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5. 6. 10. 나의 볼펜

아~ 네모네! 2015. 7. 6. 16:42

나의 볼펜

아 네모네 이현숙

  박완서 산문집 나의 만년필을 읽었다. 박완서는 너무도 유명한 사람이라 잘 아는 줄 알았는데 이 책을 보니 그녀에 대해 너무 아는 것이 없었다.

  박완서는 1931년 경기도 개풍군에서 태어났다. 개풍군은 개성시 남쪽에 있다. 4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오빠만 데리고 서울로 떠났다. 그녀는 조부모 밑에서 지내다 8살 때 서울로 오게 되었다. 15살 때 해방을 맞았고 스무 살에 서울 문리대 국문과에 입학했지만 며칠 다니지 못하고 6.25를 맞았다.

  전쟁 중에 오빠와 숙부를 잃고 대가족의 가장 역할을 해야 했던 그녀는 미군부대에 들어가 초상화 그리는 일을 했고 여기서 박수근 화백을 만났다. 23살에 결혼하여 14녀를 두었다.

  마흔 살에 나목으로 여성동아 여류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되어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 후 휘청거리는 오후,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목마른 계절 등 수많은 시와 소설, 수필을 썼다. 수상 경력도 화려하여 문학상이란 상은 모조리 휩쓴 것 같다.

  57세에 남편과 아들을 잃고 성지순례 등 많은 여행을 하고 여행기도 쓰게 된다. 2011년 담낭암으로 81세의 생을 마감한다. 그녀의 책은 사후에도 계속 출간되었고 이 책도 1977년 출간된 혼자 부르는 합창을 재편집하여 올 해 다시 출간된 것이다. 나는 살아서도 책을 못 내는데 죽어서도 계속 책을 내는 그녀는 가히 그 명성을 짐작할 만하다.

  이 책은 총 4부로 되어있고 각 부에 10여개의 산문이 들어있다. 좀 특이한 점은 하나의 산문에 여러 개의 글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십대의 비 오는 날이라는 글 속에 앉은뱅이 거지, 버스 바닥에 흩어진 동전, 철거되는 대학 건물, 소도구로 쓰인 결혼사진, 같은 소제목의 글이 들어있다. 40대에 비오는 날 보았던 여러 장면을 시리즈로 엮었다. 좀 특이한 발상이다. 나도 한 번 이런 식으로 써보고 싶다.

  그녀는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이런 저런 일을 담담하게 풀어나갔는데 사회전반에 대해서, 교육제도에 대해서, 정치에 대해서, 다양한 자신의 소신을 피력하고 있다. 그저 자기 개인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내 글과는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과 인생관이 많은 사람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나보다.

  제목에 나오는 나의 만년필은 이영도 시인이 필자에게 준 만년필이다. 그 글 속에도 이영도 선생이 주신 만년필, 아주 곱게 늙은 분, 정말 좋은 글 써줘요, 선생님 나빠요 더 사시지 않고 라는 소제목의 글이 네 개 들어있다. 이영도 선생님에게 만년필을 받게 된 사연과 이 만년필을 받을 때 좋은 글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부담감을 가졌던 심정을 토로한다. 1년 동안이나 책상 서랍 속에서 잠자던 이 만년필을 이영도 선생님의 영결식에 다녀와 처음으로 잉크를 넣어 추도의 글을 쓰게 된 사연을 얘기하고 있다.

  나도 만년필은 없지만 등단했을 때 권남희 선생님이 주신 볼펜이 있다. 잉크가 다 떨어져 지금은 쓰지 않지만 잘 간직했다가 이 볼펜을 눈에 띠는 곳에 놓고 볼 때마다 좋은 글 써야겠다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책의 말미에 공무원에게 보내는 편지와 경제기획원 장관에게 보내는 편지가 있는데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불평등을 신랄하게 지적하고 있다. 나는 박완서가 나와 같은 시대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열 다섯 살까지 일본 교육을 받고 한국전쟁을 치르며 온갖 고난을 경험한 우리 부모세대와 같은 분이라는 것에도 놀랐다.

나도 그녀처럼 의식 있고, 인생관이 뚜렷한 글쟁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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