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5. 11. 19. 한 번 왔다 가는 인생

아~ 네모네! 2016. 1. 4. 16:01

한 번 왔다 가는 인생

아 네모네 이현숙

  오늘도 건대입구역 환승통로를 지나며 껌팔이 할머니가 있나 살핀다. 멀리서 천 원짜리 한 장을 주머니 속에 넣고 걸어간다. 계단 뒤 쪽이 허전하다. 몇 주째 할머니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 편찮으신가? 아니 돌아가셨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에스컬레이터로 간다. 천 원짜리 지폐를 다시 지갑에 넣으며 안도감인지 안타까움인지 나도 모를 묘한 감정이 스쳐 지나감을 느낀다. 천 원 굳었다는 생각도 밑바닥에 깔려있음에 웃음이 난다.

  구겨진 종이처럼 바짝 웅크린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자리가 텅 빈 듯 허전하다. 매일 오는지 하루 몇 시간이나 그렇게 쭈그리고 앉아있는지 알 수 없다. 몇 년을 보아도 일어서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내가 보기엔 도저히 혼자서 일어설 수도 없어 보인다.

  저렇게 늙어서까지 생계가 막연한 처지가 안쓰럽다. 아니 나라에서 운영하는 무료 양로원이라도 가면 될 텐데 왜 저러고 있을까 싶기도 하다. 자식이 없는지 아니면 나쁜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는지 그 속을 어찌 알랴?

  옛 사람들은 거꾸로 매달려 살아도 이 세상이 좋다고 하던데 정말 이 세상은 그토록 매력적인 곳일까? 어찌 생각하면 이 세상은 천국 같고 어찌 생각하면 지옥 같다. 천국이란 말보다는 지옥이란 말이 더 많다. 입시 지옥, 교통지옥, 취업 지옥, 아무래도 이 세상은 지옥에 더 가까운 모양이다.

  하지만 우주선이 보내온 달의 표면이나 화성의 표면을 보면 그렇게 황량할 수가 없다. 지구는 천국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은 계절이 있느냐 말이다. 봄에 다투어 꽃을 피우는 식물들과 어린 곰을 데리고 숲 속을 거니는 곰을 보나 이 세상은 분명 한 번쯤 와 볼만한 곳이다.

  이 세상은 오기도 힘들지만 가기도 힘들다. 엄마 뱃속에서 열 달 동안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세상으로 나오려면 그 좁은 문을 머리가 부서져라 밀고 나와야한다. 아무리 힘을 써도 나오지 못하면 인위적으로 엄마 배를 찢고 나오기도 하고 흡입기에 빨려서 나오기도 한다.

  일단 나왔다하면 고생이 시작된다. 엄마 뱃속에서는 편안히 가만있어도 탯줄을 통해 모든 영양분과 산소가 공급되니 그야말로 에덴동산이 따로 없다. 하지만 탯줄이 잘리는 순간 질식할 것 같은 고통이 엄습한다. 공기를 빨아들이기 위해 죽을 힘을 써야한다. 아기의 첫 울음은 그 고통을 대변한다.

  그 다음은 죽기 살기로 젖을 빨아야한다. 이걸 빨 힘이 없으면 그 즉시 죽음으로 내 몰린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건 생각할수록 기막힌 일이다. 수많은 병마와 위험을 헤치고 여기까지 도달한 나는 보통 위대한 존재가 아니다. 여기까지는 잘 왔는데 잘 가는 게 더 큰 문제다.

  친정 엄마는 60세까지 잘 살다가 저녁밥 잘 해놓고 먹지도 못하고 몇 시간 만에 가셨다. 아버지는 93세까지 오토바이 타고 다니며 건강하게 지내다가 94세에 입원한지 한 달도 안 되어 가셨다. 긴 고통 없이 가신 두 분이 부럽다.

  오랜 투병생활을 하는 사람을 보면 저러고도 살고 싶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상황이 되면 더 생에 대한 애착이 생길 지도 모른다. 노인들이 더 건강식품 찾고 건강진단 열심히 받는 걸 보면 나도 그럴 것이다. 한 번 왔다가는 세상 좀 더 편안하게 좀 더 신나게 살다 가고 싶은 것은 우리 모두의 바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