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5. 6. 13. 결혼의 두 얼굴

아~ 네모네! 2015. 7. 6. 16:45

결혼의 두 얼굴

아 네모네 이현숙

 

  결혼하기 전에는 막연히 핑크빛 신혼생활을 상상했다. 하지만 없는 돈에 전세방을 구하러 다니려니 그 돈으로는 빈민굴 같은 허름한 집 밖에 구할 수 없었다. 순간 꿈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평생 남의 집에 살아본 적이 없는데 이런 데서 살아야하나 하는 생각에 참담했다.

  결혼해서는 안 해먹던 밥 해먹어야지, 청소하고 빨래해야지, 밤일해야지 낮일해야지 이건 내 생각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런 결혼을 왜 많은 사람들이 했을까? 한 번도 해보지 않아 속아서 결혼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실제로 속아서 결혼하는 경우도 있다. 친정의 새어머니는 결혼식까지 다 마치고 살다보니 남편이 유부남이었다. 딸까지 낳았는데 시집에서 재봉틀을 하나 사주며 이걸 가지고 나가 벌어먹고 살라고 했다. 너무도 기가 막혀 재봉틀이고 뭐고 다 던지고 딸을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왔다. 오십이 넘어 우리 집에 올 때까지 호적상 처녀였다.

  모든 동식물을 보면 발정기와 개화기에는 혼신의 힘을 다해 짝을 찾아 나선다. 수컷들은 암컷을 차지하려고 사투를 벌인다. 암꽃은 벌 나비를 유인해 수정하려고 요란한 옷을 갈아입고 온갖 교태를 부린다.

  사실 수정하고 잉태하여 새 생명을 키우는 것은 너무도 힘 든 일이다. 거미는 새끼가 깨어나면 어미를 먹고 성장한다고 한다. 연어도 수천 킬로를 달려와 알을 낳고 기진맥진하여 죽는다.

  사람도 자신의 여자를 만들기 위해 결투를 벌이다 목숨을 잃기도 한다. 끓어오르는 정욕을 누르지 못해 성범죄를 저지르고 살인을 한다. 이렇게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욕망은 도대체 누구의 욕망인가? 모든 생명체 안에 들어있는 DNA가 범인이 아닐까? 눈에 보이지 않는 이 DNA가 모든 생물을 지배하는 지도 모른다. 이것의 지시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우리는 어쩌면 DNA의 노예에 불과할 수도 있다.

  남편과 함께 아들을 데리고 시부모 산소에 성묘 간 일이 있다.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나도 모르게 남편에게는 비에 젖는 모자를 주고 아들에게는 젖지 않는 고어 모자를 주었다. 무의식중에 나의 유전자를 지키려는 DNA의 지시를 따른 것 같다.

  결혼은 겉으로 보기엔 암컷과 수컷의 결합이요, 자신들의 의지에 따른 것 같지만 실제로는 DNA의 강력한 욕망에 이끌려 그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놀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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