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5. 6. 1. 내 머리가 어때서 2

아~ 네모네! 2015. 7. 6. 16:41

내 머리가 어때서

아 네모네 이현숙

  요즘 염색을 하지 않는다. 염색을 하지 않았더니 백발이 다 됐다. 보는 사람마다 왜 염색을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40대부터 20년이 넘게 염색을 했더니 이제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난다. 염색할 때마다 머리가 가렵고 긁으면 두피에 물집까지 생긴다. 파마를 해도 역시 가렵다.

  사람들은 약을 먹고 염색을 하면 괜찮다고 하는데 약까지 먹어가며 염색하기는 어째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내가 직장 생활하는 것도 아닌데 굳이 독한 염색약을 머리에 바르며 내 머리를 혹사시킬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 해 5월 경로증도 나왔으니 이제 명실 공히 노인이다. 어차피 나라에서도 인정하는 할머닌데 그냥 백발의 생머리로 살려한다. 하지만 어찌 보면 공해인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안 보이니까 괜찮은데 나를 보는 사람들은 보기가 괴로운가보다.

  남편이 살아있을 때까지는 남편 생각해서 염색을 하라는 사람도 있고, 모자를 쓰라는 사람도 있다. 어디 아팠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고, 치매노인 같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이제 본색을 드러내는 거냐고 묻는 사람에게 지붕개량중이라고 농담을 한다.

  하지만 흰 머리가 좋은 점도 있다. 우선 사람들이 날 경쟁상대로 보지 않는다. 불쌍한 노인으로 봐 주니까 편하다. 똑 같은 잘못을 해도 흰 머리를 들이대면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고 그냥 참아주기도 한다. 흰머리는 백기를 든 것으로 알고 용서해주나보다. 내심 그래 나 할머니다. 어쩔래?’ 하는 뻔뻔함도 약간 작용한다.

  수필교실에서 전주 한옥마을로 답사를 가는 날, 보다 못한 한 문우가 모자를 선물했다. 원래 모자가 잘 안 어울리는 나는 산에 갈 때가 아니면 모자를 쓰지 않는다. 큰 바위 얼굴이라 모자를 쓰면 얼굴이 찐빵처럼 부풀어 보인다. 아무리 봐도 어색하다. 그래도 보는 사람 생각해서 열심히 쓰고 다녔다.

  남들이 내 본색에 익숙해지니까 요즘은 그냥 포기하고 봐 준다. 내가 생각해도 이때까지 잘 참고 버텼다. 우선 내 눈에 익숙해져야 남들도 익숙해진다. 처음에는 거울에 갑자기 나타난 백발의 할머니가 나라는 사실이 무척 낯설었다. 이게 나의 본색이란 것을 나부터 반복 또 반복하여 학습시키니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아니 은발이 더 멋있다고 스스로 세뇌시킨다.

  모든 자연은 꽃 필 때가 있으면 시들 때가 있고, 푸를 때가 있으면 낙엽 질 때도 있다. 자연은 끊임없이 변하며 사라져가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플라스틱 조화처럼 변함없으면 무슨 매력이 있을까? 자연이 자연스럽게 변해가듯 나도 아름답게 늙어갔으면 좋겠다.

  야~ 야 야 내 머리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머린데~ 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말이다.

나날이 늙어가며 살아보니 늙을수록 살맛이 난다. 젖 달라는 애가 있나? 빨리 밥 달라고 보채는 인간이 있나? 시험 볼 일도 없고, 보고서 쓸 일도 없고, 직장 생활하며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으니 그야말로 오뉴월 개 팔자다.

  몇 년 만 젊어지고 싶다거나 20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난 지금에 제일 좋다. 여기까지 오기도 얼마나 힘들었는데 온 길을 되돌아간단 말인가? 택도 없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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