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5. 11. 14. 순내가 숯내였네

아~ 네모네! 2016. 1. 4. 15:59

순내가 숯내였네

아 네모네 이현숙

 

  어렸을 때 성남에 있는 큰댁에 가서 1년 정도 살았어요. 그때는 성남시가 생기기 전이라 경기도 광주군이었죠.

  봄이면 앞산 뒷산 돌아다니며 진달래를 꺾어다 깡통에 꽂았어요. 여름이면 개구리를 잡아 논둑에서 구워먹었죠. 다리를 쭉 찢으면 하얀 살이 섬뜩했지만 아이들을 따라 함께 먹었어요.

  뙤약볕에서 놀다가 더위에 지치면 순내로 놀러 갔어요. 아이들은 온 몸에 진흙을 바르고 물속으로 뛰어들었어요. 지금은 머드팩이 피부에 좋다고 일부러 바르지만 그 때는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장난삼아 발랐어요. 그것도 싫증나면 흘러가는 물에 누워 둥둥 떠내려가며 하늘을 바라보았어요.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둥둥 떠내려가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하루 종일 놀다 집으로 가면 큰어머니는 걱정이 되어

순내에 가서 놀지 마라. 얼마 전 비가 많이 왔을 때 어느 집 아이가 떠내려갔다더라.하며 걱정을 하였어요.

  송파구에 사는 딸네 가족과 외식을 하고 택시를 탔어요. 탄천 옆을 지날 때 내가 문득 순내 생각이 나서

내가 어렸을 때는 탄천을 순내라고 불렀는데~” 하니까 사위가

그게 그거네요~” 한다. 딸이 옆에 있다가 숯이 탄과 같은 뜻이니 숯내를 탄천이라 한 건가 봐요 한다. 숯내는 삼천갑자 동방삭이가 숯을 씻던 곳이라고 설명도 해준다.

  동방삭의 장수에 관한 전설적인 이야기는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져 있다. 저승사자가 실수로 동방삭을 염라대왕 앞에 끌고 갔다. 잘못 데리고 온 것을 안 염라대왕은 저승사자에게 빨리 데려다 주라고 호통을 쳤다. 동박삭은 자신의 수명이 궁금해서 염라대왕에게 물었다. 그런데 염라대왕이 보여 준 명부를 보니 수명이 고작 일 갑자(一甲子)였다. 일 갑자는 갑자년에서 다시 갑자년이 돌아오는 시간 즉 60년이다. 그래서 우리는 태어난 해와 같은 해가 돌아오면 환갑잔치를 한다.

  동방삭은 몰래 붓으로 획을 더 그어 삼천갑자로 고쳤다. 삼천갑자는 일 갑자의 3천배니까 18만년이 된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염라대왕이 동방삭을 다시 잡아 오라고 사자를 보냈지만, 그때마다 동방삭은 저승자사를 피해 요리조리 도망 다녔다.

  중국문헌에 따르면 동방삭은 한 무제 때 사람으로 중국 한나라의 동방 즉 고조선 사람으로 생각된다. 예로부터 동방 조선인은 단()으로 수행하여 수백 년씩 살았다는 역사 기록이 있는 걸로 보아 동방삭은 실제로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18만년을 산 것은 아니고 삼천대천세계의 갑자 즉 600년을 산 것으로 추정된다.

  수소문 끝에 동방삭이 조선 땅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저승사자는 동방삭을 잡을 수 있는 꾀를 생각해 내고 냇가에 앉아서 숯을 씻었다. 동방삭이 지나가다가 그 광경을 보고 물었다.

도대체 왜 숯을 강물에 씻는 거요?”

숯이 검어서 내 옷을 더럽히기에 희게 만들려고 물에 빠는 겁니다.”

그 말을 들은 동방삭은 배꼽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

내가 삼천갑자를 살았지만 숯을 강물에 빠는 놈은 생전 처음 보네.”

이렇게 해서 동방삭은 저승사자에게 잡혀가게 되었다. 당시에 저승사자가 숯을 빤 곳이 바로 탄천(炭川)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60년이 넘도록 나는 왜 숯내를 순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저 큰어머니가 말하던 발음대로 순내라고만 생각한 내가 우습다. 순내가 숯내이고 숯내가 탄천임을 알게 되어 기쁘다. 뭔가 안개가 걷힌 듯 후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