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5. 6. 26. 탐구생활은 끝나지 않았다

아~ 네모네! 2015. 7. 6. 16:49

탐구생활은 끝나지 않았다

아 네모네 이현숙

 

  이진희의 탐구생활이란 시를 읽었다. 별별 특이한 비유와 표현이 나의 주의를 끄는데 도대체 뭔 소린지 모르겠다. 단지 탐구생활이란 제목을 붙인 것이 참신하고 기발나.

  요즘 주말마다 망우산에 오르며 스마트폰으로 여러 가지 꽃과 나비, 개구리알과 올챙이, 도룡룡알 등을 찍어 동생들 카톡방과 아이들의 카톡방에 올린다. 손녀 송희는 올챙이 노는 게 신기하다고 하고 딸은 자주개자리꽃은 처음 본다고 좋아한다. 며느리는 손자 이안이가 우리 사진을 본 후 할아버지 할머니 보고 싶다고 한다며 전화도 한다. 동생들은 오늘의 관찰일기 잘 보았다고 줄줄이 댓글을 단다.

  이런 재미로 툭하면 별 시시한 사진을 다 올리며 카톡방으로 사람을 끌어들인다. 부엌 싱크대 앞에서 보이는 북한산의 일몰 사진도 찍고, 거실에서 앉았다가 용마산에 달이 떠오르면 월출 장면을 찍어서 카톡방에 올린다. 보는 사람이 지겨워 비명을 지를 것 같다.

  사실 이것은 나의 탐구생활이기도 하지만 나의 존재를 알아달라는 비명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나 동생들과 말 한 마디라도 섞어볼까 하는 음흉한 계략이다. 댓글이 없어도 내가 올린 사진에 붙어있는 숫자가 없어지면 다 읽은 것이니까 별일은 없구나 하고 안심한다.

  봄이나 여름에는 산행할 때 온갖 야생화가 손짓한다. 산행은 운동도 되지만 꽃과 나무를 보며 야생화를 탐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며느리밑씻개에 붙어있는 날카로운 가시를 보며 시어머니의 심통을 생각한다.

  아주 먼 옛날에 못된 시어머니와 착한 며느리가 있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밭에서 일을 하다가 며느리가 배가 몹시 아파서 볼일을 보게 되었다. 급한 김에 뒤돌아 앉아 볼일을 보고는 밑을 닦으려고 시어머니에게 콩잎을 따 달라고 했다. 시어머니는 네가 감히 시어미에게 심부름을 시키느냐고 화를 내면서 따준 잎이 바로 이 며느리밑씻개라고 한다.

  보면 볼수록 이런 잎으로 며느리가 밑을 씻었다가는 아랫도리가 엉망진창이 되어 손자도 못 볼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한 치 앞을 못 보고 며느리를 미워하는 시어머니의 질투가 안타깝다.

  며느리밥풀꽃은 또 어떤가? 빨간 꽃잎 안에 하얀 밥풀 같은 것이 두어 개 들어있다. 옛날에 며느리가 밥을 짓다가 뜸이 다 들었나 보려고 몇 알 먹어보는 순간 시어머니에게 들켰다. 시어머니는 젊은 것이 어른들 먼저 밥을 먹는다고 마구 때려 며느리는 숨을 거두었다. 저녁에 돌아온 아들이 슬피 울며 묻어주었더니 이듬 해 봄에 그 자리에서 꽃이 피었다. 빨간 입술에 흰 밥알이 몇 개 붙어있어 며느리밥풀꽃이라 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 눈에 눈물 나게 하면 아들 눈에서 피눈물 나는 걸 어찌 몰랐을까? 이런 저런 꽃들과 대화하고 이름을 불러주며 나의 탐구생활은 끝날 줄 모른다.

  동생들과 터키 여행을 가서도 방에 있지 못하고 여기저기 쑤시고 돌아다녔더니 가이드가 우리에게 호기심 자매라고 별명을 붙였다. 해외여행에 대한 욕망도 지나쳐 돈이 없으면 빚을 내서라도 가야한다. 언젠가는 비용이 부족해 동생이 내게 잠시 맡겨놓은 돈으로 간 적도 있다. 누가 들으면 미친년이나 또라이 라고 할 것 같다.

  남편은 거의 해외여행을 가지 않는데 혼자 자꾸 나가려니 남편의 눈치 보기 바쁘다. 어떤 때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슬그머니 메일을 보낸다. 제목은 해외여행 신청서라고 붙이고 기간 장소 일정 등을 상세히 적어 보낸다. 한참 기다리니 남편에게서 해외여행 허가서라는 답장이 온다.

  나는 아직도 호기심과 탐구심이 넘쳐서 TV를 볼 때도 세계테마기행, 영상앨범 산, 걸어서 세계 속으로, 같은 것을 즐겨본다. 남편은 야구, 농구, 배구, 축구, 이런 것만 본다. 내가 여행 프로그램을 보며 기가 막히다고 감탄사를 연발하다가 옆을 보면 남편은 눈을 감고 졸고 있다. 입은 벌리고 고개는 뒤로 넘어가 목뼈가 부러질 것 같다. 어째 저렇게도 미지의 세계에 대한 관심이 없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내년 가을에 친정 남매들이 부부동반으로 중국에 있는 구채구에 가기로 했다. 남편은 지금부터 자기는 안 가겠다고 나 혼자 갔다 오라고 한다. 생각할수록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사람마다 취미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은 하지만 남편의 이런 태도를 보면 왜 사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모든 자연과 사물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가 우리 인류를 발전시킨 건 아닐까? 몸도 마음도 점 점 시들어 이런 마음이 다 없어질 때 우리 생은 끝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탐구생활은 나에게 선택과목이 아닌 필수과목이다. 탐구생활을 끝마치는 날이 바로 내 제삿날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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