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5. 8. 20. 엄마~ 별은 왜 안 떨어져요?

아~ 네모네! 2015. 11. 20. 16:01

엄마~ 별은 왜 안 떨어져요?

아 네모네 이현숙

 

엄마~ 별은 왜 안 떨어져요? 본드로 붙였어요?”

  우리 딸이 아주 어렸을 때 밤하늘을 보며 물었다. 순간 뭐라고 해야 할지 난감했다. 우주 공간에 있는 모든 물체에는 만유인력이 작용하여 서로 잡아당기기 때문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어린 애가 그런 말을 알아들을 리가 없으니 묵묵부답 그냥 얼버무렸던 것 같다.

  초승달을 보면서 엄마~ 달이 깨졌나봐요~” 하면 지구가 해를 가려서 지구 그림자 때문에 한 쪽이 안 보이는 거라고 설명하려니 그것도 왠지 안 먹힐 것 같아 그냥 웃기만 했다.

  어린애가 자라면서 유난히도 질문이 많은 시기가 있다. 하긴 온 세상만사가 처음 보는 것이니 신기하고 궁금하기도 할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이 촉이 다 닳고 부러지고 문드러져서 매사에 시큰둥해진다. 이게 어린이와 늙은이의 결정적 차이다.

  이 힘든 세상, 세파에 시달리며 살다보니 예민하고 부드럽던 감각이 무디고 딱딱해져 아무 감흥이 없다. 이렇게 되지 않으면 아마도 무수한 상처를 받아 자살할 지도 모른다. 모든 생물은 살아남으려는 본능이 강해서 적당히 포기하고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간다. 이것을 삶의 지혜라고 하는 건가?

  인도 북부 가르왈 히말라야 지방에 간 적이 있다. 3주가 넘게 4000미터가 넘는 히말라야 산 속 호숫가에 텐트 치고 살았다. 그 때 저녁마다 서쪽하늘에 나타나는 별이 있었다. 아마도 금성인 것 같다. 어찌나 크고 이글이글 불타는지 종이를 대면 금방 불이 붙을 것 같았다.

  별은 같은 별이로되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히말라야에서는 고도도 높고 먼지나 수증기도 없어서 더 크고 밝게 보였던 것 같다. 같은 금성이라도 서울에서 보면 별 볼 일 없이 그저 그런 별로 보인다. 달이 없는 캄캄한 밤에는 별이 유난히도 많고 더 빛난다. 해가 뜨면 모든 별이 죽는다. 힘없이 스러져 간다.

  막내 동생은 나와 열여섯 살 차이다. 막내 동생이 아홉 살 때 내가 결혼했으니 같이 놀아본 기억도 없다. 막내 동생이 보기에 나는 대단한 존재였나 보. 뭐든지 할 수 있는 어른으로 생각했을 거다. 지금도 내가 무슨 실수를 하면 작은 언니가 그런 것은 이해가 안 된다고 한다.

  막내 동생은 알콜 중독으로 이혼하고 병원에 들락날락한다. 그런 동생을 보면 내가 이 아이의 기를 꺾어 놓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문득 든다. 이 아이가 나보다 더 잘했으면 이런 병에 안 걸렸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때마다 동생에게 미안하다. 동생은 지금도 무슨 일이 생기면 혼자서 해결할 엄두를 못 내고 언니들에게 의지하려고만 한다. 완전히 의욕이 상실된 것 같다.

  모든 빛은 상대적이라서 더 강한 빛이 있으면 보이지 않는다. 해가 밝게 빛나면 달도 별도 빛을 잃는다. 그 별은 여전히 같은 밝기로 빛나고 있는데 말이다. 겨울밤의 찬란한 별도 여름이 되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해와 같이 뜨고 같이 지기 때문이다. 이래서 사람은 때를 잘 만나야 한다고 하나보다. 막내 동생은 낮에 뜬 별인지도 모른다. 암흑기에 위대한 인물이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흑암이 그 사람을 더 빛나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외모로나 내모로나 잘 난 사람들은 못 난 사람에게 죄를 짓고 있다. 곁에 있는 사람의 빛을 말살시키지 않고 내 빛을 조금 줄여 다른 사람이 더 밝게 빛나도록 해주는 흑암이 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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