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5. 4. 4. 너와 나의 사이

아~ 네모네! 2015. 7. 6. 16:24

너와 나의 사이

아 네모네 이현숙

 

  요즘은 분업화의 시대다. 모든 것이 분업화되어 한 사람이 한 가지 일만 잘 하면 밥 먹고 살 수 있다. 사회가 하도 세분화 되다보니 혼자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당연히 전문직이 인기다. 이것저것 두루 잘 하는 사람은 아무 짝에도 쓸데가 없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은 스펙 쌓기를 하느라 자격증 따기에 여념이 없다. 남들과는 다른 특이한 능력을 가져야 취업의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있다. 자연히 송곳처럼 뾰족하고 까칠한 인간이 양산되고 있다.

  오래 전 찰스 채플린이 주연한 모던 타임스라는 영화를 본 일이 있다. 찰리는 매일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나사 조이는 일을 하고 있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벨트 위에 있는 부품을 좇아가는라 기계와 한 몸처럼 움직인다. 부품을 따라가며 조이려다 급기야 톱니바퀴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끊임없이 한 가지 일만 하던 그는 나사처럼 생긴 모든 것들을 조여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빠진다. 길에 있는 소화전의 나사도 돌리고, 지나가는 여자의 옷에 있는 단추도 조이려고 따라가다가 경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결국은 정신분열증에 걸려 강제로 정신병원에 보내지게 된다. 거대한 기계가 돌아가는 속에 낀 그는 오직 한 가지 동작만 되풀이 한다. 미처 기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허덕이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고도로 산업화 되어가는 이 사회에서 인간이 인간성을 잃어가는 기이한 모습을 풍자한 영화다.

  나도 평생 주둥이만 놀리며 살았다. 입으로 먹고 입으로 말하면서 평생을 살다보니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 나 같은 인간이 농경사회에 태어났으면 벌써 굶어죽었을 것이다.

  이렇게 한 가지 밖에 못하는 인간이 도처에 널렸으니 각자 자기의 성에 갇혀 타인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사람의 자리에 서보지 않았으니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너도 나도 다 잘나서 다른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너와 나를 이어주는 다리가 없으니 소통이 되지 않는다. 모두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위로만 올라간다. 내면에 바벨탑을 쌓으며 위로만 올라가니 자신의 탑에 갇혀 외롭고 쓸쓸하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자녀가 있어 다리를 놓아주듯 너와 나의 사이에 어느 누가 있어 다리를 놓아줄까? 모나고 제멋대로 자란 너와 나의 사이에 어느 누가 윤활유가 되어 부드럽게 돌아가게 할까? 남의 다리가 되고 윤활유가 되려면 내가 없어져야 할 텐데 나 자신을 버리지 못하는 내가 문제다.

  잘 난 사람 못난 사람 섞여 있어야 조화로운 세상이 될 텐데 다들 잘 난 사람만 되고 싶으니 말이다. 내 자식은 잘 난 사람 만들고 싶고 남의 자식이 다리가 되고 윤활유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이기심 때문에 이 사회는 모난 돌처럼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다. 서로 부딪쳐 깨어지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돌아간다. 내가 먼저 낮아지고 부서지고 녹아서 윤활유가 될 수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