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5. 4. 20. 내 영혼의 오르가즘

아~ 네모네! 2015. 7. 6. 16:28

내 영혼의 오르가즘

아 네모네 이현숙

 

  백담계곡 바위에 앉아 계곡물을 바라본다. 옥색 물위에 핏빛 단풍이 둥둥 떠내려간다. 넋을 잃고 바라본다. 이 지구상에 이렇게 끔찍하도록 아름다운 정경이 있단 말인가?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 했다고 생각한다. 이 지구상에 올 수 있었던 것은 크나큰 행운이다. 이 광경을 한 번 본 것만으로도 이 세상은 한 번 와 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 생각한다.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가입한 동아리가 산악회다. 게시판에 붙어있는 산악회 광고지를 보니 이번 일요일 천마산에 가니 청량리역으로 몇 시에 모이라고 쓰여 있. 누구 하나 같이 가자는 사람도 없었지만 무조건 혼자서 역으로 나갔다.

  어렸을 때 큰댁에 가서 1년쯤 살았다. 소막고개에 올라 먼 산을 바라보면 끝없이 이어지는 능선이 나를 막연한 동경에 빠지게 했다. 저 산을 넘고 넘으면 그 너머에는 어떤 세상이 있을까? 그 세상에 대한 그리움이 온몸을 휘감았다. 이런 그리움이 내 몸 안에 있다가 나도 모르게 나를 움직였나보다.

  생판 모르는 산악회 선배들을 따라 마석에서 내려 천마산을 향했다. 지금까지 모르던 신천지가 안전에 전개되는 듯했다. 연두색 구름처럼 피어나는 산의 온갖 나무들이 나를 매료시켰다. 난생 처음 해보는 산행인지라 죽을힘을 다해 정상에 올랐다. 교통편이 불편한 때라서 평내역까지 걸어와 다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왔다.

  그 후로 어찌나 다리가 아픈지 계단을 오르내리려면 장딴지가 끊어지는 듯했다. 1주일 동안 강의실을 옮겨 다니려면 계단의 난간을 붙잡고 통사정을 하듯 벌벌 기었다.

  산의 매력에 푹 빠진 나는 그 후로 매주 토요일 일요일 두 번씩 산에 다녔다. 인수봉, 선인봉, 만장봉 등 선배들을 따라 바위에 붙어 씨름을 했다. 도대체 대학교를 다니는 건지 산악회를 다니는 건지 분간이 안 됐다.

  가을이 되자 산악회에서 설악산에 간다고 한다. 1주일 동안 수업도 빼먹고 시험도 세 과목이나 있었는데 무슨 배짱으로 다 제치고 거길 따라 갔나 모르겠다. 그래도 신흥사에서 정상에 올라 백담사로 내려오는 길은 나를 황홀경에 빠뜨렸다. 세상이 두 쪽 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육신은 사랑을 나눌 때 오르가즘을 느낀다고 하는데 나의 영혼은 산에 안겨있을 때 오르가즘을 느낀다. 산에 안겨있는 동안은 세상에 부러운 놈 하나 없고 내가 가장 축복받은 인간이란 생각이 든다. 산은 나의 애인이다.

  이 애인이 언제까지 나를 안아줄지 모르지만 그 때까지 이 행복을 만끽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