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5. 4. 24. 내복 한 벌 같은 너

아~ 네모네! 2015. 7. 6. 16:32

내복 한 벌 같은 너

아 네모네 이현숙

 

  카톡 오는 소리가 연방 카 카 카 카 숨이 넘어간다. 이렇게 여러 번 울리는 것은 십중팔구 아들이나 며느리가 손자 사진을 보내는 것이다. 만사 제쳐놓고 스마트폰을 집어 든다. 며느리가 찍은 손자 사진이 줄줄이 올라와있다. 유치원에서 미끄럼 타는 모양이며 아이스크림 먹는 모습이 보인다. 손자 이안이는 왼손으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내 아들도 왼손잡이인데 아빠를 닮았나보다.

  출발~ 하고 소리치며 미끄럼 타는 동영상도 있고, 아빠와 함께 유치원에서 가방을 들고 건들건들 돌아오는 모습도 있다. 이안이는 며느리가 42살에 낳은 금쪽같은 아이다. 32살에 결혼하여 10년이 넘어서 얻었으니 생각할수록 기적이다. 이 아이는 우리 부부에게 추위도 잊게 해주고 몸 안 가득 따뜻함을 전해주는 내복 한 벌 같다.

  가끔 손자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동생들 카톡방에 올린다. 동생들은 아직 손자를 본 사람이 없다. 우리 손자 사진을 보고 신기해하고 즐거워한다. 많이 컸다고 연방 댓글이 올라온다. 하지만 바로 밑의 여동생에겐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든다.

  스물여덟 살 된 외아들을 잃은 동생의 모습은 왠지 항상 추워 보인다. 말도 많이 하고 웃기도 잘 하는데 얼굴 한 구석에 무언지 모를 허전함이 남아있다. 엄동설한에 내복도 못 입은 얼굴이다. 아마도 평생 이 그림자는 지우지 못할 것 같다.

  어려서는 부모가 내복이고 결혼 후에는 남편이 내복이다. 부모 잘 만나면 배부르고 등 따시게 성장한다. 남편 잘 만나면 어깨 쭉 펴고 목에 힘주며 살아간다. 하지만 늙어서는 손자들이 내복인 듯하다. 그저 손자만 보면 힘이 솟고 엔돌핀이 팍 팍 나온다. 몸과 마음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따끈따끈해진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손자 얘기만 나오면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기쁨이 충만해진다. 그저 시도 때도 없이 핸드폰 속의 손자 사진 보여주며 자랑을 한다. 오죽하면 손자 사진 한 번 보여줄 때마다 만원씩 내라는 말이 생겼겠는가? 스마트폰의 프로필 사진도 손자로 한 사람들이 많다. 스마트폰 갤러리에 손자 손녀 사진을 수천 장 씩 저장해 가지고 다니며 수시로 들여다본다.

  모든 부모가 딸 바보, 아들 바보라면 모든 할아버지 할머니는 손자 바보, 손녀 바보다. 이것에서만은 예외가 없다. 60년이 넘게 살아오면서 한 번도 예외를 본 적이 없다. 나의 유전자를 사분의 일이나 가지고 있는 손자를 어찌 예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내복은 평생 입어도 떨어지지 않는 매직 내복이다. 오늘도 나는 스마트폰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그림의 떡이 아닌 그림의 손자 사진 오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