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5. 3. 12. 보자기 인생

아~ 네모네! 2015. 7. 6. 16:14

보자기 인생

아 네모네 이현숙

 

  아버지가 가셨다. 빈 방의 침대에 혼자 누워 계신다. 새어머니는 아버지가 있던 병실에 가서 빈 의자에 앉아있다. 입을 벌리고 주사 바늘이 꽂힌 채 오줌 줄도 그대로 달려있다. 턱을 잘 올려 입을 다물게 하고 베개 때문에 꺾인 고개는 베개를 빼서 똑바로 뉘어 드렸다. 얼굴이 따뜻하다. 이불로 어깨까지 잘 감싸서 얼굴만 보이게 해놓았다.

  아무도 임종을 못해 드렸다. 새벽에 위독하시다고 해서 세 번씩이나 택시 타고 달려갔었는데 의미 없는 연습 게임만한 꼴이다. 아침에 가래가 끓어서 새어머니가 가래 좀 빼달라고 간호사를 부르러 간 사이에 슬그머니 가버리셨다. 눈물도 나지 않고 담담한 내 마음에 스스로 놀란다. 숨 쉬기도 힘들어 헐떡이는 모습을 보고 빨리 가시기를 바라던 마음 때문인가 보다.

  아버지는 의사에게 퇴원시켜 달라고 하며 집에 가기를 그토록 원하셨다. 호스피스 병동 창문 커튼에 적혀있는 안암동 우리 이란 글씨를 자꾸 되뇌며 여기가 왜 우리 집이냐고 하셨는데 기어이 집에는 못 가셨다. 새어머니가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하니 강제로 모시고 갈 수도 없었다.

  보기에 안타까워서 3번 동생이 화이트보드에 아버지~ 여기가 우리 집이라고 생각하세요.” 라고 써서 보여드리면 끄떡끄떡 하신다.

  아픈데도 없는데 왜 병원에 가냐고 완강히 버티던 아버지가 119대원의 등에 업혀 왔다. 업혀서 계단을 내려오면서도 안 아프다는데 왜 이러냐고 난리를 치셨다는데 이렇게 될 줄 미리 아셨나보다.

  병원에 와서 검사를 하니 이미 온 몸에 암이 퍼진 후였다. 간호사가 모니터로 보여주는데 목뼈에서 척추, 폐와 간, 내장, 골반 뼈까지 온통 하얀 암 덩어리로 꽉 찼다. 나이가 많으니 노환일거라고 무심하게 지낸 내가 한심하다. 하긴 미리 알면 뭐하나? 나이가 많아 수술도 항암치료도 못하니 속수무책인 것은 별반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삼 주 정도가 지나니 손발이 퍼렇게 멍이 든다. 혈액순환이 안 되어 실핏줄이 터지기 때문이라 한다. 숨은 턱에 닿았고 온 몸은 주사 자국으로 얼룩졌다. 그저 본인을 위해서도 빨리 편안한 세상으로 가시는 게 좋겠다는 마음속에는 매일 병원에 오느라 지친 나의 매몰찬 이기심도 들어있다.

  잠시 기다리니 간호사가 와서 주사바늘도 빼고 오줌 줄도 빼준다. 장례식장에 자리가 있나 알아봐 달라고 했다. 빈 방에서 아버지를 지키고 앉아 있는데 장례식장에서 두 명의 사람이 온다. 침대 시트를 벗겨 폭 싸서 들것에 싣고 간다.

  다음 날 입관하는 것을 보려고 안치실로 갔다. 장례사가 수의를 입혀 놓았다. 무아의 경지에 이른 편안한 모습이다. 매장을 한다고 하니 수염도 깨끗이 깎고 염을 하는데 싸고 싸고 또 싼다. 손도 싸고 발도 싸고 얼굴까지 베 보자기로 일일이 싼다. 다 싼 후에는 끈으로 묶고 또 묶는다 온 몸을 스무 번도 더 묵는데 시신이 흙으로 돌아갈 때 뼈가 흐트러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란다. 하늘나라로 갈 때 잘 날아가라고 베 헝겊으로 날개도 달아주고 정성을 다해 아름답게 장식한다. 이집트에서 본 미이라가 생각난다. 관 바닥에는 꽃으로 가득 채워 꽃방석을 만들어 놓았다. 꽃방석에 눕는 아버지를 보니 마음이 흐뭇하다.

  삼 십여 년 만에 선산에 있는 엄마 옆에 나란히 묻어드렸다. 30년 동안 매년 세 번씩 빠지지 않고 엄마 산소에 다녔다. 혼자 누워있는 엄마가 불쌍했다. 두 분을 합장하고 산에서 내려오는 걸음이 홀가분하다. 흡족하다. 오늘 밤 두 분은 오랜만에 즐거운 해후를 하시겠지?

  3번 동생이 아버지 돌아가시던 날 새벽에 꿈을 꾸었다. 우리는 딸이 여섯이라 카톡방에서 번호로 부른다. 통 보이지 않던 엄마가 나타나 밥을 해야 한다고 부엌으로 들어가시더란다. 잠이 깨는 순간 오늘 돌아가시려나보다 생각했단다.

  아버지는 오랜만에 엄마가 해주는 저녁을 드셨을까? 오늘도 이불 속에 간직한 밥으로 상을 차렸으려나? 엄마는 보온밥통이 없던 시절 늦게 들어오는 아버지 밥을 이불 속에 파묻어두었다. 우리는 깜빡하고 이불을 펴다가 밥을 이불에 쏟곤 했다. 엄마가 돌아가시던 날도 저녁밥 다 해놓고 아버지를 기다리는 동안 아버지 운동화를 빨다가 쓰러져 그날 밤 돌아가셨다.

  삼우제가 지나고 며칠 후 동생들이 우리 집에 왔다. 갑자기 웬일이냐고 물으며 냉장고 속에서 과일을 꺼내 먹으라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먹는 중이라고 한다. 5번 동생의 머리에 스카프가 덮여있다. 스카프에 싸인 모습을 보자 아버지 생각이 떠오른다. 갑자기 설움이 복받친다. 나도 모르게 오열했다. 가슴이 터질 듯한 통증에 번쩍 눈을 떴다. 꿈이다. 내 마음의 심연에 이렇게 큰 슬픔이 가라앉아 있음에 놀란다.

  인간이 탄생하기 전에는 엄마의 양수주머니에 싸여 열 달을 자란다. TV에서 보면 다른 동물의 새끼들도 양수 보자기에 싸인 채로 바닥에 툭 떨어진다. 어미가 혀로 일일이 핥아 양수 막을 벗겨준다.

할머니 자궁 속의 양수 주머니를 터트리고 나와 94년 만에 다시 보자기 속으로 들어가는 아버지를 보니 인간은 보자기에서 나와 보자기 속으로 돌아가는구나 싶다. 죽음 너머에 있는 보자기 속도 엄마의 자궁 속처럼 편안한 곳일까?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 3. 27. 얼굴은 언제 보나  (0) 2015.07.06
2015. 3. 16. 책을 찾아 삼 십리  (0) 2015.07.06
2015. 2. 16. 나의 아킬레스건  (0) 2015.07.06
2015. 1. 22. 잠 쫓는 팔베개  (0) 2015.07.06
2015, 1, 11, 결혼선물  (0) 2015.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