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5. 3. 16. 책을 찾아 삼 십리

아~ 네모네! 2015. 7. 6. 16:18

책을 찾아 삼 십리

아 네모네 이현숙

  찰스 디킨스의 밤 산책을 사려고 건대 역에 있는 반디앤루니스 서점에 들렀다. 인터넷 검색창에 밤 산책을 치니 재고가 한 권 있다고 나온다. 위치를 출력해 서가에 가서 아무리 위에서 아래까지 눈알 빠지게 찾아도 보이지를 않는다. 할 수 없이 직원에게 부탁하니 와서 열심히 찾아도 역시나 없다. 누가 가져갔는지 아니면 꺼내서 보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집에 가서 인터넷으로 신청할까 하다가 아무래도 배달되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잠실 교보문고로 갔다. 재고가 없다. 강남교보에 한 권 있다고 나온다. 직원에게 위치를 물으니 신 논현역에 있단다.

  교대역에 가서 3호선으로 갈아타고 고속터미널로 갔다. 9호선 쪽으로 가려다 생각하니 호남선 가는 방향에 반디앤루니스가 있던 기억이 퍼뜩 떠오른다. 거기 가서 검색하니 재고 한 권이 있다. 서가에 가니 얌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는 밤 산책이 보인다. 무슨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희열이 느껴진다. 엄마 찾아 삼만 리까지는 아니라도 책을 찾아 삼 십리 헤맸다는 느낌이다. 단지 짧다는 이유만으로 선택했는데 잘못 찍었다.

  찰스 디킨스는 너무도 유명한 사람이라 선뜻 마음이 움직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1812년에서 1870년까지 살았던 영국 소설가다. 올리버 트위스트, 크리스마스 캐럴, 데이비드 코퍼필드, 두 도시 이야기 등 우리에게 친숙한 작품을 썼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채무관계로 투옥되는 바람에 일찌감치 학업을 중단했다. 하지만 17세에 언론계에 입문하여 저널리스트로 성공한다. 그는 글로서 당시 사회 체제를 풍자했고 구빈원을 운영하여 어려운 사람을 도왔다. 59세 때 에드윈 드루드의 수수께끼라는 소설을 집필하다가 심장발작으로 숨졌다. 한 마디로 열심히 살다가 잘 죽은 사람이다. 죽는 복을 타고 났나보다.

  이 책에는 밤 산책을 비롯하여 8개의 작품이 들어있다. 밤 산책은 불면증으로 잠이 오지 않자 밤새 거리를 돌아다니며 보고 느낀 것을 적은 글이다.

  약 150년 전의 런던 거리는 지금의 우리 거리와 별 차이가 없음을 보고 놀랐다. 노숙자와 술주정뱅이, 매독환자들과 마권을 파는 사기꾼들, 워털루 전쟁에서 나폴레옹을 물리쳤던 웰링턴의 죽음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장사치들, 인간의 본성은 전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글에 등장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 런던 브릿지, 국회의사당, 등 지금도 그 때의 건물이 그대로 건재하니 시간의 흐름을 전혀 느낄 수 없다.

  그의 글은 그 때 사람들의 글이 다 그랬겠지만 길어도 너~무 길다. 한 문장이 열 줄, 열 두 줄까지 마냥 이어지니 꽁지를 읽을 때쯤이면 앞대가리를 다 잊어버린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알아먹을 수가 없다. 자고로 문장을 단문으로 짧게 써야함을 실감한다. 계속 읽다보면 무슨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 같다.

  그는 그 시대의 사회와 정치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그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어떤 기사를 접하면 직접 거기에 가서 확인하고 그 시대의 문제점을 철저히 분석하고 글로 써낸다. 글을 쓸 때 앉아서 쓰지 않고 발로 쓴다고나 할까? 이 점이 배울만하다. 어린이 병동이나 매독환자를 격리 수용하는 수용소에 직접 들어가서 거기 수감된 사람들을 보고 관리자와 이야기도 나누고 한 후에 글을 쓴다.

  내 글은 사실을 나열하는데 그치는데 그의 글에는 많은 사유가 있다. 그래서 그의 글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사유의 방법으로는 걷는 게 최고다.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는 것보다 걸으면서 생각하면 훨씬 사색의 폭이 넓고 깊어진다. 무작정 걷다보면 머릿속이 맑아지고 생각이 정리된다.

  중간 중간에 삽화도 넣었는데 제작연도를 보면 디킨스가 살던 시대의 것도 있지만 태어나기 전이나 사후에 그려진 것들도 많다. 아마도 삽화는 후세에 다른 사람들이 삽입한 모양이다. 스물일곱 살 때의 초상화와 말년의 초상화도 들어있는데 그의 성공한 인생이 엿보이는 듯하다.

  소설이 작가의 가면 쓴 얼굴을 보는 것이라면 수필은 작가의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을 보는 느낌이다. 지금까지 그의 소설만 보았는데 이 책을 보니 그의 내면의 모습과 생각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게 되어 그를 더 잘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이 후에 그의 소설을 다시 읽으면 전혀 새로운 맛이 느껴질 것 같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 3. 28. 아버지의 절  (0) 2015.07.06
2015. 3. 27. 얼굴은 언제 보나  (0) 2015.07.06
2015. 3. 12. 보자기 인생  (0) 2015.07.06
2015. 2. 16. 나의 아킬레스건  (0) 2015.07.06
2015. 1. 22. 잠 쫓는 팔베개  (0) 2015.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