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5. 7. 5. 아버지의 손

아~ 네모네! 2015. 11. 20. 15:56

아버지의 손

아 네모네 이현숙

 

  아버지가 손에 반창고를 붙이고 손가락 갈라진 틈에 바셀린을 바른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굵고 피부가 갈라져 마른 장작개비 같다. 아무리 봐도 도저히 대책이 없어 보인다. 아버지 손은 원래 그런 것인 줄 알았다.

  아버지는 죽을 때가 다 되어서도 아픈데 없다고 병원에 안 간다고 우겼다. 자식들에게 폐를 안 끼치려고 지독히 참았던 거다. 우리는 그 말만 믿고 병원에 모시고 가지도 않았다.

  말기 암으로 한 달 가까이 입원해 있는 아버지를 보러 매일 병원에 드나들었다. 어느 날 손을 잡아보니 아기 손 마냥 보들보들해지고 갈라진 틈마다 끼어있던 검은 때도 다 사라져 말끔해졌다. 아하 아버지 손도 원래는 이런 모양이었구나 새삼 감탄한다.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스물네 살 때 해방을 맞았다. 학교도 일본 학교를 다녔고 군대도 일본 군대에 갔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을 미워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 사람들에게도 배울 점이 많다고 하였다. 하긴 평생 남의 험담을 하거나 미워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아들 하나에 딸 여섯을 키우면서 한 번도 자식에게 욕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엄마는

이 우라질 년아, 옘병을 할 년아~” 하면서 욕하고 때렸는데 아버지는 항상 말이 없었다. 그러면 엄마는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애들에게 인기 끌려고 야단도 안친다고 아버지에게 화를 냈다.

  아버지가 평생 동안 엄마에게 화를 내거나 큰 소리 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아버지에게 꽁생원이라고 하며 남자가 바람을 필 때 피더라도 기분도 내고 해야지~’ 라고 툴툴거린다. 우리가 볼 때는 엄마가 시집 잘 온 것 같은데 복에 겨워 오히려 큰소리를 친다. 보통 남자 같으면 벌써 싸대기 여러 번 올라갔을 거라고 딸들은 수군수군한다.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는 공부도 많이 못하고 시골에서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형을 따라 서울로 올라왔다. 형이 우리 아버지를 한약방에 취직시켜 거기 두고 나오면서 울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거기서 약도 썰고 청소도 하며 잔뼈가 굵어졌다. 평생 한약을 취급하며 우리 칠 남매를 키웠다.

  노르스름한 생지황을 아홉 번 찌고 말리는 것을 반복하면 검은 색의 숙지황으로 변한다. 이렇게 한약을 만들고 썰어서 한약방에 납품을 하였는데 평생 일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대문 옆 광에는 항상 온갖 한약재가 가득 쌓여 쌉싸름한 냄새가 진동했다. 엄마는 먼지 때문에 알레르기성 비염이 생겼다고 또 툴툴댔다.

  이렇게 평생 일에 파묻혀 지냈으니 그 손이 온전할 리가 없다. 어찌 생각하면 너무도 자랑스럽고 고귀한 손이다. 그 손을 통해 우리 칠 남매가 먹고 자라고 공부했으니 우리의 보배다. 이제 베보자기에 싸여 땅 속으로 들어가셨으니 다시는 만져볼 수도 없다. 아버지 손의 그 거친 촉감이 그립다. 다시 한 번만 만져봤으면 좋겠다.

  사람의 손은 그 사람의 일생을 말한다. 평생 하이칼라로 펜대만 놀리며 먹고 산 사람의 손은 희고 가늘다. 북한 공산당이 내려왔을 때 손을 보고 노동자인지 아닌지 판가름하여 죽였다는 말이 일리가 있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예쁜 손을 갖고자 핸드크림을 바르고 손톱을 손질한다. 각양각색의 색을 칠하고 희한한 무늬를 그려 넣는다. 요즘은 네일 아트가 유행이다. 손톱 가꾸기도 이제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나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예쁜 것이 좋기는 하다. 하지만 손가락도 뭉툭하고 손톱도 짧은 나는 어디서 손을 내놓기가 부끄럽다. 그저 남의 눈에 안 뜨이도록 가급적 치장을 하지 않는다. 반지를 끼면 반지 때문에 손을 보게 될까봐 반지도 평생 끼지 않았다.

  얼굴만 예쁘고 손이 거칠면 어쩐지 품격이 떨어져 보이는 것은 왜 일까? 아직도 미에 대한 관념이 제대로 확립되지 못해서인지도 모른다. 예쁜 얼굴에서 뚝배기 깨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나와도 환상이 깨진다.

  미에 대한 기준은 지역과 종족에 따라 다르기는 하다. 중국의 여인들은 작은 발을 만들려고 어려서부터 발을 묶어 자라지 못하게 하는 전족의 풍습이 있고 어떤 종족은 긴 목이 미의 기준이 되어 쇠고리를 수없이 목에 끼고 산다. 이런 나라에 태어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오늘도 전철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손을 보며 그 사람의 일생을 점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