호수 속의 알칼리성 염분과 석회질 물질이 반응하여 석회 기둥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투파(TUFA)라고 한다. 그 모양이 어찌나 기기묘묘한지 가히 신의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세 시간 가량 달려 맘모스 마운틴 리조트에 도착하니 커다란 맘모스 상이 우릴 맞는다.

  여기서 셔틀 버스를 타고 레드 메도우로 올라갔다. 레드 메도우는 존 뮤어 트레일의 중간 기착지인데 작은 가게도 있어서 트레일을 걷는 사람들이 물건도 공급 받고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 레인보우 폭포 트레일을 걸었는데 레인 보우 폭포에 무지개는 간데없고 폭포 아래서 수영하는 사람들만 보였다.

  조금 더 내려가면 로우 폭포가 있는데 규모는 작지만 깊지 않아 물놀이하기 좋게 생겼다. 여기서 발도 씻고 사진도 찍고 쉬는데 한 여자가 우리에게 오더니 밴드가 있느냐고 묻는다. 처음에는 무슨 록 밴드인가 하다가 혹시 대일밴드인가 하고 꺼내서 보여주며 이거냐고 물으니 맞는다고 “Thank so much!” 하며 함박웃음을 웃는다. 밴드 하나로 이렇게 큰 기쁨을 줄 수 있으니 인간의 행복이란 참 별 게 아니구나 싶다.


- 악마 기둥? -

   다시 올라와 데블스 포스트파일(DEVILS POSTPILE) 쪽으로 갔다. 데블스는 악마라는 뜻이고 포스트는 기둥, 파일은 쌓인 것을 말하니 악마 기둥이 쌓였다는 뜻인가 보다. 가까이 가보니 거대한 주상절리가 우리를 압도한다. 주상절리 밑에는 깨진 돌들이 즐비하다. 주상절리가 기둥모양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나보다. 그런데 여기 왜 악마들이 붙었는지 모르겠다. 화산 활동이 있을 때 생기니까 그 환경이 악마 같아서 그런가? 아니면 검은색 현무암 기둥들이 잔뜩 서 있는 게 악마처럼 보여서 그런가? 그건 잘 모르겠고 또 여기로 기어 올라가 이 폼 저 폼 잡으며 사진을 찍었다.

  실컷 눈 호강을 하고 맘모스 레이크 더 빌리지 호텔에 들어오니 이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호화판이다. 주방에는 모든 요리기구가 즐비하고 식기세척기에, 전자레인지에 온갖 그릇들까지 웬만한 집 주방 뺨치게 잘 되어있다. 그동안 텐트에서만 살다가 오랜만에 이런 곳에 오니 황송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마트에 들러 소고기와 야채, 두부, 와인까지 푸짐하게 사다가 잔치를 벌였다.

  그동안 맨땅 아니면 여관 화장실에서 옹색하게 요리를 하다가 커다란 싱크대에서 폼 나게 요리해서 멋진 식탁에 앉아 먹으니 오랜만에 인간답게 식사하는 기분이다. 화장실에는 수건으로 맘모스 모양을 만들어 놓았는데 풀기가 아깝게 잘 만들었다.


세콰이어 국립공원 ( 829)

- 프레즈노 공항 -

   맘모스 레이크 호텔을 출발하여 프레즈노로 향했다. 가다가 존 뮤어의 산들이 부른다는 안내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번에 존 뮤어 트레일의 일부를 걸은 기념으로 말이다. 앞으로 산이 얼마나 더 나를 불러줄지 모르겠다. 산이 불러도 가지 못할 형편이 되면 얼마나 서글플까?

  며칠 전부터 냉각수 체크하라는 메시지를 무시하고 프레즈노까지 왔다. 렌트카 회사에 전화하니 요세미티에는 자기네 회사가 없고 프레즈노 공항 사무실에 가서 차를 바꾸라고 했기 때문이다.

공항에 도착하여 허츠 렌트카 사무실에 들러 사정을 얘기하니 차를 바꿔주기는 하는데 승용차라서 도저히 우리 짐을 다 실을 수 없다. 큰 차는 없다고 하여 정비소에 차를 맡기고 공항 로비에서 마냥 기다렸다. 의자에 앉아 삶아온 달걀도 먹고 다른 간식으로 허기를 면했다.

   겨우 해 지기 전에 세콰이어 공원에 도착해 비지터 센터에 신고를 하고 캠프 그라운드에 텐트를 쳤다. 캠프장에는 일일이 번호가 매겨져 있고 각 장소마다 고정된 곰 통 하나에, 주차할 공간도 하나씩 마련되어있다. 제부가 한국에서 미리 예약한 장소다. 화장실도 가깝고 수도도 가까운 곳으로 했다는 것이다.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 미리 주변 장소의 시설까지 보고 예약한다는 것이 생각할수록 놀랍다. 여기도 마트와 샤워실, 런더리까지 구비되어 있어 편리하다.


- 캠프 화이어 -

   텐트 옆 식탁에 상을 차리고 맥주를 마시며 푸짐한 식사를 마치고 캠프 화이어를 하였다. 제부가 주변을 돌아다니며 마른 가지를 주워와 불을 피웠는데 각 텐트 옆에 불을 피울 수 있게 돌로 화덕을 만들어 놓았다. 돌 위에는 석쇠까지 구비되어 고기나 소시지를 구워 먹을 수도 있다.

 

세콰이어 킹스캐년 국립공원 ( 830)

- 장군 나무들 -

아침 식사 전에 모로 락(MORO ROCK)에 올랐다. 어제 공원으로 들어올 때 본 거대한 바위산이다. 모로가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는데 거대한 하나의 바위로 이루어진 산이다. 처음에는 가파른 바위에 주눅이 들어 스틱까지 짚고 출발했는데 길이 지그재그로 되어있고 철 난간이 잘 되어 있어 안전하다. 주차장에서 15분 정도 오르니 정상이다. 정상에도 철 난간이 있고 주변 산들에 대한 안내도가 있다.

  내려오면서 바라보는 경치도 일품이다. 조금만 일찍 왔더라면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기막힌 일출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못내 아쉽다.

  모로 락에서 내려와 오토 록(AUTO LOG)를 보러갔다. 안내판에는 밑의 지름이 21피트(7m)라고 쓰여 있다. 거대한 나무 위로 자동차도 갈 수 있을 정도다. 보면 볼수록 어마어마하다.

  오토 록에서 내려와 세콰이어 나무를 보러갔다. 자이언트 포리스트 뮤지엄 앞에 있는 센티널 세콰이어 나무를 보러갔다.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모양이 이름대로 씩씩한 파수꾼을 닮았다.

  여기서 빅 트리 트레일을 따라 걸었다. 이름 그대로 큰 나무들이 태양을 경배하듯 하늘을 향해 뻗어있다. 습지 가장자리로 데크 길이 아름답게 이어졌다.

  그 외에도 어찌나 큰 나무들이 많은지 웬만한 것은 사람 열 명이 감싸기도 힘들 것 같다.

  다시 나와 이번에는 셔먼 트리 트레일 쪽으로 갔다. 셔먼은 남북 전쟁 때 북군의 장군 이름이다. 이곳에서도 가장 큰 이 나무에 셔먼 장군의 이름을 붙인 걸 보면 그가 미국인에게 얼마나 존경과 사랑을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안내판에는 이 나무의 수령은 2200, 부피는 1487m³라고 쓰여 있다. 부피로 가장 큰 나무라고 한다.

  다른 나무뿌리들도 어찌나 큰지 집채만 하다. 우리 세 자매는 기회만 있으면 기어 올라가 사진을 찍는다.

  그 밖에도 맥킨리 나무, 대통령 나무, 리 장군 나무도 있다. 우리나라 이씨 성을 가진 사람도 여기서 장군이 되었나보다.

  메타세콰이어는 세콰이어와 다르며 성장하면 25~30m 정도 자란다. 발견자인 시게루 박사가 세콰이어를 닮았다고 메타세콰이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성장속도가 빨라 가로수로 많이 심는다.

우리나라 담양의 메타세콰이어 길도 유명하다. 세콰이어는 북미원주민 시쿠워이아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고 한다. 미국의 서해안에 자생하는데 100m 넘는 초대형 나무도 있지만 보통은 80m정도까지 자란다.

 

- 왕의 계곡 -

   세콰이어 숲에서 삼림욕을 실컷 하고 오후에는 킹스캐년 국립공원으로 갔다. 왜 왕이란 이름이 붙었는지 기대가 크다.

  구불구불 산길을 한 없이 달리는데 도대체 이 길이 어디로 통하는지 되돌아 나올 수나 있는지 걱정된다. 산이 어찌나 삭막한지 나무도 없고 황량 그 자체다. 여기에 왜 왕이란 이름이 붙었는지 모르겠다. 고개를 넘어 한참을 달리니 도로 끝이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 곳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짧은 트레일 하나를 걷기로 했다. 햇빛은 강렬한데 그늘도 별로 없는 길을 걸으려니 산채로 바베큐가 되게 생겼다. 헉 헉 대며 걷는데 웬 말떼가 나타난다. 안쪽에 마을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2.2km를 가서 다리를 건너 되돌아 왔다. 그래도 돌아오는 길은 작은 시내를 끼고 걸으니 걸을 만하다. 물 색깔이 어찌나 고운지 왕이 쉬어갈만하다.

이렇게 삭막한 지형에 이런 시내가 있으리라고는 상상을 못했다. 냇물 속에서 수영하며 노는 사람들이 보인다.

  험한 고개를 넘고 넘어 다시 우리의 텐트로 돌아왔다. 오늘도 마트에 들러 맥주와 피자를 사왔다. 오늘도 캠프 화이어를 하려고 제부가 주머니를 들고 나서자 5번 동생이 뭣 하러 멀리 가느냐고 바로 위쪽 텐트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끼를 빌려 썩은 나무를 패오자고 한다. 영어로 도끼가 뭐냐, 빌려달라가 뭐냐 하고 묻더니 두 단어 겨우 외어 가지고 위쪽 텐트로 간다. 말이 잘 안 통했는지 도끼로 내려찍는 시늉을 하자 금방 알고 빌려준다. 나중에 보니 도끼가 아니고 못 뽑는 망치란다. 이걸로 푸석푸석 마른 나무를 뜯어내니 금방 한 아름의 땔감이 생긴다. 제부나 나는 용기가 없어서 말을 못 붙이는데 5번 동생이 용기 최고다. 용기 있는 사람이 영어 제일 잘 하는 사람이다.

   우리 위쪽 텐트에는 부부와 친정어머니, 아들 이렇게 3대가 같이 왔다. 부인은 수시로 나와서 담배를 피운다. 그래서 우리는 그 가족을 골초 가족이라 이름 지었다. 아래쪽에는 중국인으로 보이는 남자와 서양여자 부부가 텐트를 쳤는데 남자는 몇 시간씩 밖에 나와서 요리를 하고 여자는 식탁에 음식을 다 차려 놓은 후에 나와서 먹기만 하고 쏙 들어간다. 그래서 우리는 이 가족을 머슴 가족이라 불렀다. 중국 남자들은 집에서도 요리를 도맡아 한다더니 나와서도 다 하는 것 같다.

   나는 동생이 뜯어 놓은 나무 조각들을 비닐 주머니에 담아 우리 텐트 화덕 옆에 쌓아 놓았다. 제부는 한참이 지난 후 잔 가지들을 모아 가지고 나타난다. 오늘도 캠프 화이어를 하며 하루를 마감했다.

  이곳은 샤워장 사용료를 따로 받는다. 3분에 1달러다. 25센트 동전을 바꾸어 가지고 줄을 서 있는데 현지인 여자 두 명이 함께 들어간다. 그거 좋은 생각이다 싶어 4번 동생과 나도 같이 한 샤워실로 들어가 한 명이 비누질 할 때 한 명이 헹구니 6분 만에 둘 다 끝났다. 머리 잘 굴리면 돈도 절약된다.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 ( 831)

- 줄리아가 살던 곳 -

   세콰이어 국립공원을 떠나며 공원 표지판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인디언 추장을 그린 예쁜 표지판이다.

  오늘은 세콰이어 공원에서 몬트레이까지 7시간을 달리는 날이다. 해변 길을 달리다가 바다코끼리가 많다는 곳에 멈췄다.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보니 과연 수많은 바다코끼리가 모래밭에 널브러져 있다. 일광욕을 하는지 잠을 자는지 알 수 없는데 가끔 지느러미로 모래를 끼얹는 동작이 아니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지경이다.

  더 달리다가 아치형으로 된 다리가 보이는 곳에 섰다.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아름답기 그지없다. 1932년에 만들어진 BIXBY CREEK BRIDGE. 아직도 견고하여 100년은 더 갈 듯하다.

  이 다리를 건너 줄리아 화이퍼 번즈 주립공원으로 들어갔다. 해변가에 있는 아름다운 공원인데 바다로 떨어지는 폭포가 인상적이다.

  이곳은 줄리아 화이퍼 번즈라는 여인이 생후 10개월 되었을 때 부모와 함께 들어와 살던 곳이다. 펠톤 휠이라는 발전기도 있었는데 계곡의 물을 끌어들여 전기를 생산했다고 한다.

 

- 가라파타(GARRAPATA) 공원 -

제부가 줄리아 화이퍼 번즈 공원 관리인에게 몬트레이 가는 길에 어디가 볼만하냐고 물으니 가라파타 주립공원이 괜찮다고 했단다. 이곳을 향해 가는데 아무리 가도 나타나지 않는다. 몬트레이를 거의 다 가도 나타나지 않으니 다시 차를 돌려 되돌아오면서 찾아도 안 보인다. 몇 번을 오르내리다가 겨우 찾았는데 공원 표지판이 너무 작아 찾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도대체 가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알 수 없는 공원이다. 내려가서 바닷가로 가니 황량한 바다에 먹구름이 내려앉았다.

  바닷가에서 태평양 바닷물에 손도 담그고 파도를 따라 뛰어 놀다가 바닷물이 밀려오는 바람에 신발이 홀딱 젖었다. 그래도 찾고자 하던 것을 찾았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다음 목적지인 로보스 주립공원으로 향했다.

 

- 로보스(LOBOS) 공원 -

   로보스 공원은 표지판이 큼직해서 금방 찾았는데 마감 시간이 다 되어 매표소 직원이 30분밖에 안 남았으니 빨리 보고 나오라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 서둘러 주차를 하고 뜀박질하듯 돌아다녔다. 드라마틱한 해안 절벽과 어둠이 내려앉는 바다 풍경이 신비로웠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으니 더 이상 눈에 뵈는 게 없어서 우리의 숙소 웨스턴 비치 인을 찾아 몬트레이 시내로 들어왔다.

 

17마일 드라이브 ( 91)

- 페블 비치 -

아침에 일어나 방을 나서니 정원이 아름답다. 정원 파라솔 밑에 앉아 사진을 찍고 샌프란시스코를 향해 출발했다.

  오늘도 해변 길을 달리며 쉴 새 없이 약동하는 바다가 보이는 레스트레스 씨 포인트, 중국인 조 아저씨가 살았다는 조 포인트, 작은 돌산 같은 차이나 락, 가마우지가 앉아있는 버드 락을 보았다. 페블 비치에 있는 몬트레이의 트레이드마크 외로운 사이프러스 나무는 가까이 갈 수 없어 조금 아쉬웠다.

  길옆에 있는 고스트 트리 (GHOST TREE)는 말 그대로 유령처럼 생긴 고사목이다. 페블 비치에 있는 기념품 가게로 가니 한국어로 선물 및 의류 기념품이라고 쓴 안내판이 보인다. 한국 사람도 많이 오나보다. 안으로 들어가 구경하다가 골프공이 보이기에 사위 생각이 나서 사려고 했더니 4번 동생이 그런 건 한국에도 많다고 기념이 될 만한 장식용 배지를 사라고 해서 하나 샀다. 나는 골프를 치지 않으니 어떤 게 좋은지 모르겠다. 가게 앞 잔디밭에는 골프 초보자들이 연습을 하느라고 한창이다.

  몬트레이의 카멜 거리가 유명하다고 해서 카멜 거리로 갔다. 올 해가 카멜이 생긴지 100주년이 되는지 100주년 기념 표지판이 보인다.

  거리가 아기자기 하고 서울의 인사동처럼 예쁜 가게들이 즐비하다. 집집마다 아름다운 꽃을 가꿔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집도 동화 속 집들처럼 예쁘고 이 가게 저 가게 장식된 물건들을 보느라 지루한 줄 모르겠다.

  슬슬 배가 고파오자 해안가에 있는 러버즈 포인트 파크에서 컵라면과 주먹밥을 먹고 공원 구경을 했다.

  공원 잔디밭에는 한 소년이 배를 들고 바다를 향해 손짓하는 동상이 있는데 그 아래 있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YESTERDAY’S DREAM TOMORROW’S MEMORY’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어제의 꿈이 내일의 추억이 된다는 것이니 꿈을 가지라는 말이다. 비록 내 나이 칠십을 바라보지만 그래도 꿈을 버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 다시 보는 금문교 -

해 떨어지기 전에 금문교에 도착했다. 금문교는 올 3월에도 왔었는데 내가 무슨 복이 있어 1년에 두 번씩이나 보는지 모르겠다. 지난번에도 석양에 보았는데 오늘도 해가 지려한다. 오늘은 안개가 자욱하니 붉은 교각의 꼭대기가 구름에 가려 더 신비감을 자아낸다.

  샌프란시스코의 대표 마크인 금문교까지 보고 금문교를 건너 샌프란시스코 북쪽에 있는 마린 헤드 랜즈 유스 호스텔에 짐을 풀었다. 산 속에 있는 아담한 집이다. 제부는 혼자 본관 건물의 공동 침실에서 자기로 하고 우리 세 자매는 별관의 방 하나를 따로 빌렸다. 별관은 2층으로 되어있는데 1층에는 거실과 식당, 주방이 있고 욕실은 각 층마다 있다.

짐을 풀고 해안가의 아름다운 마을 소살리토를 지나 몰리 스톤즈라는 마트로 갔다. 여기서 와인과 맥주, 소고기 등 먹을 것을 잔뜩 사가지고 숙소의 식당으로 돌아오니 우리와 같은 층에 들어온 세 할머니가 여기서 술 마시는 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는 방으로 들어와 소고기와 와인을 먹고 밥을 먹으러 식당으로 내려가니 그 할머니가 미안했는지 술 마셔도 된다고 아무 문제없다고 한다. 몰래 방에서 먹고 내려온 우리가 더 미안했다. 칠십도 훨씬 넘어 보이는데 친구 세 명이 이렇게 놀러 다니는 것이 부럽기도 하고 좋아보였다.

 

49마일 드라이브 ( 92)

- 보니타 등대 -

아침 식사 전에 보니타 등대라는 곳에 일출을 보러갔다. 주차장에서 등대까지는 0.5마일 밖에 안 되는데 토요일에서 월요일까지 12시 반에서 3시 반까지 개방한다고 되어있다. 이게 무슨 소린가 하고 길을 따라 가보니 중간에 바위산을 뚫어 만든 터널을 통과해야하는데 이곳이 닫혀 있다. 터널 입구 가까이 가니 벌써 여러 명이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일출을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바라보는 금문교의 일출은 또 다른 새로운 풍경이다.

다시 돌아오다가 바닷가 언덕에서 바라보니 멀리 보니타 등대가 보인다. -사진 1021-

 

- 차이나타운 -

   아침 식사 후에 또 다시 금문교를 향했다. 금문교 옆 언덕 위에서 보는 금문교는 새 얼굴로 우릴 맞는다.

  펄쩍 펄쩍 뛰며 온갖 폼으로 사진을 찍고 다시 내려와 금문교를 건너 차이나타운으로 갔다.

  중국 전통 양식의 집들과 물건들이 눈길을 끈다. 12지신 상을 그린 벽화가 있었는데 나는 소띠인지가 소 그림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 39번 부두 -

차이나타운을 떠나 해안가에 있는 부두로 갔다. 39번 부두 근처에 있는 보딘 카페에 들러 크림차우다를 먹었다. 5번 동생이 지난번에 왔을 때 먹어봤더니 맛있다고 강추하여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사서 먹었다. 커다란 빵의 가운데를 긁어내고 크림을 가득 채운 것이다. 크림 차우다인지 크림 채우다인지 아무튼 크림이 엄청 많고 고소하다.

  39번 부두 쪽으로 가는 길에는 길거리 공연하는 사람들과 관광객들이 인산인해다. 4번 동생이 39번 부두 깃발이 있는 앞에서 두 팔을 벌리고 사진을 찍는데 갑자기 웬 남자가 동생 뒤로 몰래 뛰어가 똑 같은 포즈를 취한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둘 다 사진에 찍혔다. 그 남자는 그게 너무도 재미있는지 깔깔대고 웃는다. 그저 인생이 즐거운 가보다.

  이것저것 구경에 한 눈을 팔며 걷다보니 바다사자 동상이 나타난다. 여기서 바닷가로 나가니 물 위에 떠 있는 나무 데크에 바다사자가 즐비하다

모두들 일광욕을 즐기나보다.

 

- 49마일 씨닉 드라이브 -

   바다사자까지 실컷 보고 주차장으로 돌아와 49마일 드라이브 길로 갔다. 시계와 반대방향으로 돌면서 보아야 좋다고 해서 그렇게 방향을 잡았다. 길을 찾다보니 호수가 있는 멋진 건물 앞으로 갔다. ‘PALACE OF FINE ARTS’ 라고 쓰인 입구를 지나니 고대 이집트 건물 같기도 한 큰 건물이 나타난다. 돔 지붕과 그리스 신전 기둥 같은 멋진 조각이 일품이다. 주변 잔디밭과 호수에서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이 평화롭다.

  바닷가를 따라 얼마동안 달리니 클리프 하우스(CLIFF HOUSE)가 나타난다. 절벽 위에 지어진 아름다운 집이다. 여기서 내려다보는 해안 풍경도 일품이다.

  클리프 하우스에서 조금 더 가면 골든게이트 파크다. 엄청 넓어서 차를 타고 돌아다녀야한다. 공원 안으로 들어가니 호수가 나타난다. 호수에는 오리들이 한가로이 놀고 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보타닉 가든이 있다. 네비가 가르쳐준 주차장으로 가니 입구가 안 보인다. 왼쪽으로 가면 오른쪽에 입구가 있다고 쓰여 있고, 오른쪽으로 가면 왼쪽이 입구라고 쓰여 있으니 우왕좌왕하는데 건물 안에서 한 여자가 나와 자물쇠가 달린 철문을 열어준다. 원래 정문은 이 주차장 밖으로 나가 옆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알려주면서 그냥 이리로 들어가라고 한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잔디밭에 기러기 같은 새가 가득하다.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어도 사람들이 익숙해서 그런지 도망도 가지 않는다.

  여기 저기 둘러보고 나오는데 입구에 나오면서 보니 입장료를 내는 곳이다. 1인당 8달러면 32달러 절약한 것이다. 그냥 들여보내준 그 여자가 고맙다. 보아하니 외국인 관광객인 것 같은데 입구도 못 찾고 헤매는 모양이 안 되어 보였나보다.

 

- 오 마이 갓 (Oh my God!)

   공원을 나와 트윈 픽스(TWIN PEAKS)로 갔다. 두 개의 봉우리가 쌍둥이처럼 나란히 붙어있는 곳이다. 바람이 어찌나 강한지 몸무게 적은 사람은 날아가게 생겼다. 봉우리에 오르니 샌프란시스코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 봉우리에서 내려와 옆의 봉우리에 올라가 또 사진을 찍어댄다.


  두 번째 봉우리에서 내려와 전망대 쪽에 있는 화장실로 갔다. 무심코 문을 열었더니 웬 여자가 변기에 앉아있다. 나를 보는 순간 나도 놀라고 그 여자도 놀랐다. 그녀는 오 마이 갓을 외치며 옷도 못 올리고 엉거주춤 달려와 문을 닫느라 난리다. 나도 당황하여 같이 문을 밀어 닫았다. 나중에 보니 문 옆에 열고 닫는 스위치가 있었는데 내가 그걸 못 보고 손으로 연 것이다. 그런데 그게 왜 잠겨 있지 않고 열렸는지 모르겠다. 일을 마치고 나온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하니 그냥 웃는다. 신경질 내지 않고 웃어준 그녀가 고맙다. 트윈 픽스에서 내려와 공항 근처 베이 랜딩 호텔에 들었다. 화장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소고기를 구워 와인을 마시면서 샌프란시스코에서의 마지막 밤을 즐겼다. 하다 하다 이제 화장실에서 까지 자리 깔고 식사하는 우리 모습이 우습다.


샌프란시스코여 안녕~ ( 93)

- 마지막 산책 -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리는 비행기가 보인다. 거의 1분 간격으로 내리는 듯하다. 얼마 전 아시아나 항공기 사고가 생각난다. 그 때 본 뉴스에서 어떤 사람이 동영상을 찍으며 항공기 꼬리가 바닥에 충돌하는 걸 보고 오 마이 갓을 외치던 기억이 생생하다.

식당에 내려가 와플을 구어 우아하게 식사를 하고 아침 산책에 나섰다. 첫 날부터 끝 날까지 걷기는 계속된다. 공항까지 얼마를 걷다가 호텔로 돌아왔다.

  일찌감치 공항에 도착하여 출국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오르니 이제 모든 게 끝났나 싶고 지난 2주일이 꿈 같이 아련하다.

 

   이번 여행은 곰의 집 요세미티에 주인의 허락도 없이 무단 침입하여 감히 언감생심 꿈에도 바라지 못했던 하프 돔도 오르고 구름도 쉬어간다는 클라우즈 레스트에 까지 올랐으니 이 보다 더 좋은 순 없는 내 생애 최고의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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