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5. 3. 27. 얼굴은 언제 보나

아~ 네모네! 2015. 7. 6. 16:19

얼굴은 언제 보나

아 네모네 이현숙

 

  어스름한 새벽에 골목길을 간다. 젊은이들이 느릿느릿 걸어간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앞을 보지 못한다. 좀비들이 걸어 다니는 것 같다. 요즘은 카페에서 만나 데이트를 하면서도 얼굴은 안 보고 각자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모습을 종 종 볼 수 있다. 대체 얼굴은 언제 보려나?

  남의 얼굴을 가장 열심히 보는 사람은 학생이 아닐까 싶다. 학생들은 수업을 듣느라 선생님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래서 별명도 얼굴에 관한 것이 많다.

  내 얼굴은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각이 져서 육각수라고 했다가 감자라고도 했다. 급기야 얼굴이 네모라고 아네모네라는 별명도 생겼다. 꽃 이름 아네모네가 아니고 아! 네모네~ . 이것은 면목중학교 근무할 때 학생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이 별명은 성수중학교로 전근한 후에도 어떤 경로인지 모르겠는데 따라갔다. 내가 가르치는 반의 한 녀석은 나를 복도에서 만나기만하면 한 손은 턱 밑에 대고 수평으로 움직이고 한 손은 귀 옆에 대고 위 아래로 움직이면서 ! 네모네~ ” “! 네모네~ ” 하면서 춤을 추며 놀려댔다. 하도 재미있어서 나중에 교지에 이 내용을 글로 썼더니 그 녀석이 엄마한테 혼났다고 푸념이다. 그 아이는 지금쯤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30대 청년이 되었을 텐데. 이제 퇴직한지 10년도 넘었으니 누구 하나 내 얼굴을 유심히 봐주는 사람이 없다. 그 때가 그립기도 하다.

  사람의 얼굴 중 끝까지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은 죽은 얼굴이다. 엄마의 얼굴도 삼십 년이 넘었지만 또렷이 보인다. 한양대 영안실에서 본 우리 반 학생의 얼굴도 지워지지 않는다. 냉동실에서 꺼내 놓는 순간 꽁꽁 언 동태가 생각났다. 체육복을 입고 있었다.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뇌수술을 하려고 했는지 머리를 네모지게 밀어놓았다. 생명이 떠난 얼굴은 무생물의 표정이다. 자아가 없으니 기쁨도 슬픔도 없다. 무아의 경지다.

  한 번 땅 속으로 들어가면 다시는 볼 수 없는 게 사람의 얼굴이다. 베보자기로 얼굴을 가리는 순간이 마지막이다. 요새는 부부간에도 거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는다. 더더욱 눈을 들여다보는 일은 없다. 대충 다른 일을 하면서 말만 하고 지낸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의 눈동자를 통해 상대의 가슴 속까지 들어가는데 말이다. 지금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 때 열심히 봐둬야하지 않을까? 있을 때 잘하라고 했는데 있을 때 잘 봐야겠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 4. 4. 너와 나의 사이  (0) 2015.07.06
2015. 3. 28. 아버지의 절  (0) 2015.07.06
2015. 3. 16. 책을 찾아 삼 십리  (0) 2015.07.06
2015. 3. 12. 보자기 인생  (0) 2015.07.06
2015. 2. 16. 나의 아킬레스건  (0) 2015.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