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5. 2. 16. 나의 아킬레스건

아~ 네모네! 2015. 7. 6. 16:12

나의 아킬레스건

아 네모네 이현숙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병실로 들어온다. 여기 저기 대걸레로 닦고 휴지통도 비운다. 나도 모르게 일어나 절을 해야 할 것 같다. 아버지가 말기 암으로 호스피스 병동에 누워있다. 의사가 와도 간호사 그림자만 비쳐도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그저 내 아버지의 생사를 쥐고 있는 사람 같아서 무조건 꼬리를 내리게 된다. 간호사가 피곤하면 내 아버지에게 잘못할까봐 부지런히 딸기를 사다주며 아부를 한다.

  오늘 아침에 아버지가 숨 차 하신다고 전화가 와서 아침밥도 안 먹고 택시 타고 고대병원으로 달렸다. 택시 기사는 첫 새벽부터 병원 가자는 나의 심정을 아는지 마구 달린다. 노란 불에서도 그냥 패스다. 그게 고마워 7천원 나온 택시비를 만원 주었다.

  부모는 나의 무엇일까? 내 몸과 마음의 고향이자 가장 약한 급소 아킬레스건이지 싶다. 나의 존재가 가능하도록 몸을 빌려준 사람이고 세상 파도를 막아준 방파제다. 전생에서 이승으로 오는 징검다리가 되어준 존재다. 동시에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이고 바람만 스쳐도 아픈 생살이 드러난 곳이다.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모기를 때려잡으려다가 멈칫하고 멈춘다. 이놈이 죽으면서 한을 품으면 우리 아이에게 원수를 갚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냥 살아서 날아가게 한다.

  우리 아들이 고3일 때 담임선생님의 호출이 있었다. 아들이 모의고사를 안 본다는 것이다. 그 때는 본고사를 보는 대학이 몇 안 돼서 일요일에 본고사 대비 모의고사를 보았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던 아들은 매일 학교에서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교회에 들러 기도하고 온다고 했다. 토요일도 일요일도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는 아들을 보는 내 마음은 새카맣게 타는 듯했다. 45락이라는 말대로 4시간 자면 합격하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데 일주일에 이틀씩 허비하는 것 같아 마음이 쓰렸다. 거기다 모의고사도 안 보니 담임선생님이나 나나 속 타기는 마찬가지다. 아들을 타이르다 못한 선생님은 부모님 모시고 오라고 호통을 쳤다.

  중죄인이 된 나는 아들 학교로 갔다. 교무실 문에서부터 꼬리를 팍 내리고 기어가듯 선생님 자리로 가 아들을 잘못 키워 죄송하다고 백배 사죄를 하였다. 아니 아들을 설득시켜야지 이렇게 오시면 어떡하냐고 선생님도 한탄을 한다.

  나도 교회를 다니지만 아들의 소신을 꺾을 수는 없었다. 결국 1년 내내 모의고사를 안 보고 그냥 대학교 시험을 보러갔다. 원서를 써주면서 선생님은 우리 아들이 크레믈린처럼 도무지 속을 알 수 없으니 그냥 지원해 보자고 하였다. 천행인지 만행인지 그래도 한 번에 합격을 하였다.

  십년감수한 마음으로 그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이구나 했더니 이건 완전한 나의 착각이었다. 1학년도 지나지 않아 방황이 시작되었다. 급기야 학교도 가지 않고 시험도 보지 않고 “ALL F”를 내리 네 학기 동안 받아왔다. 등록시기가 되어 또 등록할 거냐고 했더니 아무래도 또 그럴 것 같으니 등록을 안 하겠단다.

  아들은 서빙고동에 있는 두란노 경배와 찬양이라는 곳에 다니고, 예수전도단에 다니며 하는 일이라고는 그런 것뿐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신학교에 다시 응시하라고 해도 그것도 아니란다.

  두란노에서 무슨 합숙훈련을 한다고 하더니 40일 금식을 한다고 한다. 포천 어디서인가 일주일 내내 지내다가 주말에만 집에 왔는데 점점 피골이 상접하더니 해골처럼 변했다. 아무리 죽이라도 먹으라고 해도 안 먹는다. 가다가 길거리에서 쓰러져 죽을 것만 같았다. 한 달 새 28kg이 줄어서 허리가 한 줌으로 변했다. 그런 모습으로 집을 나서는 아들을 보고 있자니 눈물 콧물이 쏟아졌다.

  40일이 다 되어갈 즈음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포천 어느 아파트에 있는데 생수가 없어 자스민 차를 마셨더니 계속 토하고 일어설 수도 없으니 데리러 와 달라고 한다. 그 밤에 남편과 차를 가지고 가보니 다 죽게 생겼다. 집으로 데려와 밤을 지내고 동네 병원에 가니 의사도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는지 자기는 어찌할 수 없으니 큰 병원으로 가란다. 토요일 오후라 휘경동에 있는 위생병원 응급실로 갔다.

  물도 못 마시니 링거를 꽂고 겨우 겨우 회복을 해갔다. 의사가 와서 왜 금식했느냐고 하니 말이 없다. 내가 물어도 그냥 해보고 싶었단다. 그러니 더 이상 물어볼 수도 없었다. 금식하다가 죽는 사람도 있다는데 그저 죽지 않은 것만 다행으로 생각했다.

  내 몸에 아킬레스건이 두 개인데 하나는 부모이고 하나는 자식이다. 이 두 곳을 누르면 나는 악 소리도 못 내고 고꾸라진다. 사람마다 아킬레스건이 다르겠지만 이 두 곳은 만인이 공통이지 싶다.

  내가 교사생활 할 때도 학부모들은 담임인 내 앞에 오면 뭐라고 하지 않아도 설설 긴다. 그저 자식을 괴롭힐까봐 겁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자기보다 잘 난 것도 없고 힘도 없지만 그저 자식을 맡긴 죄로 내 앞에 공손히 고개를 숙인다. 이런 아킬레스건이 없다면 모든 사람들은 기고만장 소리칠지도 모른다. 나도 내 부모 내 자식 내 손자를 생각해서 그저 참고 남의 부모와 남의 자식 귀한 줄 안다. 이 아킬레스건은 겸손하게 살라고 하나님이 준 선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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