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5. 5. 21. 풋 세대와 쉰 세대

아~ 네모네! 2015. 7. 6. 16:39

풋 세대와 쉰 세대

아 네모네 이현숙

 

  산에 오른다. 새싹들이 연둣빛 구름처럼 피어오른다. 숲속으로 파고들면 풋 내음이 코로 스멀스멀 파고든다. 내가 산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산 내음이 좋아서다.

  한 겨울의 설경도 가슴 울렁이게 황홀하지만 봄여름의 이 풋풋한 산 내음은 나를 한 없이 어루만진다. 나도 모르게 산의 체취에 취한다. 신경 안정제를 먹은 듯 몽롱하게 정신을 잃어간다.

  편백나무 잎은 초록의 냄새를 내뿜고 생강나무 잎을 따서 코에 대면 은은한 생강 냄새가 나를 유혹한다. 봄은 풋 세대라 풋내가 나나보다.

  며느리가 석사과정을 마치고 졸업식 사진을 보냈다. 졸업하는 석사 중 수석을 하여 총장상을 받았다고 한다. 카톡으로 온 동영상을 보니 손자가 강대상으로 올라가고 있다. 엄마가 올라가니 무조건 따라 올라가는 거다. 사회자가 뭐라고 뭐라고 하는데 썬(son)이란 단어만 귀에 들어온다. 아들이 수상자와 기쁨을 함께 하기 위해 같이 올라온다고 설명하는 것 같다.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박수갈채 소리가 들린다. 세 돌 밖에 안 지난 녀석이 엄마 따라 강대상까지 올라와 서 있는 모양이 너무도 재미있나보다. 두 번째로 한인 동문회 상을 받으러 올라갈 때는 제가 먼저 달려간다. 내려올 때는 자기가 상장을 들고 신이 나서 내려온다.

  손자 이안이는 이제 막 솟아오른 새싹이다. 그야말로 풋내가 풍 풍 풍기는 풋 세대다. 그래서 아무리 엉뚱한 짓을 해도 다 용서가 된다. 그가 풍기는 풋내에 취해 누구나 즐겁게 받아들인다. 풋내는 사랑의 묘약 같은 힘이 있나보다.

  우리 같은 쉰 세대는 무슨 짓을 해도 용서가 안 된다. 나이가 들면 온몸이 쭈그러질 대로 쭈그러지고, 어깨는 구부정, 얼굴은 거무 틱틱, 눈알은 티미한 썩은 동태눈, 머리는 부스스, 걸음걸이는 어기적어기적, 아무리 인내심을 발휘해도 참기 어려운 존재가 된다.

  냄새는 또 어떤가? 몸 전체에서 풍기는 묘한 역겨움, 아무리 씻어도 없어지지 않는 쉰내가 진동한다. 쉬다 못해 폭삭 골아버린 내 모습과 체취가 저절로 나를 움츠러들게 한다.

  수많은 동물들은 늙으면 다른 동물들의 공격을 받아 즉시 먹이로 변신하니 추한 모습으로 늙어가는 것을 볼 수 없다. 모든 나무는 죽으면 고사목이 되어 아름답게 사라져간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는 주목도 죽은 모습이 더 아름답고 고고하다. 인간도 주목처럼 아름답게 사라질 수는 없을까? 죽은 나무는 산 나무보다 멋지고 아름다운데 인간의 해골은 어찌 그리도 흉물스러울까? 평생 덕을 쌓지 못해서 그런가? 자연은 평생 남을 위해 헌신하는데 인간은 탐욕스럽게 세상 모든 것을 빨아들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 부터라도 나를 비우고 끊임없이 베풀다보면 내 몸에서도 풋풋하고 싱그러운 풋내음이 발할 수 있으려나?