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5. 5. 1. 공휴일은 두려워

아~ 네모네! 2015. 7. 6. 16:34

공휴일은 두려워

아 네모네 이현숙

 

  근로자의 날이다. 수영도 안 하고 요가도 안 한다. 갑자기 생긴 공일은 그야말로 공치는 날이다. 심심하다. 대책 없이 다가오는 공일은 처치곤란이다.

  직장에 근무할 때는 공일이 꿀맛이었는데 퇴직 후에는 1365일이 공일이니 공일이 달갑지 않다. 예전에는 일요일 같이 하루 종일 노는 날은 공일, 토요일 같이 반만 노는 날은 반공일이라고 불렀다. 이제 공일이란 말은 수명을 다했는지 어느 새 사라지고 공휴일이라고 부른다.

  공백은 일종의 두려움이다. 텅 빈 공간은 인간을 무기력하게도 하고 당혹스럽게도 한다. 시간의 공백이 두려워 스케줄을 빽빽하게 짜 놓는다. 나도 월, , 금은 요가와 수영, 노래교실로 채우고 화요일은 등산교실, 목요일은 수필교실, 토요일은 남편과 망우산 가기, 일요일은 교회 가기 등 공백 없는 프로그램을 짜서 정신없이 시간을 죽인다.

  인간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죽음 뒤에 올 시간적, 공간적 공백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 두려움을 잊기 위해 별로 필요도 없는 일에 분주하게 지내며 빈 시간을 채우려한다. 아니 공백을 외면하려한다. 항상 무슨 일엔가 쫓기며 살다가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지면 내가 무슨 할 일을 깜빡 잊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으로, 또 집에 가서도 해야할 숙제가 항상 밀려있다. 공부에서 헤어날 시간이 없다. 행사는 또 왜 그리도 많은지 과학의 달, 물의 날, 발명의 날, 불조심의 달, 환경의 날, 순국선열의 달 등 끝없이 이어지는 표어, 포스터, 글짓기, 만들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학생들을 짓누른다.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할 일 없이 빈둥빈둥해야 이런 생각 저런 생각하다가 창의적인 생각도 떠오를 텐데 그저 밀려드는 과제를 처리하기도 벅차다. 옆을 돌아볼 틈이 없이 질 질 끌려다닌다. 이런 현실을 볼 때마다 우리나라 교육이 학생들의 창의력을 말살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긴다.

  끝없이 밀려드는 파도 같은 과제가 우리 아이들을 목 조른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게 만든다. 어쩌다 잠시 시간의 공백이 생기면 불안하여 그것을 감당하지 못해 스마트폰과 게임에 빠져 지낸다.

  아무도 없는 빈 공간도 감당하기 힘들다. 친구 찾아 밖으로 나돈다. 무수한 모임을 만들어 사람들 속에 끼어 살려 한다. 집에 혼자 있으면 TV라도 틀어놓아야 안심이 된다. 아무 소리도 없는 빈 공간과 공백을 마주 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약한 나의 인생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있는 시간을 감당하기 힘들어서 쓸데없는 사진을 여기 저기 카톡방에 올리며 사람들과의 연결고리를 만들려고 한다. 아니 나 여기 있다고 나 아직 죽지 않았다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는 내 모습이 우습다. 나 혼자 나의 참 모습을 직시하며 나를 이기는 당당한 모습을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